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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가 달립니다. 1980년대를 향해서요. 합정역 늘 만나던 곳에 5분 늦게 도착해 헐레벌떡 차에 올랐더니 방금 도착했답니다. 네비 찍는데 세상에나, 피러 회장이 꼭꼭 눌러 '강화비빔국수'를 입력했는데 엉뚱한 곳이 나온답니다. 두 번, 세 번 해도 마찬가집니다.
업데이트란 것을 도무지 하지 않았답니다. 그 예쁜 홍석미 선생님이 출퇴근하며 쓰는 차인데 차 안팎이 도무지 사람손을 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사님은 또 어떤가요? 마지막 운전을 언제 해본 건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그리고 정말 여유롭고 느긋한 게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 강화도를 빨리 가려면 제방도로를 타는데 어쩐 일인지 타지 못했습니다. 네비를 일찌감치 꺼버린 탓이었습니다. 올림픽 대로가 끝나는 지점, 김포공항과 김포매립지 나가는 오른쪽 길과 강화읍 가는 옛 도로가 왼쪽으로 갈리는데 하마터면 오른쪽으로 빠질 뻔한 것을 10m도 남기지 않고 급히 핸들을 꺾어 제 길을 찾았습니다.
뒤에 꿈푸리, 뜬구름, 알 등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취객 비슷하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기사님은, 그냥 흘려 듣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한층 화제가 되는 쥐 이야기 등으로 오전 10시 8분쯤에 출발해 오전 11시 20분쯤 강화경찰서 앞 골목에 접어들었습니다. 익숙한 골목, 허름한 골목입니다. 근데 뭔가 건물 외관이 화려하게 바뀌었네요. 살펴 보니 옆집으로 이사했다는 표지가 보입니다. 사실 출발하면서, 아마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걸요. 라고 얘기했는데 그런 걱정 붙들어 매달라는 듯 바로 옆 건물의 번듯한 가게로 이전했네요.
근데 일단 주차부터. 경찰서 안이 가장 안전하다는 판단에 따라 주차했더니 전경이 얼레벌레 다가와 무슨 일이시죠? 합니다. 전가의 보도, 화장실 가려고요, 라고 답하니 고개를 저으며 돌아갑디다. 화장실 가는 척하다 담장 너머를 보니 차 댈 곳이 많아 다시 갑시다, 하고 나오니 그 새 바로 앞 상가 앞 주차 공간에 빈자리가 났네요.
그리고 비빔국수 먹으러 갔어요. 작가 성석제가 좋아한다는 집입니다. 비빔 장이 훌륭하죠. 잔치국수도 맛있고요. 처음에 비빔 4, 잔치 1를 시켰는데 아톰 형이 비빔 하나 추가하잡니다. 아톰 형이 그렇게 뭘 잘 먹는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해서 다섯이 비빔 5, 잔치 1를 먹어 2만 7000원 냈습니다.
강화경찰서 뒤쪽 동네는 강화읍성이 있고 예전에 '전설의 마녀'란 드라마를 찍었던 골목이 있습니다. 예전에 왔을 때 경찰서 옆 그냥 옛집이 하나 있구나 싶었던 가옥에 문화재 표시가 붙어있어요. 세상에나 강화도령 철종의 잠저였던 용흥궁입니다. 잠저는 왕이 평민이었을 때 주거하는 곳을 높여 부르는 말이랍니다. 아톰 형과 피러 회장이 갑론을박하더군요. 쉬운 말로 풀어 쓰자는 주장과 옛 용어를 존중하는 것도 우리의 자부심이란 주장이 맞섭니다. 둘 다 옳다고 생각했어요.
잠저 경내를 돌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산이라 할 수도 없는 위쪽에 번듯한 기와 지붕이 눈에 들어옵니다. 야 잠저가 엄청 크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성공회 강화성당이었지요. 아 이 때는 성당도 이런 식으로 지었구나, 이런 건물이 지금껏 보전돼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겨울이라 미사는 다른 곳에서 드린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는 걸 보면 여전히 기도하는 곳으로 이용된다는 얘기입니다. 봄에 한 번 들어가봐야지 하고 나왔습니다.
