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이 무렵이면 나타나는 사람 세례자 요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오늘은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고 제 마음을 온통 진동시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거칠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구불구불한 골짜기 속에 있는 제 마음을 바라봅니다.
나 비록 약하고 죄로 얼룩져있지만 주님의 빛으로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나아가 하루하루 그분이 오실 길을 마련 할 수 있게 하소서.
제 마음의 그릇이 오실 아기예수님을 위한 작은 구유가 될 수 있도록...
대림 시기 두 번째 주일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회개를 뉘우치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히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본질에 가깝습니다.
뉘우침은 새 출발을 위한 행동일 뿐입니다.
다시 시작하고자 아파하는 것이지, 자신을 괴롭히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뉘우침만을 붙들고 온통 그쪽에만 신경 쓰는 것은 올바른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새 출발을 위한 ‘성찰’입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반성’입니다.
이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소홀히 하였기에,
열심히 회개했지만 새 출발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상이 불안하면 사람들은 돈과 물질에 집착합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이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주님의 힘’이 물질의 힘보다 강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사랑의 힘’이 돈의 위력보다 세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실천입니다.
믿음과 신뢰는 언제나 ‘내 쪽’에서 시작합니다.
자신이 먼저 믿고 베풀면, 결국은 사람 사이의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께서 보호해 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이 속이고’ 거짓말하더라도 신뢰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용기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자리가 있습니다.
남편은 남편의 몫이 있고 아내는 아내로서의 몫이 있습니다.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자리가 있고 부모는 부모로서의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인은 신앙인으로의 자리가 있습니다.
성직자는 성직자로서, 수도자는 수도자로서,
평신도는 평신도로서의 고귀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겸손이요, 사랑 안에 머무는 길이지만
때때로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두 마음을 품고 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신부가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머릿속엔 성경이 보이지 않고 화투장이 보이고 오락기나 보인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여자가 멋진 남자를 보고 아, 내 남편이었으면 좋겠다.
남자가 어떤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내 아내는 저런 매력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세요.
그 가정 안에 화목함이 있겠습니까?
내 자식은 왜 저 모양일까?.......
혹 빼앗긴 마음이 있다면 마음을 돌리십시오.
빼앗긴 마음을 인정하는것이 겸손이요,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이요,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겸손은 천국의 문을 열고, 교만은 지옥의 문을 연다.”고 하였습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겸손함으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또한 천국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에 대해 자랑하지 않고
주님을 자랑하는 한 주간되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