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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그리고 소설 스크랩 [연재소설] 한(恨) -작 두 6회-
최석영 추천 0 조회 27 07.08.09 19: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恨)

-최석영-

2부 작 두 6회

 

아침 이긴 하지만 이른 시간 이었다. 밤새 뒤척이다 잠들어 두 세 시간 잠을 잤을 까? 침대 시트가 물에 담근 것처럼 흥건히 젖어 있었고 연이는 물에서 건져낸 사람 같았다. 백 형사는 로비에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로비에 있는 남자가 백 형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백 형사 역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여자가 연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엉거주춤 일어서는 중이었다.

“너무 일찍 뵙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수사라는 게 시간과 타이밍 싸움인걸요.”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건이 났나요?”

화장기 없어서일까 연이의 퀭한 눈이 창백하게 깜빡이며 백 형사를 쳐다봤다. 무심한 얼굴 무심한 말투였지만 상대 편 백 형사는 놀랍다는 표정을 짓자 피식 웃음이 나오는 연이 그러고 보니 연이 자신이 귀신들린 점쟁이가 된 기분이다. 귀신에 씌었다는 게 이런 걸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냥 짐작이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오늘 오후에 뵙기로 했는데 그렇게 이른 아침에 전화하실 일이 없잖아요?”

“예, 사실은 어젯밤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 일로 뵙자고 한 것 입니다.”

“제가 어제? 오늘 새벽? 어쨌든 꿈을 꿨는데 너무 생생했어요. 그래선지 제 꿈이 사건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가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꿈 얘기 전부를 해 드릴게요. 꿈을 꾸는데 냄새가 났어요. 냄새가 너무 심해 머리가 아플 정도로…. 그리고 그 냄새나는 곳에 내가 잡혀가 있었고 나를 널빤지 같은 곳에 묶어 놓았는데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이 파여 있었고 제 입에는 양말로 틀어 막혀 있었어요. 그리고 옷이 전부 벗겨져 있었고 푸른 불빛이 그거, 그거, 용접기 같은 것으로….”

백 형사가 바싹 긴장해 연이 옆으로 다가 앉았다. 목젖이 꼴딱 거리며 침 삼키는 것이 보였다.

“목을 잘랐습니까?”

“예-?.”

이것을 뭐로 설명 한단 말인가?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용접기로 목을 잘라 살해 한게 사실이다. 연이가 꾼 꿈은 오충일 의원이 살해당할 당시의 모습이다. 꿈을 꾸는 주인공만 다를 뿐 같은 이야기다. 이것은 꿈을 통한 영혼이입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영혼에 이입되고 그 이입된 영혼이 자신의 경험을 보여주는 것.

“연이 씨가 꿈꾸신 방식대로 오은실이의 아버지 오충일 의원이 살해당했고 만복사지 터에서 머리만 발견 되었습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조금 전 냄새라고 했는데 무슨 냄새인지 기억 하십니까?”

“글쎄요. 습하고 더럽고 … 뭔가가 막 썩는 냄새가…. 시체 썩는 냄새와 똥 썩는 냄새 막 그런 게 섞여 있었어요. 하수 종말 처리장 주변에서 나는 냄새 같은 그런 거요.”

“…?”

수사본부에서는 남원시 관내 악취를 유발 시키는 곳에 대해 수색에 들어갔다. 그러나 농업이 주산업인 남원에서 악취유발 지역이란 특별할 게 없었다. 돼지를 키우는 돈사, 닭을 키우는 계사, 소를 키우는 우사, 가축 분비물을 퇴비로 발효 시키는 퇴비공장, 농가에서 한 두 마리 소 돼지를 키우는 곳까지 합하면 남원에 있는 마을 마다 집집마다 수색해야 했다. 그러던 중 그날 해질 녘 운봉 파출소에 신고가 들어왔다. 어제 새벽 2-3시 경 푸른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폐 축사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수사본부는 기동 타격대와 형사대를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은 엄계리 254번지 김ㅇㅇ씨의 우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몇 발자국만 산으로 오르면 백두대간 줄기를 밟을 수 있는 산중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 폭우로 길이 파이고 허물어져 자동차는 들어갈 수도 없어 산길을 타고 올라가 급습을 했지만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계리 마을 뒤편에 있는 방죽에서 낚시를 하던 박ㅇㅇ씨가 새벽 2-3시쯤에 기계 소리가 나 올려다보니 푸른 불빛이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누군가 축사를 경매 받아서 새로 일을 시작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별 의심을 안했는데 이장이 방송하는 소리를 듣고 신고 했답니다.”

