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9. 막고굴 433굴 약사경변
고통, 수용·부정 대상 아닌 치유 대상으로 접근
중앙의 약사여래 삼존 양측에 칠층 등륜과 12신장 배치
여래 자비에 중생의 발심과 신장의 위신력 더해짐 표현
빈곤·질병 등 현실 문제에 적극 화답하는 대승사상 대변
막고굴 433굴 천장부의 동쪽 경사면에 조성돼 있는 약사경변도. 중앙의 약사여래 삼존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등륜과 12신장이 배치돼 있다.
“부처님과 보살은 큰 의원이므로 선지식이라 이름하나니, 왜냐하면 병을 알고 약을 알아서 병에 맞추어 약을 주는 까닭이다.”
‘열반경’에서 설한 이 법구와 같이, 선지식은 중생이 처한 심신의 고통에 따른 법의 처방을 내려주므로, 병을 고치는 의사로 비유되곤 한다. 가능하면 더욱 많은 중생을 법의 치유로 이끌고자 하는 대승사상에서 이행도를 통한 불퇴전의 자리를 제시하는 정토사상의 출현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미륵보살이 주재하시는 도솔천이나, 아미타부처님이 주재하시는 서방정토는 모두 기본적으로 염불과 수행을 통하여 약속되는 내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중생의 고통은 어떻게 구제받는가? 현실의 고통은 과거세의 업보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다시 미래세의 안녕을 위해서 오로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가?
약사불의 정토신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화답한다. ‘약사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비사리국 낙음수(樂音樹) 아래에서 가진 대중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이다. 이때 문수보살은 “상법(像法) 세상의 중생들의 업장을 없애고, 그들을 이롭고 즐겁게 할 부처님의 명호와 근본 대원과 공덕”을 설하여 줄것을 요청하였다. ‘상법세상’이란 곧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교법과 수행만 남은 시대를 말하니, 즉 지금 우리 시대를 말한다. 부처님은 그 대답으로 동방정유리국토의 교주인 약사유리광불의 대원과 공덕을 설하셨다.
약사불 경전은 비교적 늦은 시기에 출현한 정토경전이다. 구체적인 시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약사경’은 내용 중 아미타불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아미타불 경전보다 늦은 시기에 성립하였음이 확실하다.
‘약사경’이 중국으로 처음 전해진 것은 동진(317~420) 시대에 역출된 ‘불설관정발제과죄생사득도경’이다. 이후 류송 혜간이 457년 번역한 ‘불설약사유리광경’, 수나라 달마굽다가 616년 역출한 ‘불설약사여래본원경’, 당 현장이 650년에 역출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등이 유통되었다. 이들 경전 내용은 모두 대동소이하지만, 당 의정이 인도구법 후 돌아와 707년에 번역한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은 동방 칠불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중 혜간의 역본을 제외한 나머지 4부 경은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다. 보통 이들 경전을 통칭하여 ‘약사경’이라고 부른다.
돈황석굴에서 ‘약사경’을 회화로 표현한 것은 수대에 이르러서이다. 앞서 소개한 243굴 미륵상생경변도의 경우(4회 참조)에서 보듯이, 이 시기의 경변은 비록 내용적으로 단순하지만, 오히려 경전의 대의를 명확하게 파악하는데 용이하다. 이점은 막고굴 433굴 천장부의 동쪽 경사면에 그려진 약사경변도에서도 확인된다. 이 변상은 약사여래와 그를 호위하는 보살과 신장, 그리고 비천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동방정유리정토를 표현하고 있다. 그중 주목할 핵심요소는 약사여래 삼존, 등륜(燈輪), 12신장의 세 부분으로 꼽을 수 있다.
첫째, 중앙의 약사여래는 보살대중의 상수인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의 협시를 받으며 정토를 주재한다. 경전에 의하면 동방정유리정토는 이곳에서 동방으로 10항하 모래수의 불국토를 지나서 자리한다. 이곳의 땅은 유리로 되어 있고, 성과 대궐과 누각과 난간 등이 모두 칠보로 장식된 청정세계이다. 약사유리광여래는 본래 보살도를 행하실 때, 다음과 같은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워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였다. ①여래와 같은 청정한 몸을 얻는다. ②모든 사업을 성취케 한다. ③필요한 물자를 모두 얻는다. ④대승의 무상도를 안립한다. ⑤삼취계를 구족하여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다. ⑥모든 근을 구비하여 장애가 없게 한다. ⑦심신의 질병을 치료한다. ⑧남녀의 성별에 따른 차별을 없앤다. ⑨정견(正見)을 얻는다. ⑩국법으로 인한 우환을 해결한다. ⑪묘한 음식을 제공한다. ⑫묘한 의복을 얻는다. 이러한 12대원의 내용은 중생을 궁극적인 무상보리로 이끄는 불퇴전의 자리를 보장하는 부분도 있지만, 질병, 빈곤, 장애, 차별, 의식주, 송사 등 현실의 구체적인 재액과 고통에 대한 구제의 원이 담겨있다.
둘째, 약사여래 삼존의 양측에는 각각 칠층으로 이루어진 등륜이 설치되어 있으며, 등륜을 지탱하는 기둥 상부에는 번(幡)을 매달아 놓았다. 등과 번은 ‘약사경’에서 중생이 재액을 막고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수행해야할 제식의 주요 도구로 등장한다. 즉 병자를 위하여 “약사유리광여래께 귀의하고 많은 스님을 청하여 이 경을 독송하며, 7층의 등을 밝히고, 목숨을 이어 달라고 기원하는 오색의 신번을 걸어 둔다.”
셋째, 다시 등륜의 양측에는 12신장이 6명씩 나뉘어 약사여래에게 예배하고 있다.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대중 가운데 야차들을 거느린 12신장이 삼보에 귀의하고, 약사유리광여래의 명호를 수지하고 공경하는 이들을 호위하고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맹세한다.
종합하자면, 약사여래와 등륜과 12신장의 도상은 중생에 대한 12대원으로 대표되는 여래의 대자대비와, 그러한 여래의 자비에 합치하여 고난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중생의 발심, 그리고 이들을 가피하는 위신력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에서 이 설법을 ‘설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設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 ‘설십이신장요익유정결원신주(設十二神將饒益有情結願神呪)’, ‘발제일체업장(拔除一切業障)’이라고 명명한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처럼 약사여래 신앙은 중생에 대한 자비를 근간으로 하는 대승사상의 입장에서 빈곤, 질병, 번민 등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생산되었다. 고통이 수용 혹은 부정의 대상이 아닌 치유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여파는 당대 이후 불교의 밀교화 또는 세속화로 연결되며, 오늘날 우리 불교문화에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633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