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기분이 안 좋은 채로 출발을 했다.
새벽에 기껏 일어나 묵상하고 공부 할것 다 하고 맛있게 자는 남편을
바라 보다가 조금만 더 자야지 하고 누웠다가 꿈을 꾸었다.
꿈에서 제일 안좋아 하는 것 현실에서 일하는 것은 좋아 하는데
꿈에서 일하는 것은 제일 싫어 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불도 안 들어 오는 어두운 부엌에서 잔뜩 쌓인 설겆이를 하다가
잠이 깬 것이다.
벌써 시간이 아침 여덟시가 넘었다.
<에이 짜증나~>
혼자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남편이 일어나 왜 그러냐고 물었다.
꿈에서 또 일했다고 햇더니 왜 짜증이 났는지 알아 차리고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가 일하는게 상책이다 싶었는지
나갈 채비를 하다가 문득 나를 불렀다.
돌아 보니 이런 모습을 하고 나를 웃기려고 앉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하겠지만 아는 사람은 웃을 수 있는 포즈다.
엊그제 남편과 재미있게 본 영화 로맨틱 할리데이에 올리비아 아빠가
아이들에게 해 주는 냅킨쇼를 흉내냈다.
속상했던 내 마음이 금방 풀어지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 만난 친구와이프가 나이가 들수록 남편과 내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이 떠 올랐다.
결국은 인생의 남은 많은 시간을 남편과 보내야 하는데 기왕이면
재미있게 살자~
어젯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달콤하고 매콤한 것이 끓는 냄새에 잠이 깨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2시가 넘었다.
남편은 그 때까지 안 자고 컴퓨터로 무엇을 하는지 음악이 켜 있고
가스렌지에다가 기침에 좋은 발효액을 데워서 마시는 중이었다.
아직까지도 안 자고 있다고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다시 돌아 눕는데
내가 깬 것을 모르는 채 남편 혼자 독백으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확 들어 왔다.
< 이렇게 좋은 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을 일찍 좀 공부를 시켰더라면
지금쯤 박사가 되고 의사가 되었을꺼 아냐 .......
고생한다고 잔소리들은 하면서 왜 공부는 좀 못 시킨거야 >
뭔 소린가 궁금해 하고 있는데 발효차를 마시면서 다시 또 중얼거렸다.
<소화제도 좀 잘 만들었어 한번만 먹으면 그냥 내려 가잖아.......>
내 이야기를 혼자 중얼 거리고 하는 모양이어서 궁금해서 물어 보려다가
다시 그냥 잠들었었다.
내 기분을 바꾸어 주고 싶어 애 쓰는 남편에게 어젯밤에 뭘 그렇게
중얼 거렸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이야기 해 주었다.
지난번 큰아버지께서 돌아 가셔서 일가친척들이 거의 모였다.
그런데 우리친정집안 사람들은 고모들을 비롯해서 사촌들까지
남이 들어서 듣기 싫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큰 어머니도 오랫만에 만나는 조카들에게 너무 늙어서 못 알아
보았다고 할 정도이면 얼마나 말로 상처를 줄지 이해가 갈 것이다.
나는 사촌 오촌 형제들이 50명쯤 되는데 그 중에 여자형제는
대여섯명에 불과하고 모두가 남자들이다.
그중에 오빠들이 대부분인데 남편과의 나이차 때문에 오빠는 오빠인데
남편 보다는 나이가 적은 오빠들이라 서로간에 불편해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전에 이 오빠들 중에 한분이 지나다가 우리집을 들렸는데
하필 제일 추운날 밖에서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남편 들으라고 그랬는지 무슨 집수리를 1년이 다 되도록 한다느니
부엌도 없이 마누라 고생을 시킨다느니 하고 말해서
내가 오히려 남편에게 민망 했었다.
그런데 그날 오빠들이 또 보더니 시골에 가서 왜 그 고생을 하며
사느냐고 해 싸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발언들을 서슴치 않았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해도 일일이 보여 줄 수가 없으니
졸지에 나는 아주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
남편은 괜시리 주눅이 들어서 대꾸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전부터 마른 기침이 난다기에 내가 만든 발효액을 데워서
주었더니 무척 편해졌다고 스스로 알아서 데워 마시는 중이었댄다.
이런 일들을 좋아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나를 생각하며
어려서 공부를 햇더라면 하는 아쉬움들~
오빠들이 내가 고생하며 산다고들 하니까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혼자 푸는 중이었댄다.
남편이 나를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을 읽으니 안 좋았던 기분이 급 좋아졌다.
혼자 집수리를 진행 하고 있는데 어제부터 피우기 시작한 연탄 보일러에 이제 제대로
불이 붙었다.
아침에 내려가 수리중인 집안으로 들어 갔더니 훈훈함이 느껴졌다.
이제 보일러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바닥이 완성 되었지만
아직도 일은 많다.
방에 단열도 해야 하고 도배며 문풍지도 발라야하고, 저 짧은 마루도
페퍼질을 해서 다듬어야 하고 2층으로 가는 계단도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목욕탕을 만드는 중이란다.
목욕탕도 만들고 그 위에다 다락방도 만들어 준다고 한다.
부엌은 다음주중에 직접 씽크대도 짜서 만들어 주겠단다.
앞으로 어떻게 집이 만들어 질까 기대가 된다.