“이장이 방송을 했다는 말은?”

“예, 수사본부의 지시를 받고 순찰을 강화 시켰지만 순찰을 돌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마을 이장님들께 일일이 전화를 드려서 마을 방송을 하게 했습니다. 부탁 “

“예~, 참 잘하셨습니다. 이렇게 범행 장소를 찾아 낸 것은 소장님의 현명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은 누구의 소유입니까?”

“원래는 김ㅇㅇ이의 젖소 목장이었는데 부도가 나서 지금은 운봉 농협이 소유자로 되어 있을 겁니다.”

“그럼 김ㅇㅇ씨는 어디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죽었지요. 부도가 나자 마누라 도망가고 딸 하나 있는 거 가출하고 술로, 술로 살다 어느 날 트랙터에 목을 매 죽어 버렸지요.”

“그게 언젭니까?”

“한 2-3년 됐지요? 가만… 2년 8개월 쯤 됐네요.”

김 반장은 농사짓는 사람도 부도가 난다는 말에 놀랐다. 농사짓는 게 열심히 땀 흘려 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버려진 축사 웅덩이에서 알을 깐 모기 파리가 득시글거리는 가운데 악취가 말 못할 정도였다. 그 중에도 황 박사가 있는 곳은 동물의 오물을 모아 두는 퇴비사(거름창고)라 그 썩는 냄새는 두통을 호소케 할 정도였고 조금만 거짓말을 보태면 냄새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만 했다.

“저쪽 마당에서 피해자를 살해 하고 이쪽으로 와서 저기 카터기로 조각을 내서는 여기 거름 속에 파묻은 것으로 보여. 이것 봐 아주 잘게 부셔졌지?”

황 반장이 거름 속에서 작은 뼈 조각을 집어내 김 반장에게 보여줬다. 김 반장이 뼈를 짚어들고 범인이 움직였을 동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마당에는 널빤지가 있고 널빤지에는 손발을 묶었던 것으로 보이는 네 귀퉁이의 못과 두꺼운 철사가 묶여 있었다. 그 옆에는 산소통과 산소용접기 등, 살인도체(殺人屠體) 기구가 있었다. 톱, 칼, 갈고리, 그리고 작두가 있었다.

“피 한 방울이 없군요.”

“전문가야. 그것도 아주 숙달된…, 여길 봐. 여기 이 거름이 바싹 마른 거름이거든 그런데 이 속을 파면 축축한 물기가 나와 이 축축한 게 뭔 줄 알지? 저기서 용접기로 모가지를 사체에서 피를 뺀 거지. 저기 저 스키로다 있지 그걸 가지고 널빤지에 묶인 시체를 거꾸로 들고 피를 뺀고 그 널빤지에서 다시 도체작업을 한 것으로 보여.”

“도체요?”

“잘 봐! 암만 거름을 뒤져도 뼈는 있는데 살이 없어. 살! 놈은 육가공 공장에서 뼈를 발라내고 살코기만 포장을 하듯 여기서 사람을 죽이고 살코기만 가져갔어.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살이 없을 리가 없어.”

범인은 도살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고 있었다. 피 빼는 거며 뼈 발라 내는 것, 그리고 증거 인멸을 위해 기계를 세척하는 방법까지. 만일 낚시꾼이 그날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다면 내장과 뼈는 거름 속에서 금방 썩을 것이고 언제고 누군가는 저 거름을 가져다 농사를 짓고 그러면 완전 범죄가 되는 것이다.

“살인을 한 도구들을 그대로 두고 범인은 어디로 갔을까요? 여기 어디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진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디에 살인 도구가 있단 말인가?”

