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양한 오픈톱 모델이 있다. 뚜껑 열리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자 다른 매력이 있다. 여러 장르의 오픈톱을 경험하면서 나에게 맞는 오픈톱 모델은 확실해졌다. 얌전해야 하고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 PROLOGUE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것이다. 스포츠카의 뚜껑을 열고 뻥 뚫린 도로를 달리는 것을. 옆에 앉아 있는 미녀가 스카프를 풀어 바람에 날리는 장면은 옵션이다. 오픈톱 모델은 보통의 운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장르다. 무조건 데일리카가 한 대가 준비되어 있고 오픈톱은 여유분으로 둬야 할 것 같다. 맞다. 통장 잔고 범위 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모델들도 있지만 오픈톱 하나만 가지고 있자니 실용성이 걱정된다. 우선 오픈톱 모델은 무조건 문짝이 두 개밖에 없다.
이야기인즉슨 2열 공간은 부족하고 트렁크 공간은 루프를 수납하기까지 해야 하는 의무로 당신에게 많은 공간을 선사할 수 없다. 또한 찌그덕 거리는 잡소리를 이해해줄 너그러움과 소프트톱은 주기적인 부지런함이 오너에게 필요하다. 그렇다면 오픈에어링의 로망은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가? 여태껏 쌓인 개인 감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장르별 오픈톱 모델, 그리고 오픈에어링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당장 필요하지도, 앞으로 사지도 않을 우리끼리···.
# SUPER CAR
이 바닥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오픈톱 모델을 탔다. 슈퍼카는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는데 루프까지 걷어내면 심장이 터진다. 페라리 488 스파이더, 포르토피노, 람보르기니 우라칸 스파이더, 맥라렌 570S 스파이더 등을 탔다. 타보기 전에 슈퍼카 오픈톱의 매력은 별로 없을 줄 알았다. 달리라고 만든 차의 강성에 손해를 보는 것이 탐탁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드십 구조로 인해 개방감이 크지 않다. 슈퍼카 오픈톱을 타보고 이러한 생각은 박살 났다.
페라리 뚜껑을 열고 시속 70km로 느긋하게 달려도 5억 가까이 주고 산 스쿠데리아 스피릿이 아깝다. 에어로다이내믹의 정수를 보여주기에 실내로 들이닥치는 바람의 양도 적다. 도산대로나 가로수길에서 시선을 즐기기에도 좋다. 슈퍼카 오픈톱의 최대 장점은 리어 윈도를 내릴 수 있다는 것. 루프를 열지 않고 뒷창문만 내려도 배기사운드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룸미러로 엔진룸을 감상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 다음 생에 슈퍼카를 산다면 미적지수와 퍼포먼스가 쿠페 보다 낮은 스파이더 모델을 택할 것이다. 인간은 감성의 동물이니까.
# PURE SPORT CAR
장르가 로터스다. 퓨어 스포츠카라 칭송 받는 로터스 오픈톱은 어떨까? 엑시지와 엘리스를 타본 경험에 비춰보면 일단 로터스는 루프를 열고 닫기 힘들다. 정확히 말하면 귀찮다. 직접 캔버스 루프를 걷어내고 김밥처럼 말아 트렁크에 넣어야 한다. 한번은 엘리스로 오픈에어링을 즐기며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는데 소나기가 내렸다. 잠시 정차할 곳을 찾지 못해 비를 맞으면서 달렸다. 이런 게 낭만이라면 로터스는 하드코어 로망을 나에게 전했다.
뿐만 아니라 차가 비좁고 수동변속기를 계속 만져야 하고 스티어링 휠은 그 어떤 도움도 받질 못해 슈퍼카로 달리는 것 보다 더 정신 없다. 물론 초고속 주파를 하는 용도가 아니기에 피톤치드를 마시며 산길을 달리는 것은 신난다. 헬멧 쓰고 레이싱 트랙을 도는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다. 또한 터브 타입 섀시로 인해 강성에서도 거의 손해를 보지 않아 프런트, 리어 액슬 박자도 잘 맞아 떨어진다. 눈 딱 한번만 감고 김밥 말고 달리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위 100위 안에 들 수 있다.
# 80% SPORT CAR
로터스가 순도 100% 스포츠카라면 20% GT향 몇 술을 넣은 로드스터들도 있다. 이를테면 포르쉐 박스터나 BMW Z4와 같은. 승차감을 어느 정도 생각한 하체 세팅으로 데일리카로 타기에도 괜찮고 운전자가 놀길 원할 때는 맞장구를 적극적으로 쳐준다. 두 차는 밸런스가 좋아 와인딩 실력도 출중하다. 앞서 말한 로터스와 붙는다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운전자가 아마추어건 프로건 간에 최첨단 전자장비까지 갖춘 프리미엄 브랜드 로드스터를 로터스가 가벼운 것 하나만으로 간격을 벌리기는 힘들다. 브랜드 파워도 높아 이성들의 환심을 사기에도 좋다.
# SUV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오픈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이 있다. 시야가 트인 상태로 여유 있게 달릴 수 있다. A필러부터 트렁크 리드 라인까지 막히는 곳 하나 없어 개방감은 최고다. 차가 높지만 실내로 유입되는 풍량도 적당하다. 차고가 높은 장점은 더 있다. 보통의 오픈톱 모델이 차고가 낮아 주차 스트레스가 있는데 이보크 컨버터블은 예외다. 당시 시승차가 디젤 엔진을 달고 있었는데 기름값 부담도 없고 성능도 준수했다.
