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에반게리온 가설 5호기가 실험 도중 폭발하고, 파일럿 마리는 일본으로 잠입한다. 이와 별개로 에바 2호기와 함께 일본에 도착한 아스카는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신지를 놓고 아스카가 레이와 은밀한 신경전을 펼치는 가운데, 미국에서 도착한 에바 3호기는 이들의 운명 위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에반게리온: 파(破)>는 <에반게리온>의 신극장판 중 두 번째 작품이다. 극장으로 발길을 옮기기 전 두 가지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첫째, 신극장판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둘째, 신극장판이 클래식의 가치를 지녔는가.’ 극장을 나서면서 내린 결론은 ‘그렇다’이다. <에반게리온: 서(序)>가 시리즈의 외형에 손질을 가하기 시작했다면 <에반게리온: 파(破)>는 인물과 이야기에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다. <에반게리온: 서(序)>는 짧게 스쳐지나가는 첫 숏을 통해 신극장판의 출발지점을 밝힌 바 있다. 붉은 바다와 찰랑이는 물결. 그것은 바로 기존 시리즈의 결말부의 배경이었다. 생물이 죽은 붉은 해변에서 꾼 꿈은 너무 우울한 것이었다고 제작진은 생각한 것 같다. 기존 시리즈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나 신극장판은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이것은 변화를 넘어 아예 새로운 꿈이다.
두 번째 꿈에서, 상처받아 단절됐던 인물들은 타인에게 다가서기를 시도하고, 인간관계의 긍정을 뜻하는 일들이 조금씩 벌어진다. <에반게리온>에서 각 개체의 세계관은 그대로 세계와 종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짓는 것인데, 개체의 낙관의 징후가 밀도 높은 비관과 허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선 <에반게리온: 파(破)>는 신극장판이 최소한 악몽으로 끝나진 않을 것임을 짐작하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에반게리온: 파(破)>가 마냥 밝은 톤의 작품일 거라고 기대하지는 말기를. 에바는 여전히 사도와 피를 토하면서 싸우고 있으며, 진보한 기술력은 죽음 직전의 지구를 생생한 스펙터클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신과 인간, 생명과 파괴’라는 장엄한 주제를 향해 내달리는 <에반게리온: 파(破)>의 숨 막히는 결말은 애니메이션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에 도전한다. 이것은 피의 천사와 대결하는 소년소녀의 성장기이고,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간직한 채 미래를 근심하는 자들의 애틋한 바람이며, 진실보다 위대한 인간 의지의 기록이다.
(글)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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