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신뢰를 받는 것은 공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법이 지닌 불가사의한 권위의 근거는 이것밖에 없다. 늘 공허하고 불안정한 판단력을 가진 자들이 새로운 법률을 만든다.
<몽테뉴>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몽테뉴는 모랄리스트였다. 직업이 판사인 그 스스로가 법이 얼마나 대책 없는 것인지를 인정했다. 위대한 몽테뉴! 답을 찾으려고 애쓰면 삶이 고달파진다. 법 믿으면 밥부터 힘들어진다. (코로나로 난 밥줄부터 강제로 끊어졌다)
법을 의지하기 전에 실망의 한숨부터 내쉬고 시작해야 한다. 법은 <동해 보복>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는 복수의 달콤함을 느끼고 싶은 유혹이 더 강하기 때문에 절대로 법으로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삶은 돌릴 수 없는 물레바퀴이다. 바빌론의 위대한 왕 함무라비가 대선에 나온다면 난 그를 무조건 지지할 것이다. 현실에선 절대로 불가능한 천상의 맛!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지난 시간 난 덧셈의 시간만이 진리인 줄 알았다. 코로나 양성(+)이 확정되었던 순간, 인생은 갑자기 내리막길인 뺄셈(-)으로 향했다. 덧셈이 뺄셈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코로나 양성으로 인생이 긍정+(positive)에서 부정- (negative)이 되는 기적도 하사 받았다. 모세의 기적을 경험한듯한 영감을 삶에서 얻었다.
어디에 계신지 그분의 근황이 궁금하다. 코로나로 인해 도끼로 가슴을 쪼개는 고통을 겪으셨다고 글 올리셨는데 잘 지내시는지 후원금이라도 드리고 싶다. 도끼의 고통을 몸소 겪으시고 부활하셨으니 십일조 아니 백%라도 바치고 싶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 니체의 말은 사실일까? 난 아니다. 살만하니까 죽을 것 같았던 지난날들이 뼈에 사무쳐 더한 고통으로 진화했다. 간경화가 간암이 된 경우이다.
개구리 올챙이시절 기억 못 한다는데 나비는 애벌레시절 기억할까?
난 코로나 372번을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새기고 산다. 양성시절 음성이 돼서도 잊지 않고 지낸다.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직도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원히 회복될 수 없을 만큼 망했기 때문이다. 바닥까지 내려오니까 싸울 용기가 났다.
혹자는 아직도 코로나 얘기냐 작작해라 ,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그만해라 할지도 모른다. 그 호랑이가 담배 피우다 폐암으로 죽어버린 시간이 왔음에도 난 아직도 아무런 답도 얻지 못했다. (인생 핵노답이다.ㅋ)
간이 배밖으로 나와야 용자가 된다. 어찌 보면 어제도 전생이다. 이웃집 아낙네가 백두산 꼭대기 펜트 하우스 동굴로 이사 간다고 매머드 코트 입고 자랑질하러 왔던 그 시간만이 전생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 확진자라는 이유로 마녀사냥에서 죽었다 살아났으니, 난 전생을 기억하는 위대한 자이다. 니체식으로 치면 난 초인이다. 사자가죽 걸치고 낙타 타고 산으로 올라간다. 고결한 영혼을 지닌 진정한 초월자여!
전백성이 슴베 찌르게로 찌르고 난도질했음에도 살아 부활했다. 수만 년 전이 아닌 현대에도 혹독한 빙하기가 있었다. 2020년 코로나 확진자들이 바로 현존 증인이다. 혹독한 빙하기에도 말이나 댓글이 없어서 비난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손가락질은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본 북극의 얼굴이 오늘은 V라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날마다 세수하는 빙하, 지구 온난화로 네 얼굴도 내 얼굴처럼 흘러내리는구나! 처연하게 아름다운 북극의 얼굴! 삶에 부딪치고 부딪쳐 날마다 눈물 흘리는 너! 아니 나!
옷장 안의 철 지난 외투가 말을 건다. 나 이제 장례식이라도 치러 달라고 시체처럼 갇혀있기 너무 지겹다고 말을 건다. 그림자 취급하는 거냐고.. 묵언의 시위를 한다.
아마존 열대 우림에 사는 아몬다와(Amondawa) 부족은 시계나 달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언어엔 ‘시간’ ‘주’ ‘월’ ‘년’이라는 단어조차 없다. 밀림 깊숙이 사는 그들에겐 시간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멈춰버린 곳으로 그곳으로 가고 싶다. 차라리 잃어버린 시간이었으면, 냉동인간으로 누워있다 살아 돌아온 시간이었으면 용서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백 년을 잠만 잔 숲 속의 공주 오로라는 왕자를 만난 이후의 삶보다 이전의 삶이 더 좋았다고 회고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후속 편은 아직 안 나왔기 때문에 아무도 알지 못한다. 타인의 아픔을 안주삼아 떠들었던 내 덜 익은 청춘이 부끄러워 술술술 넘어가는 술!
사랑, 증오, 경멸 그리고 복수의 유통기한 중 과연 어떤 게 가장 길까? 제대로 복수해야 하는데 블록버스터에 나오는 여신처럼 복근부터 만들어야겠다. 아테나 여신을 롤 모델로 삼아야겠다. 에트나 화산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분출한다. 심장이 오른쪽으로 몇 차례나 이동한다.
이 지옥을 어떻게 견뎌 나가야 할까? 연옥과 지옥사이에 끼어있는 시간들, 크레바스에 갇혀 울고 또 운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들이 혐오스럽고 역겹게 느껴진다면 그때 잎을 떨구고 고개 숙이는 한해 살이 풀처럼 스스로 말라 사라지리라!
지난 2년간의 긴 싸움에서 얻는 건 승리도 패배도 아니었다. 아무도 그로 인해 성찰하려 하지 않았고 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답은 "죄송합니다. 기억이 안 나서요 "였다. (교통사고나서 다들 뇌를 다치셨나 심히 걱정된다. 그런 좋은 기억으로 일상 생활이 가능하신지 염려된다.)내가 생각한 최악의 답안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맞았다.
심지어 상처를 준 자들도 자신들을 희생자로 둔갑해 버리는 <여우와 구슬> 이야기 같은 시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