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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목요일 맑음
다락방 같이 생긴 우리 방, 창밖에는 노란 살구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키가 큰 오래된 나무다. 푹 잔 것 같은데, 일어나니 아침 6시다. 어제 밤늦게 도착하고, 숙소로 바로 달려와서 우리 수중에는 먹을 것이 없다. 아내는 손이 닿는 살구나무에서 열매를 한웅큼 따 왔다. 이것이 우리 아침식사다. 제법 달고 맛있다.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흑백 복사판 시내 지도를 들고 시내로 향했다. 부카레스트 관광이다. 관광도 좋지만 우선 걱정되는 것이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것이다. 숙소의 위치를 주변 건물과 연결시켜 기억해 가며 숙소에서 멀어져 간다. 특이한 특징이 없는 골목길이라 좀 어려울 것 같다. 숙소 주변에는 정교회 건물이 하나 있지만 이것도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를 둘러본다. 전설속의 시조인 부커라는 목동의 이름을 딴 부카레스트는(현지발음은 부크레슈티) 카르파티아 산맥 남쪽으로 펼쳐지는 왈라키아 지방 남동쪽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240만 명, 20세기 초에는 ‘발칸의 작은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거리를 자랑했다. 그러나 현재는 지진, 제2차 세계대전, 독재자 차우세스쿠로 인해 전쟁전의 아름다움을 많이 잃었다. 우리는 골목길을 벗어나 제법 크고 복잡한 도로로 나왔다. 오래되 보이는 Bd Carol 1 도로다. 여기도 루마니아 정교회 건물이 하나 있다. 곳곳에 교회들이 많다. 루마니아는 루마니아ㅇ 정교회가 86% 이고 로마카톨릭이 4%, 개신교가 5%로 구성되어있단다. 특이한 것은 회교사원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이라 출근 하는 사람들과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와 택시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고목들이 가로수로 이어져 고풍스러운 맛을 더해준다. 우리는 대학광장을 목표로 걸었다.
약 20분 정도 걸어가니 대학광장이다. 마케루 거리 쪽으로는 높은 호텔 인터컨티넨탈이 보인다. 대학광장은 이름 그대로 부카레스트 대학과 접해 있다. 이 부군은 극장과, 젊은이들을 위한 저렴한 숙소, 레스토랑 등이 집중되어 있는 번화가다. 젊은이들의 거리답게 활기가 넘친다. 헌책을 파는 노점도 늘어서 있다. 마케루 거리에서 이 주변까지가 문화 , 패션의 중심지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후에 광장을 가로지르는 지하도에 들어섰다. 넓고 시원하게 동소남북으로 뚫려있다. 구시가지 방향으로 나왔다. 조경수를 잘 다듬어 피아노 치는 사람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은 유럽풍의 오래된 건물이 즐비하다. 고층건물도 많다. 좁은 골목길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수리중이다. 큰 건물은 주로 은행, 호텔이다. 눈에 익은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로마에서나 볼 수 있는 늑대 젖을 먹는 쌍둥이 형제의 모습이다. 궁금해서 알아보니 루마니아라는 나라이름이 로마 사람들의 땅이란다. 백인을 크게 3부류로 나누면 슬라브, 라틴, 게르만족 인데, 루마니아인도 이탈리아 인과 같이 라틴족이란다. 그래서 여기에 이런 동상이 있다는데, 좀 생소하다. 골목길에 들어서서 찾은 것이 루마니아 역사 박물관 이다. 고 차우세스쿠 대통령 부인인 엘레나가 자주 댄스 파티를 개최한 건물로, 지금은 박물관이다. 전시물은 고대 다키아인의 장식품이나 무기 등으로 루마니아 여러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이 많다. 중세~ 근세의 민족의상이나 보석, 도기 컬렉션 등도 볼거리다. 벌써 뜨겁다. 늘어선 기둥 뒤에서 잠시 쉰다. 건물이 유럽풍으로 오래돼 보이는데, 입장객고 오래돼 보이고 썰렁하다. 이콘이 아름답다는 스타브로 폴레오스 교회를 찾아갔다. 생각보다 작은 교회인데, 보석처럼 야무지게 생긴 광채가 나는 교회다. 건물에 박혀 있는 동판에는 1724년이라는 설립년도가 세겨져 있다. 루마니아와 비잔틴의 혼합 건축양식인 브룬코베아누 건축 스타일 교회다. 부카레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중의 하나다. 교회에 들어서니 수녀 6명이 찬양을 하는데, 그 울림이 아름답다. 이콘이 아름답다 해서 둘러보았으나 잘 모르겠다. 