방향을 대충 잡고(사실은 조금 헤맨 것) 아내와 함께 마셨던 커피집 ‘빨간코 네모얼굴’을 찾아 들었습니다. 어차피 낙조를 보기 위한 산행이니 여유가 한 가득입니다. 카페 이름이 참 특이하죠. 나무로 만든 조각들이 아주 많은데 모두 특이하고 재미있습니다. 아톰 형만 라떼 먹고 피러 회장 빼고 셋이 아메리카노 마셨는데 블렌딩이 훌륭합니다. 묵직한가 하면 깔끔하고 신 맛이 나는가 하면 단맛이 납니다. 중간에 우리가 막 얘기꽃을 터뜨렸을 때 주인 여자가 잠깐 나와 눈길이 딱 마주쳤는데 자기 세계에 몰두하는 여성이란 느낌이 확 왔습니다. 어머니를 많이 사랑했다는 걸 작품에 심어두었는데 조금은 차가운 인상이라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토요일 낮 12시가 되기 전 이런 호사라니, 대단하지 않은가요.
카페를 나와 전설의 마녀 찍었던 골목으로 들어섭니다. 세탁소도 있고 라이카 사진관도 정겹습니다. 그런데 온갖 동물들의 조리가 가능하다는 건강원이 나옵니다. 그 2층에 교회가 나와 한동안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시동을 걸어 예전 고려산 갈 때 가던 길을 따라 내가 저수지 지나 예전 석모도 배타고 건너던 터미널 지나 1킬로미터쯤 진행하니까 석모대교가 나옵니다. 그 길 중간에 번듯한 카페, 방랑식객 임지호의 레스토랑 등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지난해 여름에 석모대교 개통했을 때 뜬구름이 보문사 가려고 이 대교를 접어들려다 엄청난 체증에 돌아섰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날이 추워서인지 대교는 한적합니다. 택시운전 기사님이 헤찰을 하자 피러 회장이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운전이나 똑바로 해.
그렇게 민머루 해수욕장으로 향했습니다. 이정재와 전지현이 나온 영화 '시월애'를 찍었던 곳인데 바닷가 흰 주택은 사라지고 없더군요. 조금은 쓸쓸한 겨울바다를 잠깐 거닐었습니다. 바닷가 솔밭에 자동차 두 대가 주차돼 있길래 궁금했는데 앞쪽에 텐트 둘을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이더군요. 물이 나간 시점이라 괜찮지만 물 들어오면 바로 파도 옆에서 자는 기분이겠더군요.
보문사 들어가니 주차장에 정말 차들이 많더군요. 모두 뭔가를 기원하고 염원하는 이들인데 그렇게 부처님이 너그러이 다 들어주면 이 세상은 참 평온하고 살만할텐데. 어느 아찌가 먹어보라고 선식 볶은 것을 줬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더군요. 그런데 다른 쪽으로 하산하느라 그걸 사지는 못했습니다. 보문사 경내를 일람합니다. 스님이 불경을 외는데 거의 랩하는 것 같습니다. 랩 중에도 갱스터 쪽 느낌이 듭니다.
눈썹바위 오르는 계단을 올랐습니다. 계단 양쪽에 온갖 축원 쪽지가 나붙어 있고, 중간쯤 바다를 돌아보는데 날이 흐려 많이 아쉽습니다. 날만 좋다면 좋은 전경을 선사할 것 같더군요. 눈썹바위 바로 아래는 그야말로 야단법석입니다. 방석을 깔고 부처님께 절을 드리는 이는 10여명 안팎인데 유리로 만든 박스 안에 선 채로 축원자의 이름과 주소, 직업, 축원 내용을 읊는 스님의 랩은 그야말로 청산유수, 갱스터랩은 아니지만 상당히 빠르고도 정확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축원 내용 중에 하나를 꿈푸리가 가리켜 쳐다보니 "계약 폭주", 쿡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법석 주위 통로가 너무 좁아 통행이 원활치 않은 것도 신기했고요.
