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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람들 열라 많네."
"토요일인데 당연히 사람이 많지. 왜 이렇게 촌스럽게 굴어? 이런데 처음 오는 사람처럼."
"촌스러워서 미안하네요. 근데 나 여기 첨이거든요."
"뭐?"
"백화점에 들어와 보는거 첨이라구요."
"무슨 농담을 그렇게 성의 없이 하냐?"
"성의 있게 진담 한건데, 촌스럽게도 백화점 처음 와 보는거 맞거든요."
"너 서울 사람 아니야?"
"서울 사람만 백화점 다녀요? 지방에도 백화점 많거든요."
"근데?"
"뭐가요?"
"너 지금 백화점에 처음 와봤다고 했잖아."
"처음이라구요. 그게 그렇게 큰일이예요?"
윤호는 백화점을 처음 와 봤다는 희진의 말에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무슨 첩첩 산중 두메 산골에 짱 박혀 살던 있던 순진무구 산골소녀도 아니고, 서울에 살면서 백화점을 처음 와 봤다니 무슨 재미없는 농담을 저렇게 진지하게 하실까 싶다. 하지만 희진의 표정은 농담도 거짓도 아닌 것 같다. 희진은 아직 학생이고 백화점에 와야 할 일이 없어 와 본적이 없다고 했을 뿐인데 왜 농담이라고 하는건지 이해 되질 않는다.
"서울에 살면 백화점, 명품관, 놀이 공원은 필히 가봐야 하는 거라고 법에 명시 되어 있나? 시장이야 집 앞 재래시장을 이용하고 있고, 옷이야 길에 널린게 옷가겐데 뭐가 이상해요?"
이래저래 백화점이라는 곳은 학생 신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어서 출입하지 않은 것 뿐인데 뭐가 잘못됐다고 저렇게 어이없는 표정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되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래도 가끔, 부모님 생신 선물을 산다거나 그럴때 이런데 오잖아?"
"우리 집 앞에도 옷 가게 많아요. 선물가게도 있구, 봤잖아요."
"그래도 생신 선물인데 아무 옷가게에서나 사는 건........"
"거기 옷도 비싸거든요. 한달 알바비 다 갖다바쳐도 겨우 살까말깐데........아니 근데, 이 백화점 사장이 아저씨 아버지예요? 왜 그렇게 미련을 못 버려요?"
"야!! 우리 아버지 여기 사장 아니거든. 여자들 이런데 다니는 거 다들 좋아하니깐 그래서 그래."
"아이구, 여친이 쇼핑 꽤나 즐기셨나보네."
"야!! 넌 어째 말하는 게......... 야, 좀 천천히 가. 왜 그렇게 걸음이 빨라?"
"시연이랑 큰 아저씨가......"
윤호는 앞서 걸어가는 희진을 붙잡아 세웠다. 사람 많은 곳에서 앞서가는 시연과 윤성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 걸음을 재촉하던 희진은 자신을 잡아 세우는 윤호의 손을 뿌리치려했다.
"왜요?"
"너는 애가 눈치가........"
"뭐요?"
"형광등도 너보다는 빠르겠다."
"그러니깐 뭐가..........혹시?"
"그 날 일, 그냥 우연인 거 같아?"
"그 날? 아!!!"
"'아!'는 무슨........"
"아저씨도 지금 그거 기대하는 거예요?"
"기대? 뭘 기대한다는 거니?"
윤호는 은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희진을 어이없다는 쳐다보았다. 물론 형 말대로 어쩌다보니 술에 취해 그럴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동안 윤호의 눈에 비쳤던 형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 느껴졌기에 내심 어쩌면 하고 생각하던 차였다. 윤호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빤히 그를 쳐다보던 희진의 웃음이 사악하게 변하고 있었다.
"너 그 눈빛 뭐냐? 아주 불량스럽다. 너야말로 뭘 기대하는 건데?"
"내가 뭐랬다구요? 그리고 톡 까놓고 말해서 우리 나이가 19금에 걸리는 나이는 아니잖아요. 두 사람 다 성인이고 원조교제로 몰아 붙일 그런 사이도 아닌데, 뭘 그렇게 오바하는 건데요? 한창 물오른 미모의 여대생이 연애 좀 한다고 누가 잡아가나? 법에 저촉 되나?"
"그게 아니라, 너의 그 눈빛이 상당히 불량스럽다구."
"아저씨 눈빛은 뭐 그리 선량하다구."
"너 시연이 베스트 프렌드 맞냐?"
"두 말하면 잔소리, 세 말하면 입 아프죠."
"근데 어째 넌 지금 저 두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길 바라는 거 같다."
