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을 따라온 가을색의 비가 내리던 날
시가 없어도 시가 되는 길을 걸었다.
시인을 닮은 진분홍 표지의 시집 한권을 가슴에 담아서 길을 걸어가면
저절로 시집에 담긴 시어들이 마음속에 다가온다.
표지의 색 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함께 시인을 따라 가을날의 시인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우리의 감독님이 연출했던 영화의 출연배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가슴에 시어를 담고 저마다의 표정은 배우들처럼
가을을 따라 걸어가는 길위에 노란 은행잎이 하늘위에서 고공행진을 시작한다.
생산성본부를 지나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으로 가는 길위 90도 각도의 정방향이 아닌, 살짝 휘어진 사거리에서 탐방이 시작된다.
휘어진 길이 옛 물길을 따라가는 물길임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들이 참으로 많은 나날들이다.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배우고 또 배운다.
금천교가 있던 자리는 북악산과 인왕산 자락을 타고 흐르는 물길이 메워져 소로가 되었다.
장마가 지면 광화문 광장이 왜 물난리를 겪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물길의 길이 막히면서 물이 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지 않아야 하는 길이 어긋날 때 발생하는 이변의 모습이다.
강화도에서 가져온 박석을 경복궁 근정전 앞에 깔았던 조상님들의 지혜를 생각한다.
건축에 사용되는 소재에도 자연의 흐름을 적용하였다.
동양화가로 한국의 전원을 그리고 조선시대 산수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 해석하여 화폭에 담았던 청전 이상범화백의 가옥에서 300년이 되었다는 회화나무의 늘어진 가지를 바라본다. 회화나무의 무성한 푸른 잎은 화백의 그림속에 어떤모습으로 재현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화백의 집을 중심으로 천경자 화백과 노천명, 이상시인 등 교과서에서 외우던 이름들로 가득한 문화의 거리를 걸어간다.
가을은 회색빛의 옷을 입고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에 종종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가을비는 매우 강한 인내심으로 우리의 길 걷기를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청운 효자동 자치회관 5층에 올라 이완용의 고풍스런 저택과 배화학당 구내에 자리한 자교교회의 뾰족탑에 눈길이 머문다.
그곳은 여전히 시간이 멈추어있는 것 같은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자수궁교의 흔적을 지나고 선희궁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옛터를 바라만 보고 돌아서는 길에 아쉬움이 남겨진다.
아침부터 바빴던 걸음에 포만감이 찾아올 때 쯤 빗방울이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했는지 가을 색을 드리운 은행잎과 함께 공중회전을 시작한다.
종침교와 주시경 선생, 우리 한글, 세종대왕, 용비어천가, 누하동. 누상동...닮은 꼴의 두 단어가 뱅뱅 맴을 돌다 은행잎과 함께 거리에 떨어진다.
- 뜨거운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목마를 노래한다 -
박인환이 아니어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목마의 방울소리를 따라 가고 있었다.
뜨거운 커피향속에 가을이 가득 내리고 있는 시의 거리.
후드득 내리는 빗방울에 안녕을 고하기는 아쉬운 가을길이다.
비에 젖은 은행잎은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물감을 풀어놓듯 선명한 노란색을 뿌리고 있었다.
이 가을을 그냥 두고 전철을 타는 것이 아쉬웠다.
가을 속에서 가을비가 나를 부른다.
후드득 날리는 가을의 거리에 바람이 불어온다.
-너 우산 뒤집힌 거 몰랐어?-
사진 속에 내 우산이 뒤집혀있다.
가끔 아주 특별한 것들에서 아직은 남겨진 감성이 뜻밖의 모습으로 남겨진다.
모자를 쓴 머리위에도 소매깃에도 가을비속에 바람이 흔적을 남긴다.
뒤집힌 우산이 따스한 웃음이 되어 차가운 가을비를 잊게 한다.
비에 젖은 은행잎을 닮은 웃음이다.
가을색을 따라온 두 사람의 웃음도 공중회전을 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보내고 싶은 가을이 빠르게 떠나고 있었다.