그렇게 10여분을 보낸 뒤 밑에 축원 내용을 적는 통나무집에 다시 내려와 길을 여쭈니 "얼마 전 폐쇄됐다는데 요 집 뒤로 한 번 가보시든지" 한다.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도 딱히 없어 조금 들어갔더니 3분도 안돼 보문사 쪽에서 올라오는 루트와 만난다. 2분 정도 짓쳐 올라가니 막걸리 파는 아찌가 절고개에서 회심의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고 앞에 서넛이 앉아 뭐라 떠들고 있습니다. 왼쪽으로는 상봉산(316m), 오른쪽으론 낙가산, 해명산(324m)이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어차피 능선길이라 어려울 것이 없을 듯하여 낙가산 쪽으로 가자고 했더니 반발이 만만찮습니다. 어차피 전망도 안 좋은데 무얼 그러느냐는 것이지요. 못 들은 척하고 이끌었더니 금세 눈썹바위 위쪽입니다. 철책으로 둘러 쳐놓아 철책 바로 아래가 눈썹바위 기도처인가 싶었습니다(나중에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낙가산 정상은 별다른 표지석도 없습니다. 이 산의 능선 모습은 마니산이나 흑석사 뒤 고려산 자락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산꾼(여성 셋 포함)들이 쐬주 한잔씩 선 채로 나눠 마시다 우리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자 뒤로 조금씩 물러서는데 다리가 풀렸는지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우린 또다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4㎞ 밖에 안 되고 부드러운 능선 길이며 낙조 때까지 시간은 충분하니 해명산까지 다녀오자는 저 혼자와 어차피 낙조는 글렀고 낙조를 산에서 보고 히산하면 너무 늦어 위험하니 빨리 상봉산으로 돌아가자는 아톰 형과 뜬구름 등의 반론이 맞섰습니다. 제가 질 수밖에 없죠. 아마도 아톰 형은 막거리 생각이 간절했던 듯합니다.
돌아오니 아니나다를까 막걸리 노점 주인장 얼굴에 이제 확신의 기운이 퍼집니다. 요놈들 틀림 없어, 이번엔 하는.
맨처음 막걸리 먹자고 말을 꺼낸 뜬구름이 만원을 내길래 처음에 네 잔, 나중에 제가 한 잔 더해 모두 다섯 잔을 게눈 감추듯 마셨습니다. 이날 두 번째 영화 소재는 인터스텔라였습니다. 언젠가 아톰 형이 그 얘길 먼저 꺼내길래 "난 그 영화를 대여섯 번은 본 것 같다"고 다시 얘기했더니 형이 처음 듣는 다는 듯 놀라는 게 특히 인상 깊었죠. 마찬가지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정말 만들고 싶었던 두 영화를 만드는 틈새 짬을 내어 만든 게 그 영화"라고 얘기한 것도 모두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하여튼 시간의 의미와 철학에 대해 새삼스럽게 일깨운 좋은 영화 애기를 뒤로 하고 다시 상봉산 하산 길에 나섭니다. 사람 많고 북적대는 보문사 하산보다는 한산한 길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택시도 없는 이 좁은 섬에서 보문사 주차장까지 어떻게 돌아올지는 운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다시 길에 나선 지 5분도 안돼 판단이 옳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길은 호젓하고 생각을 재채웁니다. 물론 미세먼지와 황사의 내습 영향으로 매캐한 느낌은 있지만 나무가 적절히 여과하는 듯 비교적 쾌적합니다.
밀물이 빠져나가 만들어진 도랑에 해 그림자가 길게 비추는데 낙조가 깃들면 붉은 빛으로 아름답게 반짝이지 않을까 상상하며 걸었습니다. 또 도중에 고개를 돌리니 눈썹바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 크거 널찍해 정말 볼만했습니다. 특히 왼쪽에 누군가 새긴 듯 불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참 불공 대단합니다.
하산길도 이렇다할 문제가 없어 4시 30분쯤 보문사로 통하는 도로에 내려섰습니다. 버스는 거의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판입니다.
갑론을박, 설왕설래가 다시 이어집니다. 걸어가자니 도로가 좁아 위험합니다. 꿈푸리는 택시 회사, 심지어 두 번째는 강화 시내 택시회사에까지 전화를 걸어 물어봅니다. 그러다 멀리서 보문사 쪽 방향으로 다가오는 순찰차가 보길래 제가 오른손을 들어 세웠습니다. 일행 중 누군가 그래도 되나 하더군요. 해도 되지요.