"솔직히 제 3자의 눈으로 볼 때, 큰 아저씨가 꽤 괜찮아 보이는 건 어쩔수 없거든요. 키도 크고, 얼굴도 저 정도면 왠만한 연예인 뺨 두세번은 치고 갈 정도고, 게다가 검사라는 타이틀까지........음, 솔직히 저 정도면 마담 뚜가 침 흘릴만 하죠."
"아까는 시연이가 형 좋아하는거 아니라고 정색을 하고 덤비더니......."
"그거야.......안에서 보는거랑 밖에서 보는거랑은 참 많이 다른거 같아요. 안그래요?"
"하여튼 말을 말아야지. 살 거 있으면 사."
"미쳤어요? 이런 비싼데서.......아이 쇼핑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처음 대학 입학 통지서를 받았을때 지붕이라도 뚫고 올라갈만큼 기뻤었지만 그 설레임과 기대감도 잠시, 입학 통지서와 함께 날아든 입학금 고지서를 보는 순간, 뚫고 올라갔던 지붕을 수리해서 고쳐놔야 할 것 같은 절망감이 들었었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입학금은 한 순간에 부모님의 어깨를 짖누르게 만드는 고민거리가 되었다.
남들은 가축병원을 운영한다하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을거라 생각하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해 모두 다섯 식구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써의 아버지는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길 잃은 개나 버려진 개들을 그냥 두고보지 못하셨던 부모님들은 벌써 20여마리나 되는 개들을 돌보고 있다. 그런 부모님에게 대학 등록금은 그야말로 커다란 부담이었다.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던 희진에게 있어서 백화점이란, 버스가 지나는 길목의 정류소, 아니면 약속장소 쯤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가끔 같은 과의 여학생들 입에서 할인이니, 대박 세일이니 이런 말들이 나올때도 자신과는 거리가 먼 정기적으로 지나가는 기차의 기적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백화점이란 곳은 희진과는 거리가 먼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눈이 즐거운 건 사실이다. 비록 가격표를 볼 때마다 '헉'소리가 절로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잠깐만!"
"왜요?"
"이리와!"
한참 아이쇼핑에 빠져있던 희진은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윤호의 손길에 걸음을 멈추었다. 재빨리 자신을 끌어당겨 기둥 뒤로 숨는 그를 보며 희진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혹시나 지난번 시연의 집에 나타났다는 그 사람들이라도 만난건가하는 생각에 긴장한 채 바싹 윤호 옆에 몸을 숨겼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수상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리번 거리던 희진은 한곳을 조심스럽게 응시하고 있는 윤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그 시선의 끝에는 윤성과 함께 있는 시연의 모습이 보였다. 가격표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둘의 모습이 마친 쇼핑을 나온 연인처럼 다정스럽기만 하다.
"뭐예요? 지금 저거 보고 샘 나서 그러는 거예요?"
"쉿! 조용히 해."
희진에게 주의를 주는 윤호의 시선은 윤성과 시연이 아닌 그들과 조금은 떨어진 곳을 향하고 있었다. 윤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유심히 살피던 희진이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엔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한 여자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절반쯤 숨긴채 윤성과 시연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숨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라? 저 아줌마....."
"알아?"
"저 아줌마, 큰 아저씨 엄마라고......."
"본 적 있어?"
"전에 가게로 찾아와서 큰 아저씨랑 한바탕하고 갔잖아요. 시연이 찾아 왔는데 갑자기 큰 아저씨가 나타나선 둘이 완전 살벌하게 노려보고 싸우다 갔는데 근데 저기서 뭐하는 거지?"
"아 참! 그때 갔었다고 했지."
"저 아줌마, 자기 아들 감시하는가 보네. 실내에서 썬구리까지 끼고.........완전 이상한 아줌마네."
"완전 이상한 저 아줌마 아들이 내 형이거든."
"네? 아~ 두 사람 형제지. 쏘~리."
말을 하다보니 미안하다. 큰 아저씨의 엄마면 옆에 있는 윤호의 엄마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멋쩍어하는 희진을 보며 윤호는 피식 웃고만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몇번의 신호음이 울리곤 이내 윤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연은 뒤에서 티격태격 거리며 따라오는 윤호와 희진을 보며 앞서 걸어가는 윤성을 쫓아가고는 있지만 전기 밥솥하나 사는데 굳이 이 복잡한 백화점까지 왔어야하나 하는 생각에 영 마땅치가 않다. 희진과 마찬가지로 검소했었던 부모님은 살아 생전에도 백화점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그리 형편이 어려웠던건 아니지만 희진의 어머니와 함께 동네 재래시장을 이용하고 길가에 늘어선 옷 가게를 이용했었기에 굳이 백화점에 갈 이유가 없었다. 희진과 마찬가지로 시연 역시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그야말로 소비를 위한 장소로 인식되어 있었다.