좀더 내려가니 펜스가 쳐있는 구 왕궁터가 나온다. ‘창꽂이 공’이라는 별명과 함께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이라고 불리는 블라드 체페슈가 15세기에 쌓은 요새터란다. 이 일대는 부카레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대부분 지진과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구 왕궁터는 당시 자취가 남아있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 지하방은 볼거리가 없다. 유적지를 보존하려고 팬스를 쳤다기보다는 입장료를 받으려고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왕궁 터 옆에는 부카레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쿠르테아베케 교회가 있다(1559년). 날씨가 너무 뜨겁고 태양빛이 너무 부시다. 썬 그라스를 꺼내 썼다. 큰 길 브라티아누 거리를 따라 내려가니 통일광장이 나온다. 거대한 분수가 시원하게 뿜어 오르고 있는데, 태양빛에 보석처럼 반짝인다. 동소로 뻗은 직선도로가 통일대로다. 국민의 궁전을 기점으로 약 4km에 걸쳐서 시내에 뻗어있는 멋지고 시원한 길이다. 통일 광장에서 바르체스쿠 거리와 교차하고 있다. 광장은 빙 둘러 낡아 보이는 빌딩들로 원을 그리고 있다. 수로와 분수가 중앙에 있다. 주변의 산책로에는 유난히 무궁화 나무가 분홍색 꽃을 건강하게 피우고 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돌아 통일대로에 들어섰다. 메가로마니아(큰 것, 집중하는 사람)라고 부르는 차우세스쿠는 이 거리를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와 똑 같이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폭이 6m 넓어지고 말았다. 거리에는 석상이 있는 분수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어느 것은 물이 나오고 어느 것은 바닥이 드러나 보인다. 양쪽에는 당시의 정부 요인이 살 예정이었던 호화 맨션이 줄지어 있다. 현재는 일반 시민이 살고 있다는데,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한산한 느낌이다. 아래층의 상가는 비어있어 썰렁하다. 차우세스쿠의 욕심의 결과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왕복 6차선이고 차들은 속도를 높여 도망치듯이 달려간다. 이 지역은 본래 부카레스트에서도 가장 오래된 구시가지 였다. 대로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사적과 건물이 파괴되었단다. 7000여개의 집과 15개 교회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시원한 나무 그늘은 여행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통일대로 끝에 있는 국민의 궁전이 점점 가까워 온다.
드디어 도착했다. 이곳 사람들이 차우시마 라고 부르는 12층짜리 국민 궁전은 높이 보다는 옆으로의 규모가 더 눈에 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빌딩을 지으려 시도했으나, 세계의 관청, 궁전 등의 건물 중에서는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의 국방성 펜타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빌딩이다. 루마니아를 거론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상징이 이 빌딩이 될것 같다. 궁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태양 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나는 궁전은 여행자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힘없는, 과거의 영광만 남은, 왠지 무거워 보이는 모습이다. 그래도 다음 세 개에게는 부끄러운 자랑거리로 역사의 한 부분을 기억나게 하는 곳이다. 오른쪽으로 돌아 국민의 궁전 내부를 구경하기로 했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랑할 멋진 건물이 없는 우리에게는 부러움조차 주는 궁전이다. 그리스에서 올라온다는 캐나다 교민 부부를 만나 단체 투어에 참석했다. 고 차우세스쿠 대통령이 거액을 들여서 지은 거대한 궁전에 들어서니 우리는 너무 작게 느껴진다. 이 궁전 안에는 3107개의 방이 있다. 국민의 궁전이라는 것은 이름뿐이고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아픔이 느껴지는 현장이다. 궁전 내부는 30여명이 한 팀이 되어 들어간다. 가방 검사, 여권검사 등 검색이 치밀하다. 사진, 비디오 촬영을 하려면 요금을 더 내야한다. 개인 입장료는 25R(1만원)이다.