사실상 남들은 이 겨울에 부엌도 없이 지내기가 고생스럽다고들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좀 불편한 것을 참고 시간이 지나면 멋지고 살기 편한 집을 남편이
만들어 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사는 집에 대하여 타고 다니는 차에 대하여는
오로지 남편이 해 주는데로 초가집이면 초가인데로 기와집이면
기와인데로 살아 왔다.
그것만은 남편에게 맡겨 놓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남편이 제천에 공구를 고치러 나간다고 같이 가려는지를 물었다.
집수리를 하면서 필요한 공구를 여기저기서 빌려 쓰기도 하고
사기도 하는데 나는 뭐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니
그것도 역시 남편에게 맡겨 두는데 공구도 어찌나 비싼지
어떨 때는 돈을 강도 맞은것 같기도 하다.
가다가 시장에 들릴 일이 있어 들렸더니만 남편은 또 공구상을 발견하고
떠나 올 줄을 모른다.
아마 중고 공구를 파는 모양이었다.
어제는 원주까지 가서 공구를 빌려 왔다.
며칠 얼른 쓰고 가져다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공구가 도대체 얼마나 하기에 만날 빌려 쓰느냐고 했더니
몇 십만원 한다고 한다.
얼마전에도 몇십만원 짜리를 샀는데 또 ......
하다가 오늘 큰 맘을 먹었다.
어차피 어르신들 집수리도 해 드려야 하고 또 여러모로 쓰일만 해서
새로 공구를 사라고 현금을 찾아 주었더니 어린아이 장난감 사는 것마냥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사실은 씽크대 사려고 모아 놓은 돈이었는데 만들어 준다니
그게 그것이다.
소원 성취한 남편 좋아서 싱글벙글이다.
제천에서 공구를 사서 돌아 오다가 또 좋은 일이 생겼다.
가을에 안산으로 이사를 간 오디와 버찌님이 태백으로 놀러 가다가
들린 것이다.
얼마전에 몽골에 갔다가 오면서 우리내외를 주려고 몽골모자를 사 가지고 왔다.
우리 옥수수모델을 해 주던 이룸이와 대산이가 이제는
부쩍 자라서 이룸이는 엄마키를 따라간다.
(지난주 인간극장에 나온 소현씨와 영미씨의 혼례식
귀농인들이 모여 혼례식을 해 주었었다.
이룸이네 온 식구도 함께 참석했었고
내 옆에 있는 이는 현암님 내오,.
남편 아무렴과 오디님은 함진에비~)
오디님과 버찌님은 영월로 귀농을 하면서 우리와 참 친하게 지냈다.
대산이가 네살에 만났으니 내년이면 10년이 되어 간다.
우리가 전도해서 신앙생활도 시작해서 지금도 잘 하고 있으니
동생같이 늘 마음이 가는 가족이다.
여러모로 서로간에 의지하며 살았으나 귀농생활이 어려워 꿈을 접고
결국은 지난 가을 다시 도시로 돌아 갔다.
남편과 나는 괜시리 돌아 간것이 우리 탓인 것만 같고
귀농생활에 적응 못한 것이 내탓마냥 마음도 무겁고 속상해 했었다.
오디님댁 뿐만 아니라 친하게 지내던 비가와님 댁도
텃새를 못 이기고 다른곳으로 이사를 햇다.
지난 가을
두 댁이 도시로 이사를 간 다음에 남편과 나는 괜시리
마음 울적했었다.
그런데 우리 생각을 하고 이렇게 좋은 선물을 안겨 준 가족이 있어
다시금 보람도 느끼고 가슴 뭉클함도 맛보았다.
집이 완성이 되었으면 하룻밤 재워 보내고 맛있는 것도 해 주었을텐데
역시나 아쉬운 마음은 또 든다.
남편은 받은 선물을 아주 맘에 들어 했다.
키가 더 커 보이기도 하다.
나는 단정하게 검정갈색 모자로......
저녁에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 남편이 그 모자를 쓰고 나갔는데
남자들이 돌아가며 다 한번씩 써 본다.
봉래산님~
그런데 발톱부분이 너무 적나라해서 여자들은 별로 라니
발톱부분에 장갑을 쒸워 주었다.
저녁 잘 먹고 들어 오다가니 동네 언니 호출이다.
겨울 긴긴밤 뭐하냐고 만두나 빚어 먹자고 하신다.
금새 반죽하고 뚝딱뚝딱 만두속하고 만두 빚기 돌입~
앞집언니는 요즘 스키시즌이라
낮에는 얼굴도 못 보는데 밤이라 얼굴 보여준다고 유세이다.
겨울의 긴긴밤 그렇게 만두 삶아 나누어 먹고
남편과 밤길을 올라 오며 오늘 또 울컥한 마음이 든다.
표현은 잘 안하지만 늘 마음으로 사랑해 주는 남편이 옆에 있어 행복하다.
행복이 별것이더냐 이렇게 살면 되는 것이지.....
첫댓글 그러게요.
행복은 내옆에 있는것을ᆢ
우리들은 내가아닌 타인들을 너무 의식하고 사는게 문제지요.
잘살고 계시는 겁니다.
화이팅!! ^.^ ♥♥♥
부럽군요 애기호랑이 답습니다
내가 가장 할줄 모르는 만두 만드는 여자가 부럽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