시연은 TV 드라마에서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에 서 있는 자체가 어색하기만 하다. 자연스럽게 익숙한듯 걸어가는 윤성의 뒤를 쫓아가고는 있지만, 실제 사람보다 더 화려하게 꾸며진 마네킹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래진다. 사람도 아니면서 소위 말하는 명품이라는 것들을 걸치고 사람처럼 서 있는 마네킹을 선망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여자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 곁으로 고가의 라벨을 도도하게 붙이고 늘어선 가방과 신발들의 화려함에 현기증이 날것만 같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눈요기가 그리 싫지만은 않다.
"여자들이 이래서 아이 쇼핑을 하는거구나."
이리저리 디스플레이 된 옷들과 가방들에 눈이 가 있는 시연을 보며 윤성은 피식 웃음이 난다. 금방 시골에서 상경한 촌뜨기처럼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모양새가 촌스럽다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순수해보이기도 하다.
"넌 꼭 여자 아닌거처럼 말을 하는구나."
"아직은요."
"응? 무슨 말이야?"
"아직은 여자 아니구 학생이라구요."
"뭐가 다른데?"
"딱히 구분 지을 건 없지만 아직은 여자라는 것 보다는 학생이라는 신분에 더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는 거죠."
"굳이 구분지을 필요가 있나?"
"여자라는 것에 비중을 많이 두다 보면 분수에 맞지않게 많은 투자를 일삼게 되더라구요."
"분수에 맞지않는 투자가 뭐야?"
"화장품이나, 악세사리, 옷들도 그렇고.......아무튼 학생보다는 여자가 더 돈이 많이 들어간데요."
"아하~ .근데 누가 그런 말을해?"
"주위에 사람들이요."
"주위 사람들이면 친구들?"
"거의 그렇죠."
"그래서 여자가 아니라 학생이다? 친구들은 다들 여잔데, 본인만 학생이면 좀 그렇지 않나?"
"쓸데없이 말꼬리 그만 잡고 밥솥이나 사죠. 아까보니깐 전자제품은 몇층 더 올라가야되던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래도 여자인데 이쁜 옷, 이쁜 가방이 왜 싫겠는가. 명품관을 통째로 털어버리는 다인과는 참 다른 것 같다. 맘에 드는 옷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도 라벨에 붙은 가격을 확인하고는 입이 딱 벌어져서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보며 윤성의 머릿속에 낡은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저 아이, 계속 어머니와 overlap 되네.'
그 옛날 작은 옷 가게 앞을 서성이며 쇼윈도에 걸린 노란 원피스를 몇 번이고 바라보고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총총히 걸어가는 시연의 뒷모습과 겹쳐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몇 백 벌이라도 사 드릴 수 있는데........그때 내가 조금만 더 컸었더라도, 그때 어머니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셨더라도 선물 할 수 있었을 텐데......'
윤성은 엷은 핑크색 파스텔 톤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마네킹에 눈이 가 있는 시연을 보았다. 한참을 그 곁을 맴돌던 시연이 옷에 붙은 가격표를 슬쩍 보고선 입을 딱 벌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대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저래선 평생을 가야 제대로 된 옷 한 벌 못 살텐데.......'
"맘에 드는 게 있으면 골라봐. 사줄테니깐."
"헐~ 이 아저씨가........정신 차리세요. 립 써비스도 가격표 보면서 날려야죠."
"가격표 확인하고 날리는 써비스니깐 골라보라구."
"그러다 나중에 카드 명세서 날아오면 괜한 객기 부렸다 땅을 치며 후회 할 텐데, 괜한 짓 하지 마세요. 그리구 우리 지금 옷 사러 온거 아니구 밥솥 사러 왔거든요."
"밥솥도 사고 옷도 사고, 아무튼 립 써비스 날린거 아니니깐, 맘에 드는 옷 있으면 골라봐. 얼마가 되든 너한테 신세 진 것도 있고, 또 아까 점심 맛있게 먹은 보답이니깐."