궁전 내부는 천장, 벽, 창틀에 이르기까지 순금장식이 있다. 폭 18m, 길이 150m 에 이르는 회랑이 압권이다. 몇 장의 그림이 벽에 걸려있고 유리 장식장 안에 의상이 걸려 있다. 높이 18m, 총 면적 2200㎡의 대 홀도 볼만 한데 이 홀에 딸린 발코니에 나왔다. 쭉 뻗은 통일대로가 압권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권력자의 욕망이 조금 느껴진다. 다시 들어와 가이드를 따라 나간다. 궁전을 지탱하는 기둥과 바닥 부분은 흰색, 분홍색과 베이지 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루마니아 각지에서 모아 온 것이란다. 지나친 사치 탓에 국민은 기아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고, 영원할 줄 알았던 권력도 비참하게 끝이 나버린 것 같다. 현재는 각 정당의 사무실이 들어와 있으며 국제회의와 콘서트도 이곳에서 열리고 있단다. 우리가 구경한 것은 건물 전체의 5%도 안 된다니 그 규모가 짐작이 간다. 이런 엄청난 건물을 만들어낸 차우세스크의 권력이 부럽다. 당시에 무고하게 희생된 10,000여명과 루마니아 사람들의 분노가 들리는 것 같아, 부럽다 생각한 마음이 부끄러웠다. 글이 참 어렵구나.
차우세스쿠는 1989년 12월 25일,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그의 부인 엘레나 부통령과 함께 총살되었다. 5년 동안 700명의 건축가와 20,000여명의 일꾼이 하루 24시간동안 3교대로 쉬지 않고 지은건물을 나서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헤어질 때, 죽을 때 아쉬워하는 인물이 그립다. 영웅에서 독재자로 변해가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수순이가보다. 차우세스쿠가 헬기로 탈출하여 가려는 최종목적지가 북한이었다는 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이웃집 일 같은 생각이 든다. 너무 뜨거운 태양 열기에 도망치듯 그늘로 들어가 다음 갈 길을 살펴보았다. 시청사를 보며 치슈미지우 공원으로 간다. 탐보비차 강을 건너는 찾았다. 강인지 수로인지......... 공원에 들어서니 호수와 다리, 꽃들이 예쁘다. 숲이 우거지고 조용하다. 시민들이 나와 그늘에서 쉬고 있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우리보다 잘 사는 느낌이 든다. 수치상으로는 우리가 훨씬 잘 사는데, 사는 모습은 여유와 풍요가 있어 보인다. 이 공원은 시내 중심부에서 약간 서쪽에 있다. 호수에서는 보트도 탄다.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도 보인다. 걸어서 부커레스트의 중심부인 혁명광장을 향해 간다.
먼저 만난 것이 크레툴레스크 교회다. 18세기에 건설된 전형적인 루마니아 정교회로 혁명광장 건너편에 있다. 루마니아 정교회의 특징은 첨탑 2~3개가 연달아 서있는 모습이다. 보통 정교회는 지붕 모양이 위에서 보면 십자가 형태다. 이 교회는 도시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 줄 정도로 교회 안이나 밖이 조용하다. 하지만 기도를 올리는 신자들은 많이 찾아온다. 입구 포치 천장에는 선과 악을 재판하는 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18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신성함이 감도는 교회다. (포치: 지붕이 있고 대대 양옆이 트인 현관)
교회 바로 옆 잔디 밭에는 루마니아의 영웅 코르넬리우 코포수 의 흉상이 길게 세워져 있다. 그는 1990년대에 활동한 정치인으로 재야 민주동맹의 연합의장과 농민당 당수를 지내며 루마니아 민주화에 헌신했던 사람이다.
길을 건너 커버이지 않는 혁명광장에 섰다. TV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된 1989년 민주혁명의 총격전의 무대가 되었던 혁명광장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호텔 아테네 팔레스 힐튼, 공화국 궁전, 구 루마니아 공산당 본부, 대학 도서관, 아테네 음악당이 세워져 있다. 대통령 궁의로 사용했던 공화국 궁전(현재 국제 미술관으로 사용) 지하에는 비밀 지하도가 있단다. 시민 데모대는 이 지하도에서 치안부대의 총탄을 맞으면서 필사적으로 싸웠단다. 물론 지하도의 존재는 그때까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단다. 격렬한 총격전으로 주변 건물은 심하게 파괴되었고, 특히 대학도서관의 장서는 대부분이 소실되었단다. 아테네 펠리스 힐튼 호텔은 혁명기에 입었던 상흔을 복구하기위해 재 단장을 끝내고 새롭게 오픈한 부카레스트 최고급 호텔이다. 아테네 음악당 앞에 있는 이 호텔은 20세기 초 타락의 본거지이자, 발칸 3부작에 나오는 올리비아 매닝(영국의 소설가)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5000만 달러의 수리비를 들였단다. 혁명광장의 주인공은 우뚝 서 있는 멋진 건물, 구 공산당 본부다. 1989년 12월 22일에 고 차우세스쿠 대통령은 이 건물 테라스에서 많은 군중을 앞에 두고 마지막 연설을 했다. 야유소리에 계속하지 못하고 옥상으로 올라가 헬기를 타고 도망쳤다. 건물 앞에는 혁명희생자를 위해 세워진 위령비가 서 있다. 결코 유쾌해 보이지 않는 동상도 앉아 있다.
