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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산 김승석
즐거운 설 명절을 앞두고 폭설한파로 잔뜩 웅크린 채 덜덜 떨면서 따사로운 봄 햇살이 그리웠는데 어느새 푸른 뱀의 해, 입춘(양력 2월3일)을 맞이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집 대문이나 기둥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복을 바라는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란 글귀를 써서 입춘첩立春帖을 붙이는 우리의 민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입춘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 번째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凶豊을 가려보는 점치기도 합니다.
불자들은 입춘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을 행합니다. 한 해 동안의 액厄을 면하기 위해 선행을 하되 드러내지 않고 몰래 꼭 합니다.
적선 공덕은 오랜 미풍양속입니다. 우리 민족은 남몰래 냇물에 징검다리를 놓거나 험한 길을 다져 놓거나, 걸인들을 위해 음식을 나눠주거나 행려병자에게 약을 주는 방법으로 공덕 쌓기를 서로 질세라 행하였습니다.
최근에도 애쓰게 모은 거금을 대학이나 병원에 아낌없이 기증하는 거룩한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공덕을 많이 닦고 쌓을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공덕은 보시·지계·수행을 통해서 탑을 쌓듯이 차곡차곡 짓습니다. 『법화경』의 「법사공덕품」에는 ‘선善남자·선善여인이 이 경을 받아가지고 읽거나 외우며 해설하고 옮겨 쓰면 1,200가지 뜻의 공덕을 얻으리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법 보시(Dhammadāna)야 말로 어떤 보시보다 공덕이 수승합니다. 예를 들면 고대 인도의 아소카 대왕이 정복 전쟁을 포기하고 불법을 널리 펴는 정책을 펼친 것이 그 본보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년은 본지가 ‘제주법보’라는 제호로 진리의 법등을 밝힌 지 36년이 되는 해입니다. 전법도생傳法度生을 표방하며 1989년 8월 창간된 ‘제주법보’는 재가불자 허성수씨를 발행인으로 각 종단 대표 스님과 신도회·신행단체·학계·언론계 등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33인의 운영위원회를 결성, 같은 해 9월 12일 문화공보부에 정식 등록하여 지역불교신문의 깃발을 세웠습니다.
1990년 7월 1일자(지령 12호)부터 ‘제주불교’(발행인 정관 스님)와 통합하여 ‘한라불교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고, 격주간 8면 체제로 전환하면서 도내 유일의 불교신문으로서 위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경영의 튼실함과 조직의 견고함을 다지고자 도내 각 종단 대표를 비롯한 뜻있는 재가불자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주식회사(법인)로 전환하기로 중지를 모음에 따라 1995. 2. 10. 설립 등기를 완료하고 이사회에서 김승석 변호사(현, 편집인)를 만장일치로 대표이사에 선임했습니다.
그러하니까 올해 2월 10일은 소생이 본지의 편집인으로 만 30년을 상근한 셈이 됩니다.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발행인 스님, 대표이사, 이사 등이 바뀌고 바뀌어 법인 설립 당시의 임원진들은 다 떠났지만 저 혼자 남아서 수문장 노릇을 했습니다.
30년의 외길을 돌이켜보면 허물투성이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세풍에 휩쓸려 정론正論을 펴지 못하고 곡필曲筆했던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 복합적 사정으로 인해 법등의 기름이 말라 휴간을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풍전등화와 같은 역경 속에 단심丹心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법귀의法歸依 · 법등명法燈明”의 부처님 유훈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몸과 마음 모든 면에서 노쇠현상이 일어납니다. 소생도 희수喜壽를 앞두고 눈이 침침해진다는 핑계로 책을 놓거나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나오는 고사성어인 “병촉지명炳燭之明”의 우언寓言이 문득 떠올라서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중국의 춘추시대 진晉 나라 제후가 신하 사광에게 “내 나이가 일흔이니 배우려고 하여도 너무 늦은 듯하구나.”라고 탄식조로 묻습니다. “늙어서 배우기를 좋아하면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이 우언에는 노년은 하루 중 밤과 같고, 햇빛이 없는 때이지만 촛불을 밝히고 어두움[無明]을 헤쳐가야 한다는 해학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초의 불꽃처럼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일은 몸이 노쇠했다고 해서 그만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은 '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에게 불을 옮겨 준다고 그 불빛이 사그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촛불의 생명력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시대는 단순한 경제적, 사회적 변혁기가 아니라 철학적, 사상적, 문화적 변혁기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공을 초월해서 모든 세대와 서양문화권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시대가 격변기일수록 지역불교신문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법도생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주를 명상의 이어도로 조성하는 일, 또는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여 범부중생들을 교화하는 일이 그러합니다.
마치 고목에 꽃이 피듯이 노구老軀에 촛불을 밝히고자 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