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상으로 얼룩진 지난 4년을 회상하는 송종국. 그는 찬란한 부활을 소망하고 있다.(사진 김재현) |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송종국은 화려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에서 송종국은 오른쪽 측면 공간을 누비며 상대의 주력 선수를 묶는 데 크게 공헌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루이스 피구를 완벽하게 봉쇄하는 압박으로 주목을 받았고, 터키와의 3∙4위전에선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골을 뽑아냈다. 또한 당시 한국이 월드컵에서 소화한 7경기에 모두 선발출전,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체력을 강조했던 히딩크 사단에서 ‘체력왕’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야말로 흠 잡을 데 없는 활약이었다. 유럽의 명문 구단에선 월드컵을 치른 한국선수 가운데 송종국을 영입 1순위에 올려놓았다. 4년의 시간,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왼발이여’ 지긋지긋한 부상의 악령
최근의 활약상을 놓고 ‘예전의 송종국은 이제 없다’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적지 않은 팬들이 9월 2일 열린 이란전의 플레이에 실망감을 나타냈지만, 당시 송종국은 식중독으로 도저히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에이전트 전경진 프라임스포츠 실장은 “(송종국이) 이란전을 앞두고 2~3일 동안 입원해 있었고 밥은커녕 죽도 못 먹었다.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인데 공을 찬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귀띔했다.
송종국에겐 한일월드컵 이후 부상의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 수많은 기대를 모으며 네덜란드 리그의 명문구단 페예노르트에 진출했지만, 2002년 12월 7일 헤렌벤과의 경기에서 왼발목 아킬레스건을 다치며 불운이 시작됐다. 부상 전까지만 해도 송종국은 페예노르트의 오른쪽 수비수로 네덜란드 리그를 누볐고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6경기에도 모두 선발 출전했다. 당시 유벤투스 소속이던 ‘싸움소’ 에드가 다비즈와 치열한 어깨 싸움을 벌이던 송종국을 추억하는 팬들이 적지않다.
송종국은 이듬해 3월 2일 NAC 브레다전을 통해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또 왼발목 인대를 다치는 악재에 고개를 떨궈야 했다. 그는 9월 21일 수원 기흥공장 내 클럽하우스에서 가진 SPORTS2.0과의 인터뷰를 통해 “페예노르트로 이적해 초반에는 정말 열심히 했고, 모든 게 잘 맞아 들어갔다. 그러나 12월 아킬레스건을 다치며 뒤틀리더니 3개월 뒤 복귀전에서 다친 곳을 또 다치고 말았다. 사실 네덜란드 리그 진출 이전까지 선수 생활 도중 부상으로 5일 이상을 쉬어본 적이 없었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송종국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2005년 1월 페예노르트를 떠나 K리그 수원행을 전격 결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5일 대구와의 컵대회 도중 상대의 백태클로 또 다시 왼발목 인대를 다쳤다. 3개월이 넘는 지루한 재활치료를 이겨낸 뒤 8월 24일 후기리그 개막전에 다시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10월 19일 인천전에서 또 왼발목을 접지르고 말았다. 좌측 족관절 내측인대와 골극이 손상돼 수술을 피할 수 없었다.
11월 수술차 독일 레버쿠젠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아드보카트호의 해외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됐다. 아드보카트감독이 전지훈련의 중요성을 잔뜩 강조한 터라 송종국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하지만 부상의 악령은 좀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당초 한달이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독일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세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올시즌 K리그 개막을 앞두고 마지막 희망으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고, 거기서 독일에서 받은 수술이 잘못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해야 했다.
