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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삶을 변주시키는 가치들 |
헤더 A. 윌로비_ 이화여대 교수 / 국제학 |
필자는 어제 미국에 사는 언니와 전화통화를 했다. 언니는 한국에 무척 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올해도 올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못내 아쉬워했다. 내가 한국에 산지 몇 년이 지났건만 지금까지 이곳을 같이 여행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척 슬프다고 언니는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꼭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언니와 산 오징어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언니로부터 의외의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 내용인즉,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몇 년, 아니 어쩌면 몇 십 년 후에나 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언니의 마음이 왜 이렇게 갑자기 바뀌었을까? 그녀는 그날 저녁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고 한다. ‘세계의 특이한 음식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이던 모양이다. 언니는 TV 내용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가 집중 조명을 받았는데 바로 산 오징어였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산 채로 먹는다는 것은 언니에게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조금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입에 넣어도 입천장이나 목 안쪽에 달라붙을 수 있는 촉수 생물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으며 사실 입안에 넣었을 때 오징어가 입천장 같은데 들러붙지 못하도록 꼭꼭 씹어 먹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수긍하려 들지 않았다. 언니는 결국 이렇게 결론지었다. “한국인들이 입에 불이 날 정도로 매운 김치를 먹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산 오징어 같은 음식을 마음 놓고 먹으려고 혀의 미뢰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거겠지.” 사람의 마음을 끌고 실제로 어떤 이들에게는 아주 맛있는 음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뜻밖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다. 살아있는 오징어를 먹는다는 생각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아마 내가 한국에서 그만큼 오래 생활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껏 그런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게 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만약 산 오징어가 내 앞에 놓여있다면 나는 분명 그 음식을 먹으며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반면에 한 솥 가득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번데기 마차는 내게도 여전히 기피 대상이다.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나는 아직 진정한 한국인이 덜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음식은 왜 중요할까” 모든 형태의 문화 표현과 마찬가지로 음식 문화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나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맡고 있는 내 모든 강의를 “문화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어떤 학생들은 문화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답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문화 혹은 문명은 그 광범위한 민속지(誌)학적 측면에서 볼 때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인간이 습득하게 되는 지식·신념·예술·도덕·법·관습 및 기타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총체”라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대부분 이 정의 또는 이와 상당히 유사한 정의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은 1871년,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테일러(Edward B. Taylor)경이 맨 처음 규정한 것이다. 이 개념 정의에는 몇 가지 핵심 요소가 들어있다. 우선, 문화는 문명과 결합되어 있다. 그 말은 즉, 1871년에는 몇몇 특정 사회만이 “문명화” 되었고 따라서 문화를 소유한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둘째, 문화는 사람들이 그에 따라 활동하고 사고하고 믿고 따르고 행동하는 등 아주 다양한 것들을 아우르고 있는 복합적인 총체다. 이런 점에서 문화는 무형 및 유형의 자산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사고·신념·상상뿐만 아니라 물리적 생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는 습득 또는 학습된다. 우리는 문화를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문화 환경 속에서 태어난다는 뜻이다. 그러한 문화를, 혹은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여러 문화를 매일같이 보고 들으며 습득하게 된다. 물론 주위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가 1973년 <문화의 해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규정한 개념을 더 선호한다. 그 논문에서 기어츠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기호 작용이다. 막스 베버의 주장처럼 우리 인간은 자기 스스로가 자아낸 의미들의 망에 매달려 사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문화를 그러한 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문화에 대한 분석은 어떤 법칙을 찾는 실험적 과학이 아니라 그 의미를 좇는 해석적 과학이어야 한다.…(중략)”(p.4~5)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개념 정의가 가치 있는 것임을 뒷받침해주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그 모호함이 오히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어츠는 우리에게 정확히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특정 개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전의 개념 정의처럼 도덕이나 예술 또는 관습 같은 것들을 열거하고 있지 않다. 그 보다는 광대한 가능성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문화는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문화란 기호 혹은 상징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창조해내고 후대에 전수하는 문화들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공적 산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 이면 혹은 그 속에 담긴 의미이다. 기어츠는 계속 말한다. “인간의 행동이 일단 상징적 행동-여기서 행동은 언어에서 발음, 회화에서 안료, 글의 행, 음악의 음조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으로 여겨지고 나면, 문화가 패턴화 된 행동이냐, 생각의 틀이냐 아니면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냐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행동과 관련해서 던져야 할 질문은 그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p.9~10)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음식은 왜 중요한가?” 그리고 한국인은 자신들의 음식이 맛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왜 그리도 중시하는가? 무엇을 먹느냐보다 더 소중한 것들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비교적 쉽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편적이라는 이유에서 음식은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우리는 종종 “음악은 보편적 언어”라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그 모든 다양성을 보더라도 음악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민족들이 일정 형식의 음악을 만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음색·미적 감각·해석·의미는 천차만별이다. 실제로 인류 전체에게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 중 몇 안 되는 예외가 인간은 모두 생존을 위해 먹고 수면을 취해야 하며 번식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먹는 것, 먹지 않는 것, 언제 먹고, 어떻게 먹으며 또 누구와 함께 먹는지 등등 이 모든 것들은 문화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먹어야 한다는 그 사실 자체는 동일하다. 두 번째로 한국의 음식 문화에 관한 물음은 답하기가 더 어려운 문제다. 시드니 민츠(Sidney Mintz)는 《Food in the USA》 내용 중 <Eating America> 편에서 미국에는 고유 음식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말로 독특한 음식이나 요리 비법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먹는 음식은 모두 미국 이외의 다른 곳에서 들여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격분했다. 그들은 어떻게 이 지구상의 최강대국에 고유한 음식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민츠는 미국에도 미국만의 독특한 음식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수 없이 많이 편지를 받았다. 크램 차우더, 케이준 요리, 핫도그 등등.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패스트푸드는 미국 고유의 음식이라는 것이다. 민츠는 그러나 요리라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방법론 또는 관념론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한국에 고유한 음식이 없다고 비난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단 며칠간이라도 지낸 외국인이라면 김치는 물론이고 그 효능이 거의 기적에 가까운 보양식들에 대해 듣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고유한 음식 문화를 소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기서 인식할 수 있다. 진정한 문화, 의미 있는 민족, 종국에는 한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규정가능하고 확실한 음식 문화 또는 요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 이 지구상에서 한국인들만 오징어 혹은 심지어 산 오징어를 먹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먹는 방식―고추장에 찍어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친구들 무리지어 함께 먹는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음식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먹는 방법(포크가 아닌 젓가락을 사용하여 거의 매끼마다 국과 밥을 먹는 것), 그것이 논의되는 방식(매운 음식 및 여타 특정 음식을 즐겨먹는 한국인들의 취향, 그리고 그런 음식들을 먹으며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 그것을 함께 먹는 사람들(음식을 혼자서 먹기 싫어하는 한국인들의 습성)인 것이다. 이런 것들이 의미의 상징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한국을 한 국가, 한 문화로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