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품꾼 비유의 교훈
마태복음 20:1~16
요절:“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태복음 20:16)
찬송가 195장(성령이 우리 찬송 부를 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것인가라는 고상한 질문을 가지고 왔었으나 그의 많은 재산에 대한 애착 때문에 결국 신앙을 포기하고 돌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부자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이렇게 부자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들로서 천국에 다들 들어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뜻밖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가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매우 간결했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태복음 19:26)
사람의 구원은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의로만 구원받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 중에 베드로가 묻기를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이 어부들이었고 세리였는데, 하던 일들 다 내려놓고 가정도 내려놓고 삼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그들에게 매우 은혜로운 약속을 베푸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그러면서 이르기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원리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얻지만, 구원받은 자들이 받는 상급은 그 행한 수고에 따라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도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장차 받게 될 상급의 분량들이 일반적인 계산과 달리 전혀 뜻밖의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듣자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깨닫게 해주려고 베푸신 가르침이 바로 우리가 함께 읽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 속에 담긴 영적 교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받아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시간들은 각각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 속에 이른 아침 곧 오전 6시부터 포도원에 나와 일하도록 약속된 자들은 모태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포도원의 사람 곧 교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처음부터 포도원에 들어와 일하도록 약속이 미리 되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을 특권과 영광으로 알고 감격하지 못하고 하나의 노동 계약 정도로 알고서 감격 없이 일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 없이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그 봉사의 대가로 자기가 구원을 받고 상급을 당연히 받는다는 생각에 잡힐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에 원망하게 되며 무엇인가 보상을 바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인 장터에서 일감을 줄 사람, 자기를 써 줄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던 중에 뒤늦게 포도원 주인으로부터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부름을 받은 자들은 뒤늦게나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하여 기뻐하며 감격하며 일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루 해가 짧은 것을 기억하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해 지기 전까지 열심을 다합니다. 자기는 일할 기회도 없이 하루 종일 인력시장에서 시간만 허비하면서 지낼 뻔했는데, 일감을 주고 일한 만큼 보수도 준다는 포도원 주인의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서 해가 지는 것이 아쉬워 끝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 사람들은 인생의 고비의 순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의 은혜를 알고 구원의 감격이 있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죄를 사함받은 감격, 구원의 은혜를 입은 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구원해주시고 불러서 일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감격해서 주님을 위하여 뜨겁게 일하게 됩니다. 주님의 포도원에서 낮의 더위도 무릅쓰게 되고 일이 고되어도 불평이 없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온 힘을 다 쏟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늦게 부름받았으니 그만큼 시간이 부족하니만큼 해 떨어질 때까지 세월을 아껴 열심을 다합니다. 할렐루야.
그러한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뒤늦게 믿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이전에 거칠게 핍박까지 한 죄까지 있습니다. 주님이 만나주셨지만 바로 본격적으로 쓰임받지 못하였고 고향 다소에 가서 한 십년 정도 푹푹 썩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나바의 발탁으로 이방인 비율이 높은 안디옥 교회에 와서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게 되었고, 이후에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이방 지역 선교사로 파송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뒤늦게 10년이나 뒤늦게 사도의 일감을 받아 일하게 되자, 자기의 큰 죄를 씻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격과 뒤늦게 사도의 사역에 나선 것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 인생의 세월을 아껴서 최선을 다하여 헌신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게 되었고 많은 결실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음조차 주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감격하면서 계속하여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순교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로마 감옥에서 쓴 마지막 유언 편지인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확신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6~8)
사도 바울의 이 마지막 편지 끝자락에서 사도가 그 동안 주어진 기회를 받아서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헌신하고서 이제 곧 맞이할 주님 앞에서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기대하면서 기쁨으로 순교를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께서 일러준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말씀의 교훈처럼 인생의 일몰 시각이 얼마 남았는지 모르지만 자기의 남은 인생의 시간을 집중하여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기쁨으로 헌신하도록 합시다. 지금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는가보다 이제 남아 있는 시간을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일감 주심을 감사하면서 세월을 아껴 일합시다. 곧 해가 떨어지려 하고 있고 남은 황혼의 빛이 기울어져갈 때까지라도 그 빛을 의지하여 더 수고하도록 각오하고 애씁시다. 그리할 때에 비록 우리가 나중 되었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먼저 되게 하시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