약물과 한방 치료를 병행하며 힘겨운 재활을 거쳤고 마침내 지난 3월 복귀전을 치렀다. 그러나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특히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 직전까지 아드보카트감독은 “아직 1%를 결정하지 않았다”며 독일행이 확실치 않았던 송종국의 애간장을 태웠다. 운명의 날이었던 지난 5월 11일, 아드보카트감독은 독일월드컵에 출전하는 23명의 태극전사 명단을 발표하면서 드라마틱하게 송종국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는 “팬들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나도 월드컵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왼발목 부상에 시달린 송종국. 상처는 아물었지만 흉터는 그대로다.(사진 김재현) |
선수들은 말한다. 언제나 100%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상 매경기 최고의 경기력을 유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물며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4년 동안 송종국은 그라운드 위의 상대팀 선수가 아닌 부상과의 싸움에 온몸을 내던졌다.
Scene1 - 2006년 6월 12일 독일월드컵 한국 vs. 토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월드컵 G조 조별리그 1차전. 1-1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27분 아크 오른쪽에서 박지성과 교차했던 안정환이 오른발 터닝슛을 시도했고, 공은 상대 수비수의 몸을 스쳐 토고의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16강 진출의 분수령으로 평가됐던 토고에 선제골을 내주며 고전했지만 안정환의 결승골에 힘입어 한국은 짜릿한 2-1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안정환이 토고전 역전 드라마의 주연이었다면 송종국은 숨은 조연이었다. 그는 후반 27분 미드필드 오른쪽 중앙에서 페널티 지역 앞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며 안정환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다.
득점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경기 내용이 더 인상적이었다. 송종국은 4-3-3 포메이션을 고집하던 아드보카트감독이 이날 변화를 준 3-4-3 포메이션에서 오른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하며 토고의 핵 엠마뉴엘 아데바요르의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 송종국의 끈끈한 수비망에 걸린 아데바요르는 공격루트를 쉽게 찾지 못했고 확실한 슈팅 기회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송종국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토고전에 부진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후반 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에 이후 경기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02년만큼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당시 송종국의 컨디션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더구나 공격과 수비 역할이 확연하게 엇갈리는 측면 수비수의 활약 여부는 언제나 코칭스태프의 작전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법이다.
송종국은 이런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6월 4일 가나와의 평가전을 통해 90% 정도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첫 경기 토고전에선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후반 수비에 집중했던 것은 아드보카트감독님의 지시였다. 반대편의 (이)영표 형을 공격적으로 배치하면서 내게는 수비를 강조했기 때문에 오버래핑을 자제했다. 팬들은 송종국이 아직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됐다고 지적을 했다. 거기서 내가 인터뷰를 통해 사실은 감독님의 지시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선 그럴 분위기도 아니다.”
Scene2 - 2006년 9월 16일 K리그 수원 vs. 대구
9월 16일 수원과 대구의 K리그 후기리그 5차전이 벌어진 대구월드컵경기장. 수원은 올리베라와 이정수의 연속골로 이병근이 1골을 만회한 대구를 2-1로 꺾었다. 천금같은 승리였다. 수원은 이날 승리로 1년여 전인 지난해 8월 31일 이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선두에 올라섰다.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송종국의 활약이 빛났고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전반 11분 왼쪽 미드필드 터치라인 부근에서 송종국이 올린 프리킥은 올리베라의 헤딩 선제골로 이어졌고, 36분 프리킥 기회에서도 그의 발끝에서 시작된 공이 곽희주, 이정수의 머리를 차례로 거친 뒤 대구 골네트를 흔들었다.
