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에 흥남철수선을 타고 탈출하였던 실향민 '임길순' 씨가 진해에서 서울로 가려다가 열차에 문제가 생겨 대전에서 내리고 말았습니다. 생계가 막막했던 임씨에게 대전 대흥동의 성당에서 구호물자인 밀가루 두 포대를 내어줬습니다.
임씨는 그것으로 먼저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고 남은 밀가루로 찐빵을 만들어서 대전역 앞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조그만 나무간판에는 성스러운 마음이라는 '성심(聖心)'을 새겨넣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전의 명물 빵집인 '성심당'의 효시입니다.
북한을 탈출할 때 임씨는 '이번에 살아남으면 남은 인생은 남들에게 베풀기 위하여 살겠다.' 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임씨는 매일 만든 빵 중에서 100개는 이웃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날 만든 빵중에서 안 팔리고 남은 빵은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는 성심당의 아름다운 전통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성심당을 물려받은 임영진 대표가 1981년에 소보로와 앙금빵 도넛을 합친 듯한 '튀김소보로' 빵을 개발하여 대히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2005년에 화재로 매장과 빵공장이 모두 소실되는 대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사장은 낙심하여 장사를 접으려 했지만 직원들이 의기투합하여 '잿더미 속에서 우리가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 는 플래카드까지 내걸며 재건에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성심당은 직원 인사고과에 '사랑'이라는 항목을 만들어 거기에 배점 40%를 주고 퇴사한 직원들에게는 재입사 권리를 보장하며 화답하였습니다.
2012년에 창업지였던 대전역에 분점을 낸 것이 전국구 빵집으로의 도약을 이끌어내게 되었습니다.
대전을 방문한 외지인들이 성심당 빵을 앞다퉈 사가므로 군산의 이성당과 함께 전국의 2대빵집 반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하루에 내방객이 1만 7000명이 넘는 성심당은 1년에 하루 열리는 직원 체육대회 날에만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성심당이 지난 해에 1243억 원의 매출을 올려서 동네 빵집 처음으로 100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영업이익은 무려 315억 원에 달해 파리바게뜨(199억 원) 뚜레쥬르 (214억 원) 등 수천수백개의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을 거느린 대기업 빵집들을 모두 앞지르는 쾌거를 올렸다고 합니다.
작년에 선보인 '딸기시루' 가 가성비 높은 케이크로 입소문을 타면서 매출을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성심당 임 대표의 책상 위에는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라고 적힌 명패가 놓여있다고 합니다.
동네빵집이 기라성같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향토기업이 되어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나눔의 법칙 속에는 무한한 성장과 발전이 보장된다는 생생한 교훈을 성심당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 올해 대전 성심당 빵집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얼마나 사람이 모여 드는지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