경찰관이 무슨 일이세요, 하길래 무턱대고 보문사 주차장까지 한 사람만 태워주세요, 했더니 그러랍니다. 운전자인 아톰 형은 저랑 함께 간다고 버티는 것을 제가 그냥 문을 쾅 닫았습니다. 그렇게 도로 옆 황무지마냥 버려진 숲에 5분쯤 기다렸다가 아톰 택시운전사가 다시 핸들을 잡은 차량에 몸을 싣고 몇해 전부터 강화도 갈 때마다 찾아간 선수주차장 횟집을 찾았습니다.
왠일인지 그 맛있는 가게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뭔가 미심쩍지만 그래도 게중 가장 맞아 보이는 가게는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옆 가게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옆집 어떻게 됐냐고 했더니 "20년 전에 망한 집"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그 집을 이용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어떻게 저런 답이 돌아오지 싶었지만 이쯤에서 관두고 먹어야죠.
밴댕이회와 회무침(역시 회가 제맛이죠. 무침은 너무 양념이 강렬해서 좀), 꽃게탕을 시켰는데 반찬도 먹을만했고 그랬지만 술 좀 시키고 그랬더니 18만원 정도 나와 엄청 놀랐습니다. 남은 회비로 9만원 정도 계산하고 꿈푸리가 9만 8000원을 계산했습니다. 회사 나와 새로 창업한 턱으롭니다.
자리 파하고 따듯한 차 안에서 설핏 잠이 들었는데 주차하는 기척에 깨어보니 강화읍 농협 앞입니다. 피러 회장이 순무김치 2㎏ 들이 통을 하나씩 안깁니다. 역시 우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회장 마마십니다. 그렇게 합정역 내려 집에 돌아왔어요. 씻고 나니 정신이 온전히 돌아옵니다. 예전에 보고 싶었던 영화(시간이 너무 흘러 제목이 기억나지 않음. 그 뒤로 영화 서너 편을 봐서 기억이 혼재)를 케이블에서 하길래 한 편을 온전히 다 보고 잠들었습니다. 나중에 날 맑을 때 다시 낙가산 찾아 제대로 종주해보자는 다짐과 함께.
첫댓글 ㅎㅎ, 재밌게 잘 읽었네.. 막걸리를 먹고 싶었으나, 운전 관계로 입에 만 댔다는 사실을 보탭니다..
석모도 보문사가 기도빨이 세다고하던데 여전한 모양입니다. 함허동천 정수사 대웅전 뜰에서 맞는 낙조 권합니다.
쓰느라 애썼다. 여러 날 묵히느라 어미는 통일이 되지 않고. 가장 큰 건 상봉산이야. 암튼 이런 지적질도 너그러이 넘어갈 거라 사료되므로...순무 김치는 맛있더라. ㅎㅎ
자주 등장한 단어...갑론을박 ㅋㅋㅋ
저는 김치 중에 물김치를 가장 좋아합니다. 와이프는 젤 싫어하고요. 27년 동안 동치미 담그자고 노랠 불렀는데 듣는 척도 안 하더라고요. 회장님이 김치 사주신다길래 얼른 물김치 사달라고 했습니다. 5번에 걸쳐 나누어서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와이프는 입도 안 대더군요. 너 정말 싫어하는구나 했더니 절 생각해서라네요. 요즘 들어 부쩍 여자 말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많이 느껴서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그나 저나 김치 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회장님. 앞으론 강화도서 배달시켜먹어야지.
산행은 별로 하지 않은것 같은데 산행기가 이렇게 길게 늘어난 걸 보면, 영락없는 글쓰는 기자가 맞으시네요. 저는 저번 일요일 순무김치 맛있어서 강화 풍물시장에 사러가는 김에 마눌이랑 성공회성당 용흥궁 70년대 같은 거리풍경 코스를 repeat했답니다.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하다.
그러게 진짜 순무 김치 맛있더라. 나도 그것으로만 밥먹고 있음.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약올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