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비껴 지은 이축 한옥
덩치 큰 벚꽃나무과 한옥으로 지은 다실 사이, 자연 그대로의 생태 연못이 있다. 집이 물 위에 반쯤 걸친 형상인데, 실제로 연못의 반을 흙으로 메운 후 건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구조는 오랜 시간 터를 두고 고심한 경우라야 가능할 터. 물꼬방의 주인장 김산동 씨는 20년 전부터 이곳을 오가며 집을 스케치했다.
"다실 뿐 아니라 물꼬방 전체에 덤프트럭 5천대 분량의 흙을 쏟아 부었으니 대단한 토목 공사였죠. 자연 그대로의 경사는 유지하되, 땅의 습한 기운을 막고자 암반과 흙으로 단단히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8년 전 시작된 공사는 한정식 레스토랑, 카페, 다실에 이어 얼마 전 갤러리 리모델링까지 마쳤다. 이제는 '물꼬방'이란 이름 아래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와 생태문화 가꾸기의 큰 장으로 변모해 지역의 값진 문화 공간이 되고 있다.
김 대표는 "배부르기 위해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심신을 정화하고 생기를 얻기 위해 먹고 사는 것"이라 강조하며,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친환경에 대한 의지는 건축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기에 그에게 한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 01 욕실은 밀폐된 샤워부스와 작은 세면대로 채워졌다.
↑ 02 수납을 위한 붙박이 수납장. 과감한 색채의 문짝에 나비경첩을 달았다.
묵은 맛 내는 고재 활용하기
물꼬방의 한옥은 조금 특별하다. 기둥과 보에 쓴 나무들은 색이 일정치 않고 굽은 정도도 제각각이다. 한옥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전통 문살의 창호도 없다. 켄터기하우스 풍의 너른 데크와 출입문의 입면은 다소 이국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이 집은 고재(古材)만을 이용해 새로 짜 맞춘 한옥입니다. 20년 전부터 이곳 저곳의 한옥에서 해체된 고재들을 모아왔어요. 이들을 다시 버무려 새로운 형태의 집을 만든 것이죠. 데크 난간으로 쓰인 원주목 하나까지도 세월의 때가 묻은 고재랍니다. " 힌트를 듣고 보니, 과연 공간마다 풍기는 향이 새삼스럽지 않다. 오래 삭힌 묵은지처럼 깊은 맛이 밴 한옥이랄까.
모아 둔 고재들은 폭과 길이가 제한적이라서, 집은 이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좁은 12자 폭을 그대로 따르고 대신 'ㄱ'자 형태로 꺾어 배치를 달리 했다. 현대인의 바뀐 체형을 감안해 층고는 더 높이고, 간단한 입식 부엌에 건식 욕실을 더했다. 인테리어도 변화를 시도했다. 문살이 있는 창호는 조망을 방해하기 때문에 단열이 잘 되는 통창을 선택했고, 붙박이장과 욕실문은 과감하게 녹색으로 페인팅했다. "80년대 남프랑스 지방을 여행하면서 3대가 함께 사는 집을 찾은 적이 있어요. 각 세대별로 지은 집이 나란히 서 있는데, 그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었지요. 과거와 단절하는 것이 아닌 유대를 갖는 건축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물꼬방의 한옥은 교두보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물꼬방의 본채라 할 수 있는 한정식 레스토랑 역시 고택을 이축해 지어졌다. 서울 명륜동에 있던 80년도 더 된 한옥이 그 전신이다. 당시 300㎡ 면적에 달하는 상류층 저택이었기 때문에 대들보, 서까래 등 목재뿐 아니라 장대석과 주추, 기와, 장석 등까지 다양한 고재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은 적재적소의 위치에서 전통의 분위기를 모으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집과 정원 전체를 아우르는 담은 기와를 한켜한켜 쌓아 완성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가 살던 창덕궁 낙선재에서 나온 기와다. "사람과 집, 자연이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꿈꿔 왔죠. 한옥은 공예품인 동시에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생태적인 집입니다. 의식주, 이 모든 문화는 이러한 생태에 기초해야 합니다." 색과 향과 맛.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진정한 먹거리라고 한다. 사람이 사는 곳도 마찬가지다. 세월의 묵은 향이 어우러진 한옥은 생태적 삶을 꿈꾸게 하는, 우리만의 집이다. 출처 : 농가 한옥 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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