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출근을 하려는데 처가 "여보, 사리원 불고기가 먹고 싶어요."한다.
살다가 이런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같아 얼른 "오늘 퇴근해서 가자."라고 답한다.
이럴때 토를 달면 안되지요.
퇴근 후 차를 집에 두고 나오는 저녁 6시 반은 벌써 깜깜하다.
날씨는 늦가을 치고 따뜻한 날씨.
서초동 집에서 서초 사리원까지 길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커다란 프라타너스 낙엽을 밟으며
느긋하게 걸어서 십여분만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보이는 월남 국수집은 젊은 사람들로 대만원.
나는 길 건너편의 "흑돈가"에서 제주 오겹살과 김치찌개도 먹고 싶었으나
좋아하지 않는 처와 갈 수 없으니 돼지고기 좋아하는 누구라도 같이 가야지.
이 집은 나와 오랫동안 같이 근무하였던 산부인과 허선생의 동기가 주인.
경기 56회이니까 내보다 6년 위이고 흉부외과의 양선생과 정형외과의 이선생과도 동기이다.
여기 일층에 하나있는 작은 방에서 주인과 허선생이랑 "오퍼스 원"도 마셔보았고.
한번은 내과 수석 전공의들이 시험준비때 이 집에서 저녁을 사준 적이 있었을 때
마침 그날이 보졸레누보가 나오는 날이라 보내어 준 몇병을 얻어 먹기도 했다.

물김치와 야채 샐러드.
늘 나오는 마늘쫑에 마른 작은 새우 볶음은 오늘은 나오질 않았고
대신 연근 조림도 씹히는 맛이 있어 괜찮다.
반찬은 떨어지기 무섭게 더 가져다 준다.

이 집의 불판은 일단 가스로 달구어 이차 열로 익히는 일본식이다.
그래야 고기가 눅눅해지지 않고 맛도 좋다.
내가 어릴 적인 50년대에는 풍로에 석쇠를 놓고 종이를 깔고
그 위에 불고기를 얹으면 종이도 타지 않고 고기가 익었다.
물론 이는 냄새가 온동네에 다 퍼지므로 주로 쇠고기는 국이나 찌개로 끓여 먹었지만.
옆에 붙어 있는 안내판에는 식재가 모두 국산.

여기의 불고기는 간이 심심해서 마음에 든다. 항상 일정한 맛을 유지하니까.

와인 리스트를 본다. 와인을 좋아하는 주인인지라 와인은 구색을 잘 갖추어져 있고 가격이 합리적이다.
미국에서는 보았으나 우리나라에도 아마 와인리스트 경연이 있으면 시상감이다.
며칠간의 금주로 불편한 속도 나아졌고
또 고기를 먹으면서 그냥 갈 수 없으니 가벼운 청하 한병을 시킨다.
처가 왜 그렇게 불고기를 안 드세요? 하나
사실 어제 저녁에도 압구정 한일관에서 불고기 정식을 먹었으니까.
덧 부쳐 한일관 불고기도 간이 심심해서 내가 좋아한다.
물론 대구 진고개의 "땅집, (골목보다 더 낮은 곳에 위치하는)"의 날계란에 찍어먹는 불고기도 좋지만.
대학다니던 60년대에 한번씩 대구본가에 가면 식구들이 저녁을 이 집에서 먹곤 했는데.
평소 고기가 잘 나오지 않는 하숙집 식단인지라
동생들이 나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었다.

식사는 나는 불고기에 사리 하나를 시키고
처는 된장찌개를 시켜 나누어 먹었다.
찌개 안에 들어있는 작은 고추는 진짜 청양고추니까 조심.

나오면서 보니까 지배인이 안 보던 사람이다.
"요즈음 회장님은 자주 들리세요?"
"예, 한주에 세번씩은 나오세요."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일단 이렇게 나를 알려 놓아야 후일에 좋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양념치킨이 맛이 있는 "교촌 치킨"을 지난다.
교촌은 경주 최부자 동네의 교촌을 말한다. 아마 직계는 아닐거다.
우리 개가 그리 좋아하던 치킨.
나중에 몸이 아파서 자기 걸상에 오르지도 못하였던 애가 이걸 보고는 펄쩍 뛰어 올라왔었지.
나는 우리곁을 떠난 그 이후로 한번도 먹은 적이 없다.
계속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익히는 중이다.
첫댓글 서초사리원은 나도 전에는 여러번 가 보았지만, 최근에는 선호도가 신사동 삼원가든으로 바뀌었지요.... 삼원가든도 일년에 한번 정도.....
나는 그곳이 걸어서 가니까 좋아하는 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