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향, 소, 부곡에 거주하는 주민과 신량역천, 즉 천역양인에 대한 내용을 좀 써보겠습니다.
길어도 이부분에 대해 궁금했거나 관심있으신 분은 참고 읽어주세요.
향, 소, 부곡의 주민들은 '천역양인(賤役良人)'으로, 국가로부터 특별한 의무가 지워진 신분층이었습니다. 그들이 거주하던 지역인 향, 소, 부곡 자체가 특수행정구역이었다는 것은 따로 설명하지 않으셔도 아실 겁니다. 다만 주의할 점은 고려시대 지방지배체제에서 행정구역은 필요에 따라 수시로 그 지위가 변화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어느 현(縣)에서 반란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 지위를 강등하여 향, 소, 부곡으로 삼기도 했으며, 반대로 향, 소, 부곡에서 나라에 공을 세운다면 일반 군현으로 승격시키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향, 소, 부곡에는 그 자체로 주어진 여러 가지 제약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향, 소, 부곡민들은 일반 군현으로 승격을 청원하기도 했고, 이를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무신정권시기에는 반란을 무마하기 위하여 향, 소, 부곡을 일반 군현으로 승격시켜 준 예도 적지 않습니다.
먼저 인식해야하는 것은 양인과 천인의 차이라 하겠습니다. 우선 천인에 대해서 알아보면, 천인은 국가에 대해 아무런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즉 원칙적으로 조세, 공납, 역역의 의무가 없으며, 국가가 아닌 개인/가문, 국가 관청 등에 속한 존재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양인이 토지를 매개로 하여 국가에 예속되어있었다고 한다면, 천인은 토지가 아닌 인신 자체가 예속된 신분층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인은 조세, 공납, 역역의 의무를 지고 있었으며, 토지를 매개로 국가에 예속 된 경우가 대다수 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향, 소, 부곡민은 국가에 대하여 조세, 공납, 역역의 의무를 지는 분명한 양인층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거주하던 향, 소, 부곡이 일반 군현으로 승격될 경우 법제상 차별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들이 천역양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들에게 특별한 공역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가령 철소(鐵所)는 철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지역에 살던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기본적인 의무와 함께 그런 특별한 업무에 종사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려는 반란 사건을 일어난 일반 군현의 주민에 대한 개별적인 처벌이 아닌 군현 자체를 강등하여 향, 소, 부곡으로 삼음으로서 실질적인 처벌을 행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향, 소, 부곡민이 매우 힘든 역이 부과되어 종사했으나, 분명히 조세, 공납, 역역의 의무를 이행해야하는 양인층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다만 그들이 향, 소, 부곡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과거 응시를 제한하는 등 차별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의 신분이 양인이 아니라서 차별을 한 것이 아니라 거주지가 차별을 당하는 지역이었기에 차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향, 소, 부곡이 일반 군현으로 승격될 경우 과거응시 제한 등의 차별은 법제상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관습상 차별은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 문제는 다른 보기와 맞춰 상대적으로 풀어야할 지문이지만
다른 서술어가 없이 양인화 되었다 라고 하여서, 어떻게 보면 양인화되었다는 말이 완전한 양인이 되었다는 말로 보여서 맞는거 같기도 하고 양인이 아니었는데 양인이 되었다는 뜻으로도 보여서 참 애매합니다. 개인적으론 저런 문제는 지양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첫댓글 고려는 양천제가 기본.. 조선은 양천제가 확립. 고려가 양천제에 대해 애매한 표현으로 문제내기 딱 좋긴 하죠.. 신량역천층은 왜 만들어서 후손들을 귀찮게 하시는지..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