“저기 널빤지며 갈고리 톱 칼 모두 살인 도구잖습니까?”

“흐흐흐- 내 장담하는데 저것이 살인 도구라는 증거를 남겨 놓았을 것 같나?”

황 반장이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모터를 돌리자 호수에서 물이 쏟아졌다. 자동차 세차장에서 세차를 할 때 쓰는 고압 분사기가 물을 뿜었다. 그리고 그 물은 마당은 고랑을 타고 방죽으로 들어갔다.

“내가 범인 이라면 말이야. 이 널빤지에 비닐을 깔고 피해자를 묶었을 거야. 그러니 널빤지가 물기하나 없이 이렇게 깨끗하지. 그런데 의문점은 왜 범인이 피해자를 도체(屠體)를 했냐는 거야.”

인육을 위한 연쇄 살인? 점점이 드러나는 살인마의 만행에 김 반장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오충일 의원을 최종적으로 목격한 사람은 저녁 10시 침실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가정부 박예남씨다. 그렇다면 오충일 의원은 납치돼 이곳으로 왔고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 살해 되었을 것이다. 목격자가 발견한 파란 불빛은 오충일 의원을 살해한 직접적인 도구인 산소 용접기 불꽃이다. 사람을 죽인 다음은 어떻게 했을까? 피를 사체에서 피를 빼기 위해 사체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도체(屠體)작업을 하고난 후 커트기에 뼈를 부술 부수었다. 뼈가 커서 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작두에 자르고 작두로 할 수 없는 큰 뼈는 톱으로 썰어서….

산소 용접기로 사람을 죽이고 피를 빼며 살을 발라내고 뼈는 잘게 부셔서 거름 속에 파묻어 버린 극악무도한 범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반장은 배수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혹시 범인이 뭔가를 흘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도면밀한 범인이라면 배수로까지 살폈을 것이다. 기름덩이 같은 것이 잡풀에 걸려 있다가 인근 주민에게 발각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다 사소한 소지품 하나 라도 떨어뜨렸다면 그게 사건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축사 마당에서 배수로까지 샅샅이 뒤져도 족적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귀신이 살인을 한 것일까? 어떻게 이렇게 깨끗할 수 있지? 김 반장은 끊어진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암담함에 절망하였다.

“반장님 이연이 씨가 현장을 보고 싶다는데요?”

“이연이?”

“예, 살인 현장을 꿈으로 보았다는….”

김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절망감도 절망감 이지만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사건을 풀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 반장이 초임 때만 해도 체면수사 요법 따위는 채택하지도 않았던 수사 기법이었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사기법이지 않는가. 더욱이 이연이가 아니라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오동철 의원을 살해한 장소를 찾아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연이가 폴리스 라인을 넘어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긴 생머리 그리고를 한 연이는 잠을 못자고 객지 생활에 고생을 한 탓인지 퀭한 눈이 더 신비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무섭게 보이기도 했다. 불과 며칠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연이가 느릿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다 멈춰선 연이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작두였다. 날카로운 칼이 얇은 홈에 끼워져 있다가 풀, 볏짚 따위를 자르기 위해 아귀를 벌리고 있었다.

“오래된 작두네요.”

“그래요?”

“쇠가 무쇠잖아요. 요즘 나오는 것들은 스테인리스라는 쇠를 쓰는데….”

연이가 작두 옆으로 가 앉았다. 귀 옆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쪼그리고 앉아 작두를 만지는 연이….

찌르르 찌르르 이상한 전율 무슨 느낌이지? 전화선 표피를 벗기고 혀 바닥에 대보는 느낌? 아니면 섹스 할 때 남자의 그것이 파고들 때 멍멍하고 찌르르한 자극을 주는 느낌?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강하다. 무슨 느낌이지? 연이가 작두의 손잡을 쥐었다. 그러자 전신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펄펄 끓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픽 쓸어 진 연이가 물고기 퍼덕이듯이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 아련히 들리는 소리…. 까르르 까르르 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기운세고 건장한 아버지가 풀을 발채 가득 지고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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