랜드로버 배지를 달고 뚜껑이 열려 있으니 사람들의 시선도 쏟아진다. 이색적인 장면을 놓칠세라 뚫어져라 쳐다본다. 오픈에어링에 필요한 음악도 근사하다. 메리디안 시스템은 밖으로 소리가 퍼지지 않게 잘 세팅되어 있다. 베이스는 묵직하고 고음처리도 깔끔해 바람소리 속에서도 가사가 또렷하게 전달된다. 오픈에어링과 함께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보크 컨버터블이다.
# HIGH-END LUXURY
호사스러운 오픈에어링이다. 환희의 여신상을 앞에 두고 하늘을 영접하는 롤스로이스 던. 롤스로이스를 타보면 확실히 보통의 차와는 다르다. 비교되는 벤틀리와도 확실히 다르다. 고요하게 구름 위를 달리는 느낌은 롤스로이스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던도 마찬가지. 오픈톱 특성상 풍절음에 약한데 던은 다른 롤스로이스처럼 적막하다. 캔버스를 6겹이나 포개어 루프를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톱을 열어도 평화는 깨지지 않는다. 바람은 머리카락만 살랑살랑 스치며 지나간다. 덩치가 크고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편하게 탈 순 없었지만 돈이 많다면 이만한 차도 없다. 조용하고 빠르고 무적의 배지까지 달렸으니까. 거기에 성인 4명이 넉넉하게 바람을 느끼며 달릴 수 있다.
# MY CHOICE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오픈톱의 조건이 있다. 나긋나긋한 주행질감, 짐을 놓을 수 있는 리어 시트, 그리고 소프트톱이다. 많은 오픈톱을 타보니 여유 있게 오픈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차가 가장 끌렸다. 고성능 모델이면 나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밟고 싶기에 높은 출력은 오히려 피하고 싶다. 로드스터는 외투 하나 놓을 공간이 없어 불편하다. 소프트톱은 하드톱보다 운치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BMW M4 컨버터블보다는 430i 컨버터블, 메르세데스-AMG C63 카브리올레보다는 C200 카브리올레가 좋았다. 가격도 손에 닿으니 데일리로 타다가 결혼하면 와이프 주고 아기 낳으면 다시 내 출퇴근용으로 써야지 하는 계획까지 정도다. 여기까지 메르세데스-벤츠 E450 카브리올레를 타기 전 이야기다. 일단 내 이상적인 오픈톱 조건은 다 갖췄다. 무엇보다 외관은 오피셜 사진으로만 봐도 예쁘다. 팬미팅 기분으로 E450 카브리올레를 불렀다.
실물이 훨씬 예쁘다. 우아하기까지 하다. 샴페인 골드 색상에 네이비 루프, 그리고 베이지 인테리어가 내 취향이긴 하지만 화이트에 블랙 루프 조합도 지루하진 않다. 프런트 오버행은 짧고 리어 오버행은 길어 측면 비율이 예술이고 소프트톱은 프레임 부분이 도드라지지 않아 만족스럽다. 오픈톱의 인테리어는 곧 익스테리어다. 지금 메르세데스의 인테리어는 자동차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이 테마를 사용한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세련되고 아름답다. 컬럼에 붙어있는 기어노브만 어떻게 하면 완벽하다.
루프의 개폐 여부와 상관 없이 조용하다. 디젤 트림인 E220d 카브리올레가 있는데 궁금하긴 하다. 삼각별을 단 채 뚜껑을 열고 달달거리는 그 기분이 어떨지. 여하튼 E450 카블리올레 6기통 엔진은 V형에서 직렬로 바뀌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직렬 6기통의 회전질감이 더 매끄럽다. BMW 6기통이 실키식스라 불리는 이유다. 힘은 충분하고 그 힘을 촐싹대면서 노면에 전달하지 않는다. 사륜구동 시스템과 에어서스펜션은 승차감과 주행안정성을 모두 확보했다. 덕분에 고속안정감도 훌륭하고 코너를 돌 때 무섭지도 않다.
아직 바람이 차갑지만 에어스카프를 믿고 톱을 열어본다. 일단 에어캡과 2열 헤드레스트 뒤에서 올라오는 윈드 디플렉터는 바람을 잠재운다. 속도가 올라가도 헤어스타일을 망치지 않는다. 목과 엉덩이도 금세 따뜻해진다. 반면 스티어링 휠 열선이 빠져있다. 송풍구를 스티어링 휠 쪽으로 조절하면 손이 시리진 않지만 차 가격을 생각하면 아쉽다.
오디오는 엄지를 치켜든다. 다른 메르세데스에 달려 있는 부메스터를 들으며 사운드가 좋다고 느낀 적이 한번도 없는데 이상하게 E450 카브리올레의 것은 성능이 좋다. 중저음이 묵직하고 하이톤을 낼 때도 신경질 부리지 않는다. 오픈을 하고 달려도 볼륨을 계속 올릴 필요도 없다. 바람 소리 속에서 운전자 귀를 향해 음악을 잘 쏜다. 촬영 후 오랜만에 삼각별을 타고 음악을 들으며 밤바람의 여유를 즐기니 최근에 쌓인 짜증이 다 날아간다.
정말 탐나는 차다. 1억원을 살짝 넘는 가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예산이면 장르가 아예 다르긴 하지만 BMW M4와 포르쉐 박스터가 아른거린다. 만약 요즘 피가 끓지 않는다면 E450 카브리올레를 선택하면 된다. 얌전하게 타면서 남들이 부러워해주는 ‘벤츠 오픈카’다. 평소에 E클래스 세단처럼 출근하고, 넥타이 풀고 바람을 맞으며 퇴근할 수 있는 E450 카브리올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