다시 만날 다음해의 가을날에도 함께 했던 선생님들이 오늘의 모습으로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떠나는 가을에 손을 흔든다.
* 이재원 선생님의 해박하신 한양 도성 길에 놀라움이 가득하였습니다.
다시 그 길을 마음으로 걸어보지만 여전히 미숙하여 제 나름의 글로 탐방후기를 대신 합니다.
* 사진은 장혜섭 선생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첫댓글 애고 또 밤을 세웠겠내요, 힘들기도 할 탠데 해섭 선생님이 낙엽 밟고 싶다고 하시니까 선뜻 동행해 주는 수현씨 를 보고
참 좋은 사람 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해섭님이 나한태 보여주신 관심을 감사 하면서도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거절하고 돌아 왔으니 참 으로 모자란 사람 이지요. (반 성 중) 그리고 수현씨가 찍은 사진이에요? 노란 은행잎이 펼쳐진 길 한켠에 반만 보이는 우산이 마치 떨어진 은행잎처럼 주인 잃은 우산과 하나가 된것 처럼 보여서 책을 읽은것 같았어요? 완전 감동에요 어디 사진전 응모가 있으면 보내 보면 좋을것 같은대요?
샘의 진솔한 글들이 항상 가슴을 따스하게 하여주어..방앗간에 참새가 들리듯 그렇게...첫번째 댓글~~끝까지 안 읽으셨네 했는데~~ㅎ~
저도 따라쟁이 함 되어볼랍니다.
완전 무장해제를 시키시는 재능이 탁월한 감독님이 되는 비결이신 듯~~~^^
ㅎㅎㅎ 사진이 확 들어와서 글을 읽기 전에 답글을 적고 읽어보니 ㅋㅋㅋ 하긴 수현씨도 해섭샘 만큼 잘 찍는 실력이라서 요. 당연히 그런줄 알았지요,,,역시장 해섭 선생님 대단 하시지요.
제 사진 찍어주시느라 완전 우산도 "에이~~"
하고 던지셔서 그 우산 집어들고 비가 내리거나 말거나~~하였던 시간이 글 하나를 쓰게 하였습니다.
내 안의 마음을 풀어헤치지 않으면 쓰지 못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어서..,아마도 상상력 부재인듯~~^^
뜨거운 차 한잔의,,,,,, 시작되여 가을에 손을 흔든다. 이 부분은 정말 멋진 가을 "시 에요. 짱,,,
진분홍 시집이 가방속에 있었으니까요...^^
피천득의 '구원의 여인상'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원숙하면서도 앳된 데를 지니고
지성과 함께 한편 어수룩한 데가 있습니다."
황수현을 보면 이 글이 생각납니다.
언제나 따스한 마음으로 손 잡아주시는 분...!!!
항상 고마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 글을 올리시느라 밤 늦게까지 수고하셨네요. 어제 탐방시 열심히 경청하시는 모습을 보며, 탐방기를
쓰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장선생님의 사진도 글과 잘 어울립니다.
어제 탐발길이 가을로 덮혀서 그런지 황수현선생님의 글에도 가을이 짙게 묻어있네요.
이 글은 산문이지만, 가을을 찬미하는 시로 저는 읽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경청하는 제 모습을 보셨어요?
언제나 수고하시는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고운 글~~다시 한 번 그날의 선명한 길을 걸어봅니다.~^^
진분홍 꽃빛 시집 때문이예요~~^^
항상 행사가 끝나면 가장 공부 잘하는 회원의 글이 기다려집니다. 전쳬 행사의 모습과 여러가지 균형을 잃지않고 느낌을 나열해주니 우리회원 모두의 공감과 박수를 받습니다.
선생님의 옛길 안내에 감탄사가 가득하였습니다. 특별한 시간의 거리를 알려주셔서 또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황수현 선생다운 답사기 평론입니다. 답사현장보다 더 역사적 느낌을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부족한 글에 격려를 하여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