걸어서 약간 올라가니 신전처럼 아름다운 음악당이 호텔 앞에 있다. 이 주변이 아케루 거리와 빅토리아 거리로 둘러 싸여 있다. 이곳에는 항공사 사무실, 고급 호텔 등이 늘어서 있고 레스토랑과 카페, 노점도 즐비하여 언제나 활기에 넘친다. 또 고급 부티크와 화랑, 디스코 홀 등이 흩어져 있는 고급스러운 지역이다. 우리는 빅토리아 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다가 중앙 시장에 들렀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 지붕아래 모여 있는 시장이 아니고 마을 한 지역이 전부 시장이다. 정육점, 과일 등 종류별로 모여 있다. 활기 넘치는 서민 생활의 장에 오니 피곤함과 더위를 잊게 한다. 모든 종류의 식료품과 잡화를 판매하고 있다. 시장을 둘러보며 가격을 보니 루마니아의 물가를 대략 알 수 있었다. 산처럼 샇여있는 수박 한 덩이가 우리 돈으로 800원이다. 서서 먹을 수 있는 스텐드 식당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대단하다. 루마니아는 육류 요리가 많다. 주문하니 다진 고기를 구워서 빵과 함께 준다. 고기를 갈아 둥글게 만들어 구운 마티티를 4개 샀다. 빵과 함께 먹는데, 생각 보다 짜다. 한 개 1.5R이다(1R=약400원) 친절한 아주머니 두분이 자리를 양보해 주어서 길거리 간이 식탁에 앉아서 맛있게 먹었다. 수박이 먹고 싶은데 칼도 없고, 너무 커서 다 먹을 수도 없고........ 그냥 지나쳤다. 노르디 역으로 향했다. 부카레스트에는 4개의 기차역이 있는데, 여행자가 이용하는 국제열차와 국내 주요열차가 발착하는 곳이 노르디(북)역이다. 이 주변이 부카레스트에서 가장 치안이 나쁜 곳으로 소매치기나, 노숙자, 거리의 아이들이 출몰하는 곳이란다. 현지경찰관이 습격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대 낯이라서 인지 잘 모르겠다. 루마니아는 유럽을 떠도는 집시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을 썼다.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위해서 인데, 그 당시에는 집시들에 대한 복지제도도 좋아 많은 집시들이 들어 왔단다. 지금은 제도가 바뀌어서 집시들의 삶이 어렵단다. 루마니아에는 200만~300만 명의 집시들이 살고 있는데, 지금 이들이 사회문제로 나타나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이런 일들이 루마니아의 법질서와 치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단다. 그러나 집시라고해서 모두 가난하고 떠도는 것이아니라 부자 집시도있어 호텔 같은 거대한 주택을 짓고 정착해 상고 있는 집시도 많단다. 특히 집시왕이 있는데, 부와 권력이 대단해서 대통령을 만나며 지내기도 한단다.
노르디 역 주변은 엄청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역내에 들어서니 분주하다. 표 파는 곳과 기차 타는 곳을 살펴보고 나왔다. 내일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 할 지 아니면 버스를 타고 가야할 지 생각 좀 해봐야겠다. 역을 나와 빅토리아 광장 주변으로 걸어간다. 제법 큰 슈퍼를 발견했다. 사과와 아이락(발효우유) 그리고 물을 샀다. 신용카드로 결재해 보니 잘된다.
빅토리아 광장은 넓다. 오래되 보이는 건물들이 가득하다. LG회사의 선전용 간판도 보인다. 개선문을 만날 수 있는 키셀레프 거리를 걸어간다. 보리수나무와 마로니에 가로수가 길게 이어져 산책하기 좋다. 오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파리; 개선문과 이어지는 상젤리제 거리를 연상시킨다. 다른 것은 유명상가나. 멋진 건물이 없다.
걷다가 농민 박물관을 만났다. 18~19세기 루마니아 각지에서 볼 수 있는 생활문화를 풍부한 컬렉션으로 소개하고 있다. 민족의상과 도기, 이콘 등 전시품의 질은 물론 디스플레이 센스도 뛰어나다. 1997년에 유럽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수상한 것도 납득할 수 있다. 지하는 공산당 유물을 모아놓은 전시실이며 지금은 희소성이 있는 차우세스크와 스탈린의 초상화도 있다.
