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시위’와 중국의 시민사회: 코로나19 방역정책의 전환을 중심으로
주요국제문제분석 2023-06(표나리).pdf
표나리 아시아태평양연구부 조교수
1. 들어가는 말
2. '백지시위'의 발생 및 전개
3. 2019-2022 중국의 코로나19 방역정책 동향
4. 국가-사회 관계의 변화: 중국의 시민사회 발전 전망
5. 국제정치적 함의 및 한국의 고려 사항
<요약>
중국 국무원은 2022년 12월 7일, 3년 가까이 지속해온 무관용 방역 정책의 일부 완화를 발표하고, 2023년 1월 9일, ▲의무 격리 조치 폐지와 ▲국경 개방을 결정함으로써 일명 ‘제로 코로나’ 정책을 전면 폐기했다. 이는 작년 10월 개최된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보인 중국의 권위주의 강화 기조와는 대비되며, 매우 갑작스럽게 진행된 이례적인 변화인 만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전환은 ‘백지시위’로 명명된 대중 시위에 힘입은 바가 크며, 특히 반발 여론의 급격한 국외 확산이 정책 전환을 야기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여론의 반발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매우 드물며, 이 같은 반발이 지도부의 의사결정을 변화시키는 것은 더욱 희소한 사례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방역 정책의 전환이 일견 중국 시민사회의 성과로 보이지만, 방역 개방 이후 발생한 사회 혼란의 책임을 시민사회에 전가함으로써 오히려 지도부의 권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백지시위’의 기저에는 오랜 봉쇄로 인한 사회적 피로도의 증가와 보상받지 못한 개인의 희생에 따른 불만과 분노, 그리고 중국 국내 경제의 악화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다. 동 보고는 이러한 문제들이 우루무치 화재사고를 통해 촉발되고, 인터넷의 발달과 SNS의 사용 증가에 의해 촉진되어 중국인들의 국가-사회 관계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야기하고, 집단행동을 가능케 했으며, 정책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에 주목했다.
‘백지시위’에서 정책 전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기층의 민의가 상층의 지도부에 전달되어 국가정책의 전환으로 이어진 사례로써, 중국의 국가-사회 관계에 일정한 변화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의사를 표명한 중국인들의 집합체가 기존의 인식과 달리 보편적 의미에서의 ‘시민사회(Civil society)’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도 유의미한 움직임이 관찰된다. 중국 사회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과 ▲개혁개방 이후 심화된 사회적 조건의 차이에 의해 기업가·지식인·사회단체 등 엘리트 집단과 기층 대중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사회적 양심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진 지식인 등 엘리트 집단과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기층 대중이 연대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백지시위’의 전신인 2020년의 리원량 의사 추모 집회는 중국의 지식인 사이에서 시작된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SNS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전국적으로 확산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역으로 2022년의 방역 철폐 시위는 코로나 봉쇄에 지친 대중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자유·권리와 같은 정치적 요구가 포함된 ‘백지시위’로 발전하는 데는 지식인 집단이 중시하는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작용했다. 이러한 연대는 시위 확산과 요구 관철의 원동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각 계층 시민들의 집합체를 시민사회로 간주한다면, 그 개념이 내포한 여러 제약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당국 간의 쌍방향 소통 창구라는 중국 시민사회의 순기능이 비로소 작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이버 공간을 통해 중국의 대중들이 지배 권력과 연계된 엘리트 집단을 거치지 않고 국제사회와 직접 연결되기 시작한 점도 주목된다.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감과 중국-국제사회 간 연대가 외신 보도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공유되어 중국 정부도 외부의 시선과 중국의 이미지에 대한 평가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지배 권력과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 시민사회의 특수성으로 인해 시민사회의 양적 성장이 정치적 민주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시, 현재 시점에서 권위주의 체제의 약화나 중국의 민주화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중국인들의 시민의식, 여론을 조직할 수 있는 힘, 담론을 이끌 지도자의 존재 및 역량 등은 아직 미약한 반면, 당국의 행정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우루무치 화재 사고의 수습이나 코로나19 방역 개방 과정에서도 과도한 방역정책 집행에 대한 반성보다는 사회 혼란의 책임을 지방정부와 국민들, 특히 정부를 압박한 백지시위 참여자들에게 돌리는 등 노련하게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백지시위’ 과정에서 중국인들이 주장한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는 국제 보편 가치로서 향후 중국-국제사회 간 사회적 연대 촉진의 매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중국의 서사와 특수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중국이 주장하는 법치와 협의가 당국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 강화를 위한 수사에 그치지 않고 국제 보편가치의 실현 차원에서의 자유와 질서 확립에 일조하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세계가 지난 3년간의 어려움과 희생을 딛고 엔데믹 국면으로 진입하려 하는 지금은 각국의 협력과 공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더욱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고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를 준비해온 한국의 경험을 활용한 협력을 통해 중국과 국제사회 전체의 안정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 붙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