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수요일 맑음 여행지를 결정하고 5월 14일에 비행기 표를 손에 쥐었다. 일정도 대충 계획을 세웠다. 7월 28일부터 8월 23일까지 26박 27일이다. 루마니아로 들어가서 불가리아로 나오는 여정이다. 비행기는 러시아 비행기로 모스크바를 경유한다. 1,133,600원이다. 일정을 정하고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하고, 방문하고 싶은 곳을 정하고, 이동할 길을 찾아가며, 막힐 때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정보를 공책에 메모한다. 이번 여행에 제일 어려운 것은 안내 책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녀와 기록한 여행기를 읽으며 루트를 그려 나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이동하는 방법, 숙소, 방문할 곳의 정보를 알아본다. 숙소는 호스텔 사이트를 열어 도시 당 3~4개씩을 프린트해서 뽑아두었다. 발칸 반도는 유럽의 구석에 있어서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숙제처럼 남아있던 곳이다.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그리스 북부 데살로니키로 들어가 메테오라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좀 빡빡할 것 같다. 가슴 뛸 때 여행하자, 가슴 뛰는 삶을 위해 배낭매고 아침 8시 40분에 섭섭하지만 웃으면서 배웅해주는 아이들과 어머니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유진이는 임용고시 준비로 정신이 없고, 상희는 9월에 군 입대다. 늘 그렇듯이 떠나기가 미안하다. 일단 집을 나서니 등에 진 배낭이 가볍다. 138번 버스를 타고 의정부에 도착했다. 벌써 뜨겁다. 뜨거운 날씨와 학교의 업무, 교회의 일들, 가족들과의 헤어짐, 이 모든 것들도 출발의 설레임을 잠재우지 못했다. 갑자기 배탈이 났다. 아내를 그늘에 쉬게하고 서둘러 의정부역으로 달려가 시원하게 해결했다. 아내는 점심으로 김밥을 한 줄 사왔다.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낯설지 않은 반갑고 시원한 공항이다. 12시경에 비행기 좌석표를 받았다. 비행기는 오후 2시 20분 출발이다. 김밥 한 줄로 둘이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여권에 도장을 받은 후 탑승구 7번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기분이 좋다. 두려움과 걱정, 기대와 설레임으로 마음은 혼란스럽다. 1시 35분이다. 비행기는 보잉 777기로 대한항공이다. 러시아와 항공제휴로 비싼 대한항공을 타게 되어 기분이 좋다. 비행기 안에는 거의 한국 사람이다. 크고 깨끗한 비행기에 서비스도 좋다.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특이하다. 별 탈 없이 비행기는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다. 아직도 왕년의 파워만 믿고 고집스럽게 무게 잡고 있는 러시아 공항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늙고 세상에 뒤쳐진 공항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에 이 공항에서 진하게 고생하던 일이 기억난다. 이제는 고향같이 편한 공항이 되었다. 갈아타기를 기다리며 공항에 앉아있으려니, 아직도 해가지지 못하고 공항 활주로 끝자락에 뜨겁게 걸쳐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시각으로 밤 12시 40분인데, 이곳은 17시 40분이다. 공항은 무척 덥다. 공항이 좁은 것도 답답한데, 흡연실이 따로 없어 화장실 앞에서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역겹다. 시차는 대략 5시간정도 당겨진 것 같다. 이곳 시계로 20시 40분에 비행기는 루마니아로 출발했다. 한국에서 출발 할 때는 승객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는데, 루마니아 행 비행기에는 한국 사람이 아내와 나, 둘 뿐이다. 모두 다 어디로 향해 갔을까? 덩치 큰 백인들 틈에 끼어가려니 왠지 위축되는 기분이다. 낯설기도 하고, 외롭고, 서럽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하다. 마음은 더욱 긴장된다. 이 비행기는 러시아 비행기다. 무뚝뚝하고 질긴 햄이 들어있는 기내식이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불친절, 도도함, 무표정 등이 기내식에 모두 배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대접받는 것이 불쾌하다고 생각하며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에 도착하였다. 23시 40분이다. 이곳 시계는 22시 40분으로 또 1시간 당겨졌다. 밖이 어둡고 늦은 시각이라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 가는 것이 큰 숙제다. 다행히도 1시간 당겨져서 시간적이 여유가 좀 있다. 입국수속을 서둘러 마치고 공항을 나왔다. 새로 지은 공항이라 깨끗하지만 규모는 좀 작다. 이곳이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의 헨리 코안다 국제공항이다. 유럽에서 환승한 국제선은 이곳에 도착한다. 