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10. 막고굴 220굴 약사경변
정토·현세 경계에 선 약사불, 기복을 정토로 확장
정토에 현세구복 결합한 ‘약사경’서 탄력적 정토 관념 창출
석굴 정면 사바세계 좌우로 서방 아미타불 동방 약사불 조성
정토에 대한 인식 경계 허물고 확장하며 기복신앙 한계 극복
막고굴 220굴 북벽 약사경변. 화면 중앙 일곱 분의 부처님은 약사찬불을 표현한 것이다.
‘열반경’ 가섭보살품에 이르기를 “무수한 중생이 마땅히 열반에 들 것이로되, 결핍된 것이 있어서 그 마음을 방해하고 어지럽히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고 설하였다. 그렇다면 ‘약사경’이 인간의 고통을 치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중생에 대한 연민이 아닌 중생 해탈을 위한 필요에 기인한 것이다. 경에 의하면 중생은 약사여래의 명호를 외고, 경전을 독송하고, 등을 밝히고, 번을 세우고, 복업을 쌓는 등의 적극적인 발원 행위를 통하여 현세에서 겪는 빈곤, 질병, 정신적 번민, 수명 등의 고통으로부터 구제받는다.
‘약사경’에서 정토에 대한 언급은 어떠한가? 물론 경전은 약사여래가 주재하시는 동방 정유리 정토에 대해 설하고 있다. 그곳은 “한결같이 청정하여 여인(으로서 받는 괴로움)이 있지 않으며, 또 악취(惡趣)와 괴로움의 소리도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마땅히 이 부처님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해야 한다.(‘불설약사여래본원경’)” 그러나 ‘약사경’은 피안으로서의 정토에 치중하지 않고, 경의 전체에서 중시되는 현세구복적인 측면과 결합하여 탄력적인 정토관념을 창출한다. 이러한 특징은 돈황석굴에서 표현된 약사경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회에서 막고굴 220굴에 장엄된 무량수경변도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642년에 개굴된 220굴은 주실에 들어서면 정면(서벽)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는 석가모니 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좌측(남벽)에는 무량수경변도가 장엄되어 아미타불(무량수불)이 주재하시는 서방정토를 표현하고 있다. 이와 마주보는 우측(북벽)에 약사경변이 장엄되어 있는데 벽화의 내용이 이채롭다.
화면의 중앙에는 일곱 분의 부처님이 나란히 서 계시다. 부처님들이 딛고 계신 지면은 구슬처럼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어, 이곳이 유리로 땅이 이루어졌다는 동방 정유리 정토임을 보여준다. 일곱 부처님의 좌우 양측에는 12신장과 보살, 아수라, 금강역사 등의 성중(聖衆)이 나누어 자리하여 부처님과 정토세계를 호위하고 있다.
화면의 하단에서 주목할 부분은 중앙과 좌우에 설치된 등륜이다. 중앙에는 방형의 거대한 등루가 칠보연못 사이에 설치되어 있고, 층층이 설치된 등불이 밝게 빛나고 있다. 그 좌우 양측에도 각각 원형의 등륜이 설치되어 있으며, 보살이 점등을 하여 등륜에 올리는 장면이 보인다. 그리고 이 등륜들 앞에서는 무희와 악단이 자리하여 유리정토의 연등회를 위한 공연을 하고 있다. 화면 상단에는 번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비천과 악기들이 허공에서 정유리 정토의 수승함을 찬양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약사경변에서 일곱 분의 부처님이 모셔진 이유는 무엇인가? ‘불설약사여래본원경’(615년)에서는 어떤 환자가 중병을 벗어나고자 하면, 7일을 주야로 팔분재를 받고, 스님에게 공양하고, 약사유리광여래께 예배드리고, 약사경을 49번 독송하고, 49개의 등을 밝히되, 다시 일곱 구의 저 여래상(七軀彼如來像)을 만들어 49일 동안 등을 밝히고 번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석굴의 조성연대를 따져볼 때, 220굴 북벽의 일곱 여래상은 이 경문에 의거하여 그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일곱 분의 여래는 모두 약사유리광여래인가? 일곱 분의 여래상을 자세히 보면 각각의 부처님이 입고계신 가사와 손으로 취하신 수인(手印), 들고 계신 지물(持物) 등 외형적 특징이 모두 달라, 이것이 하나의 부처님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 인도 구법승 의정(義淨)이 한역한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707년)은 비록 220굴의 완공시기에 비해 약간 늦은 시기에 역출되었지만, 좀 더 적절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 경에서는 기존에 한역된 약사경전과 다르게 동방의 여래와 정토를 세분하여 소개하고 있다. 즉 여기(사바세계)에서 동쪽으로 4항하 모래 수만큼의 불국토를 지나 선명칭길상왕 여래가 주재하시는 광승(光勝)이라는 정토가 있고, 다시 여기에서 동쪽으로 5항하, 6항하, 7항하, 8항하, 9항하 모래 수만큼 떨어진 곳에 각각 보월지엄광음자재왕 여래, 금색보광묘행성취 여래, 무최승길상 여래, 법회래음 여래, 법해승혜유희신통 여래가 각자의 본원으로 이룬 불국토가 자리한다. 그리고 10항하 모래 수만큼 떨어진 곳에 곧 약사유리광 여래의 정유리 정토가 자리한다고 설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면 220굴의 약사경변의 일곱 분 여래는 이른바 동방의 “약사칠불”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경전의 유통과 신앙의 전파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는 좀 더 진전된 논의가 필요하다.)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한 과거칠불이 불신(佛身)의 시간적 영속성을 대변하듯이, 칠불로 확장된 동방약사여래는 불신과 정토의 공간적 편재(遍在)를 부각시키고 여기와 정토의 심적 거리감을 좁혀준다.
약사경의 내세구제의 측면에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약사불이 서방의 아미타불 극락세계로의 인도자로서도 명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만약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여래께서 계신 곳에 태어나고자 하면, 저 세존 약사유리광여래의 명호를 들은 까닭에 목숨이 끊어질 때 여덟 명의 보살이 허공을 타고 와서 그 길을 안내해 주며, 곧 저 세계의 온갖 기이한 색의 연화 가운데에서 자연히 화생”하게 된다(‘불설약사여래본원경’).
약사경전과 경변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면모들을 살펴볼 때, 참배자는 220굴에 들어서서 정토의 의미를 공간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 남북벽의 경변도와 중앙의 주존불은 적확히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와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 그리고 약사불의 동방정토를 구현한다. 서방의 청정한 극락세계는 개념적으로 여기 예토(穢土)의 사바세계에 대한 대척점에 자리한다. 한편 동방의 정유리 정토는 방위적으로 서방의 극락과 대척점에 자리하지만, 신앙적으로는 현세적 사바세계와 내세적 극락에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개념적으로는 정토에 대한 인식의 경계를 허물고 확장한다. 약사경전을 단순한 기복신앙의 산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1635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