득점 과정보다도 경기 내용이 고무적이었다. 대표팀과 달리 소속팀 수원에서는 김남일과 짝을 이뤄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는 송종국은 이날 위협적인 중앙 돌파로 대구 수비진을 당황케 했다. 이어진 전개 플레이에서도 송종국은 몇 차례 득점과 다름없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오른쪽 측면에 포진하는 대표팀에서 최근 인상적인 오버래핑을 감행하는 빈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자신감 넘치는 중앙에서의 단독 드리블에 더욱 이목이 집중됐다. 수비력도 예전의 수준에 가까워졌다. 수원 수비라인의 바로 윗선에 포진하는 김남일이 수비 안정에 주력하는 측면이 있지만, 송종국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은 수원의 뒷문을 이중, 삼중으로 걸어 잠그는 전술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송종국은 “사실 독일월드컵에서 몸상태가 괜찮았다. 프랑스, 스위스전에 출전하지 못해 아쉽지만 독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많은 경기를 뛰었다면 그때 정상 컨디션까지 끌어 올렸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K리그에 복귀한 뒤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는 느낌이다. 최근에는 전∙후반 90분을 풀타임으로 뛰어도 체력적으로 힘든 것을 못 느낀다. 그러나 K리그에선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미드필더나 수비수로 활약하기 때문에 골을 넣지 않는 이상 주목받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종국은 2005년 K리그 복귀 후에도 부상의 악령에 고개를 떨궈야 했다.(사진 제공=수원 삼성 블루윙즈) |
엉킨 실타래를 풀면서
송종국은 찬란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당시와 비교해 현재 약 90% 정도까지 컨디션을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차범근 수원 감독도 9월 24일 울산과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뒤 “송종국 선수는 부상으로 손상된 뼈(골극)가 아직까지 다 자라나지 않았다. 현재도 완벽한 상태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독일월드컵 당시와 비교하면 경기력이 많이 올라온 상태”라고 그의 몸상태와 경기력을 평가했다.
사실 K리그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팬이라면 송종국의 최근 변화를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이다. 소속팀에서 중앙 미드필더의 중책을 큰 무리없이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과 다름없다. 베스트11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포지션이 없겠지만, 그래도 현대축구의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꼽으라면 이견없이 중앙 미드필더가 거론된다. 수준급의 공격력과 수비력을 겸비해야함은 물론 폭넓은 활동반경이 요구되며, 상대적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만큼 육체적, 정신적 강인함 또한 필요조건이다. 이에 비해 측면 수비수는 적어도 한쪽 면을 등지고 활약하는 빈도가 높기 때문에 전후좌우를 동시에 신경써야 하는 중앙에 비해 비교적 활동하기가 수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송종국 역시 이와 같은 견해에 동의했다. 그는 “중앙 미드필더로 100의 역할을 한다면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는 그 이상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혹 중앙과 측면 병행에 따른 포지션 혼동이 일각에서 제기된 부진설의 배경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뛰었고 이미 그러한 스트레스에선 벗어난 지 오래다. 포지션별 역할을 숙지하고 이행하는 데 어려운 점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수원과 울산의 경기가 벌어진 9월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선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송종국이 9월 16일 대구전에서 부상을 당했고, 당초 가벼운 타박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른쪽 아킬레스건과 종아리를 연결하는 근육 파열로 확인됐다는 것. 2~3주간 안정을 취하라는 주치의의 지시가 떨어졌고, 송종국은 훈련을 잠시 접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심각하지는 않아도 2002년 당시의 컨디션 회복을 자신했던 시점에서 다시 찾아온 부상의 그림자가 선수에게 유쾌할 리 없다. 9월 27일 수원 기흥공장 내 클럽하우스를 찾아 송종국을 다시 만났다. 잔뜩 풀이 죽어있을 줄 알았지만 뜻밖이었다. 그는 “다 나았다. 신문 보도는 전부 잘못 나간 거다.(웃음) 내일(28일)부터 훈련에 다시 합류한다”며 능청거렸다. 얽히고설킨 운명의 실타래를 송종국은 지금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송종국 인터뷰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1호가 될 수 있었다' 기사에 계속)
SPORTS2.0 제 19,20호(발행일 10월 2일) 기사
김덕중 기자
ⓒmedia2.0 Inc.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시 법적 제재를 받습니다.
첫댓글 화이팅
2002년때의 포스만 찾아주면 종국이는 이미 우리나라 최고의 윙백!!
꼭 부활하세요~ 2002년 월드컵 모습만 돌아왔으면 바램...
2002부터 둘다 PSV-폐예 활약......좌영표-우종국이면 말 다했는데..지금도 좌영표-우종국이 제일 괜찮아 보임!!
난 송종국 당신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