오토페니 공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카레스트 외곽 17km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나라같이 중심가로 향해가는 도중에 국내선 공항인 바네아사 공항이 있다. 공항에서 버스 783번을 타면 되는데, 늦은 밤이라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는 메타기가 부착되어 있지만 믿을 수 가 없어서 흥정하기로 했다. 공항을 나서니 시골같이 조용하다. 삐끼가 달라붙는다. 목적지를 얘기하니 35E를 내란다. 시내까지 요금이 가이드북에는 10E라고 적혀있다. 숙소가 시내 외곽 골목이라 25E를 주기로 했다. 이 요금도 비싸지만 늦은 밤이라 그냥 가기로 했다.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택시기사는 주차요금을 정산하는 부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그 시간이 길어 보인다. 긴장되는 상태와 시간이라 여유가 없다. 낡은 택시인데도 잘 달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루마니아의 첫 인상은 좀 어둡고 시골스럽다. 염려했던 것 보다 쉽게 예약한 YMCA 호스텔에 도착했다. 밤에 도착하는 것 때문에 예약을 해 두고, 정말 많이 걱정했다. 걱정에 비해 너무 쉽게 숙소에 도착해서 허탈할 정도다. 믿음이 없는 연고로다. 벨을 눌러 어두운 숙소를 깨웠다. 주인이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 젊은 시골 사람 같다. 예약 할 때 도착시간으로 된 밤 11시~12시 사이를 정확히 지켜서 기분이 좋다.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2층에 있는 방 키를 받았다. 좁은 통로에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이다. 힘주면 무너질 것 같은 숙소지만 편안함이 느껴진다. 백열전구를 키고 짐을 내려놓으니 모든 긴장이 풀어지고 감사의 미소가 얼굴에 가득해 진다. 드디어 루마니아에 도착했다. 어두운 밤에 서둘러, 정신없이 달려와 실감나지 않지만 그래도 한국 땅에서 멀리 떨어진 조금 낯선 땅 루마니아에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루마니아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라다. 동구권,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 옛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나라, 공산주의 정도다. 문장도 아니고 몇 개의 단어만 머릿속에 희미하게 맴도는 낯선 나라다. 목적지를 정하고 공부해보니 드라큘라라는 단어가 추가된 나라다. 루마니아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몰다비아공국과 왈라키아 공국이 1861년 합방하여 루마니아가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에 가담하여 국토를 크게 늘렸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의해 1947년 12월 30일 최후의 국왕 미하이 1세가 폐위되면서 군주제도가 폐지되고,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서 공산화 되었다. 1967년 차우세스쿠가 국가의 수반이 되면서 소련으로부터 빠져나온다. 그의 잔인한 독재정치는 경제악화로 이어져 1989년 12월 17일 티미쇼아라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차우세스쿠는 북한으로 도망치려다. 1989년 12월 25일 오후 5시 30분에 150여발의 총탄 세례를 받고 세상을 떠났다. 1월1일 민주화가 시작되었다. 여러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희망을 갖고 성장해 가는 국가가 되었다. 타원형 모양의 루마니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제외하고 동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다. 차우세스쿠 통치하에서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했지만, 곰들은 이겨냈다’ 는 말이 있듯이 현재 유럽 곰의 60%가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 산맥에 서식하고 있을 정도로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숲을 자랑하고 있다. 차우세스쿠는 자신을 제외하고 곰 사냥을 금지시킨 결과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거대한 카르파티아 산맥이 국토의 1/3을 차지하고, 또 다른 1/3은 언덕과 고원으로 과수원, 특히 포도밭이 가득하며, 나머지 1/3은 비옥한 평원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서울에서 열린 1988년 하계 올림픽 참가 후 1990년 3월부터 수교하였다. 그 전에는 북한과 관계가 깊던 나라다. 특히 차우세스쿠는 김일성이 주장한 주체 사상을 루마니아어로 번역하여 보급할 정도였다고 한다. 늦은 밤, 먼 길을 비행기타고와서 피곤하지만 도착하여 짐을 풀고 나니 기운이 난다. 샤워를 간단히 하고 아래층에 있는 컴퓨터로 도착했다는 글을 올렸다. 한글 전환을 모르니 영어로 간단하게......... 약간 덥다. 감사드리고 내일을 설계하며 누웠다. 날아온 하루의 일정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지나간다. 아주 진하고 감동적인 영화다. 내가 주인공이니까......... 아내는 영화가 재미없는지 코 골며 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