생각보다 키셀레프 거리는 길다. 다리도 아프고 힘들다. 어기로 걸어간다. 반가운 개선문이 보인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여 1919년에 지었다. 당초에는 목조에 회반죽을 입힌 것이었는데, 1930년에 루마니아 조각가들이 다시 만들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파리의 개선문과 비슷하다. 루마니아 국기가 축 늘어져 바람에 흔들리는데, 좀 보기 싫다. 이 개선문이 건설 당시에 부카레스트는 “발칸의 작은 파리”라고 불렸단다. 개선문을 등지고 아내는 벤치에 앉아서 일어설 줄 모른다. 너무 힘 드는지 이제는 누워버린다. 더 이상 걸었다가는 아내를 엎고 가야할 판이다. 여기서 시내 구경을 끝내기로 했다. 루마니아 국영TV 방송국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방송국은 1989년 민주혁명의 중요한 무대가 된 곳이다. 혁명의 중심이었던 구국전선은 우선 TV 방송국을 점거하여 부카레스트 현 상황을 온 국민에게 전했다. 혁명파가 방송국을 점거함으로써 일반 시민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고, 내전 중에도 기가 꺾이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단다. 당연한 일이지만 치안부대는 방송국 탈환을 꾀하기 위해 몇 번씩이나 심한 공격을 퍼부었다고 한다. 방송국 입구옆에는 희생자를 애도하는 위령비가 있다는데.........
헤라스트라우스 공원을 끼고 걸었다. 전철역을 찾아간다. 이 공원은 부카레스트에서 제일 큰 공원이다. 우거진 숲과 넓은 호수, 민가를 모아놓은 농촌 박물관도 있다. 메트로 2호선인 Aviatorilor에서 지하철을 타고 Victoria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Piata역에서 내렸다. 지하철은 깨끗하고 조용하다. 브라쇼브행 버스와 외국으로 나가는 버스를 알아보려고 Ritmului를 찾아간다. 지하철역에서 계단을 올라와 노점상에게 물어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알려준다. 15분 정도를 걸어가서 버스터미널을 발견했다. 버스 터미널 이라기보다는 작은 운수회사라고 표현해야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주차장에는 서너 대의 미니버스가 있다. 사무실에 들어가 브라쇼브행 버스를 알아보니 아침6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있단다. 요금은 35Rei다. 이웃나라 세르비아의 수도 벨그라드에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여기에는 없고, 시내외곽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또 가야한단다. 정보가 없으니 답답하다. 벨그라드로 가야하는데........
몸이 몹시 피곤하다. 숙소로 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걸을 만 했다. 캐밥을 하나 사고 슈퍼에서 쥬스와 토마토도 샀다. 갑자기 아내가 배탈이 났다. 화장실을 찾아도 없다. 식당에 들어가니 건너편 건물로 가보란다. 건너편 건물로 가서 수위아저씨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건물 안의 화장실을 알려준다. 참 고마운 분이다. 슈퍼에서 사먹은 아이락이 원인인 것 같다. 너무 급하게 많이 먹은 것 같다. 숙소는 별 어려움 없이 잘 찾아 왔다. 오후 5시 30분으로 아직 날은 훤하다. 사무실에 가서 숙박비를 지불했다. 내일 새벽에 나서기로 했다. 브라쇼브에서 벨그라드로 가는 기차나 버스가 없단다. 다시 부카레스트로 와서 기차를 타고 가야한고 알려주면서 기차 시간표를 친절하게 복사해 준다. 브라쇼브로 가는 기차 시간표도 복사해주며 설명해 준다. 기차도 등급이 있다. P는 20R이고, A는 32R, R은 40R, IC는 45R이다. 내일 아침 7시 30분 발 기차를 타기로 했다. Ple는 출발시간, Sos는 도착시간이다. 3시간 16분정도 걸리는 것 같다.
집을 떠나 처음 도착하여 여행 온 첫 날이다. 부카레스트 시내를 걸어서 종일 걸어 다니며 극히 일부를 본 것인데, 거의 다 본 것 같다. 날이 뜨겁고 체력이 딸려 좀 버겁다. 저녁으로 캐밥을 아내와 함께 먹었다. 쥬스를 마시니 꿀맛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 슬슬, 하나씩 차분하게 계획대로 풀어가 보자. 이제 구슬을 하나 꿴 것이다. 모기한마리가 웽하고 날아다녀 불을 키고 잡았다. 인도해 주시고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잠을 청했다. 머릿속에 둘러본 부카레스트의 거리와 건물들이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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