지금까지와는 달리 편안하게 웃음 짓는 윤성을 보며 시연은 조금 당황스럽다. 여지껏 툭툭 던지듯 말을 하곤 하던 사람이 무슨 생각인지 친절한 말투에 지나가는 사람과 몸이 부딪힐까 자신의 몸으로 감싸다시피하는 매너도 영 어색하기만 하다. 게다가 옷을 골라보라니, 저게 얼마짜리 옷인지 가격이나 알고 하는 소린지, 검사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저렇게 허세를 부리는건지 알수가 없다. 시연은 오늘따라 꽤나 친절한 윤성의 태도가 궁금해 슬쩍 곁눈질로 그를 살펴보았다. 다른 때와 달리 한결 부드럽게 미소짓는 그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하늘색 V라인 스웨터에 편해보이는 자켓을 걸치고 있는 그를 보며 시연은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고 있었던 때를 떠올렸다. 남자 옷을 잘 알지못하는 그녀였지만 그의 옷차림은 항상 완벽하니 어느 한 곳 나무랄데가 없는것 같았다. 이리저리 디스플레이 된 옷들을 살피는 그를 보며 시연은 남자 넥타이를 집어들었다. 파스텔톤의 와이셔츠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넥타이.....
희진에게 큰소리를 빵빵 치기는 했지만 시연은 긴가민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던 커다란 그의 손길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꿈속인지, 아니면 실제 그가 그랬는지는 분간이 가지않지만 어쨌든 그 손길을 생생히 떠올리며 설레였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던 그의 얼굴과 입술..........
"남자친구 있어?"
"네?"
"그거, 남자 넥타인데...."
"아~없어요!!"
"그럼 그건....."
"그냥........지난번에 아저씨 사채업자 아저씨들이랑 싸우다가 넥타이가 찟어진거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만지작거리고 있던 넥타이를 얼른 내려놓으며 시연은 시선을 딴곳으로 돌린다. 윤성은 자신의 넥타이라는 소리에 조금은 뜻밖이란 표정이다. 민망한듯 쭈빗거리며 슬며시 넥타이를 내려놓는 시연을 보며 윤성은 묘한 기분이 든다. 다인이 백화점을 몽땅 털어버린것처럼 자신의 옷들과 악세사리들을 바리바리 쇼핑백 가득 들고 나타났을 때도 느껴보지 못했었던 기분이다. 단지 넥타이를 만지작거렸을 뿐인데 묘하게 다가오는 이 기분은 뭘까? 그 옛날 시장에서 팔던 싸구리 운동화 한컬레를 사려고 몇번을 망설이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 자꾸 저 아이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건지 알수가 없다. 헷갈리면 안되는데........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왜?"
<형, 뒤에 남 여사 있어.>
"남 여사? 일본에서 돌아 온 거야?"
<그런거 같은데. 난 희진이 데리고 나갈테니깐 형은 알아서 해.>
"혼자야?"
<일단은 그런거 같아. 계속 형쪽을 주시하고 있는데, 형도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알았어. 나중에 보자."
전화를 끊은 윤성은 기둥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 남 여사의 모습을 확인했다. 커다란 썬글라스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긴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북적이는 곳을 싫어해 항상 주말을 피해 쇼핑을 하곤 했었는데 뜻밖이다. 남 여사를 백화점에서 보게 되다니, 더구나 이렇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토요일 오후에 말이다.
"우연인거야, 아님 사람을 붙인거야?"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윤성이다. 여전히 가격표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시연을 보며, 지금 이 상황만 아니라면 이 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살짝 아쉽기까지 하다.
"근데 희진이랑 작은 아저씨가 안보여요. 조금전까지 뒤에 따라오던데 어딜간거지?"
"방금 윤호랑 통화 했어. 갑자기 볼일이 생각나서 같이 간다고."
"작은 아저씨가 볼일이 있는데 희진이가 왜 같이 가요? 그냥 이리로 오라고 하면 되지."
"그냥 그렇게 좀 알면 안돼나? 뭘 그렇게 꼬치꼬치 따져?"
"아...아니, 그게 아니라 아저씨가...."
"그리고 그 아저씨라는 소리 좀 거북하지 않아? 어딜봐서 내가 아저씨야? 아직 서른도 안됐는데, 지금 이곳 매장에 있는 언니들이 이쪽만 쳐다보는 거 안보여?"
헐!!!!
자뻑도 저 정도면 중증이지 싶다. 매장에 언니들이 모두 자기만 쳐다본다니,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돌리던 시연은 매장에 있는 판매 직원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있는 걸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윤성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임에 틀림없는듯 하다.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자신만만할 필요는 없는데, 겸손과 겸허란 단어는 죄다 사전에서 지워버렸나?
투털대는 시연의 뒤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남 여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논현동에 있다 왔으니 사람을 붙인건 아닐테고 그리 반갑지않은 우연이다. 윤성은 보란듯이 시연의 어깨를 감싸며 에스카레이터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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