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김종현의 마지막 여자
앞서 이 글은 영화 <귀향>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므로 영화 본 후에 나중에 같이 나누고 싶은 여시들만 읽어주기를 바라요. 그러면 왜 이글을 썼냐라고 말하실 수 있는데, 제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같이 나누고 싶어서 씁니다. 혹시라도 보고싶지 않았던 부분까지 스포 당한 여시들에게는 미리 사과를 드려요. 문제가 된다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귀향> 후원자 시사회를 다녀왔어요. 사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후기를 적기 망설여 질 거라고 예상합니다. 사실 컴퓨터 앞에 앉은 지금도 뭐라고 적어야 좋을 지, 뭐라고 내가 적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영화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줄거리는 간단하고 또 우리 모두가 제목에서부터 충분히 유추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위안부에 끌려갔던 우리의 한 소녀가 그 모진시간을 견디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끝이자 시작인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그게 끝일까요.
1.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할게요. 영화가 작품성이 어마어마하게 뛰어나다거나 CG처리가 좋다거나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특히 손숙배우분의 감정처리가 좀 더 세밀했으면 더 좋았겠다, 몰입이 잘 됐겠다 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오브제인 괴불노리개 역시 마찬가지죠. 굉장히 노골적이고 눈에 보이게 쓰여있어요.
이 영화는 은경이라는 아이가 무당처럼 죽은이가 산사람에게 말 할 수 있는 '몸'의 역할을 하면서, 이미 죽은 사람 그리고 아직도 마음만은 그 곳에 남아 있어서 상처를 여전히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까지 그 한을 조금은 풀 수 있게 해줍니다. 이 플롯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분히 통속적인 줄거리고 오가는 시점때문에 몰입이 종종 깨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 마지막에 굿을 하는 장면까지 이끌어가는 힘이 좋아요. 이 장면을 위한 소재였다고 생각 되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제가 문제 삼고 싶은 지점은 은경이가 이런 능력을 갖게 되는 지점입니다. 은경이는 집에 혼자 있다가 강도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아버지는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자살시도를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은경은 반실성 상태가 되고 이로 하여금 무당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됩니다. 왜 무당은 자아가 분열 된 상태라고들 하죠? 지나친 충격으로 '미친 년'이 되고, 실제로 영화 속에서 만신이 은경을 보고 미친년 처럼 말이지? 하면서 웃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과연 필요했는 지 의문입니다. 성적으로 피해를 받은 '위안부'여성을 다루는 영화인데요. 한 여자가 각성 (이라는 표현은 조금 틀릴 수 있지만) 하는데 성적으로 무언가를 잃음으로써 얻게한다면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혹은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상처의 맥락이 다르고요. '위안부'는 국가적 문제니까요.
두번째로 불편한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린 소녀들을 도와주려는 '일본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그로하여금 면죄를 얻을 만큼 이끌어가지는 않습니다. 그 지점이 오히려 좋기도 했어요. 이 일본인의 비중이 더 컸다면 위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적당한 지점에서 잘 끊어 준 것 같아요.
또 일본인들이 지나치게 광기어린 모습으로만 표현되고 성적인 폭행을 가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상황이 보이지 않는 점. 그냥 외딴 곳에 군인들이랑 '위안부' 소녀들만 있는 느낌을 줍니다. 전쟁중이라는 긴장감도 없고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싸움을 벌일 때도 별 느낌이 없어요. 과연 조선사람이기는 한건가, 그냥 작은 패싸움 느낌이 듭니다. 배경이 장악되지 않아요. 하지만 이는 아무래도 예산의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일본인들이 지나치게 광기어린 모습으로만 표현되는 건 그냥 이성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우리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라는 면죄가 될까봐 그래요. 그때 정말 제정신으로 소녀들을 힘들게 한 사람들도 있을거예요. 정말로 우리를 괴롭히던 사람들은 전쟁의 트라우마로 미쳐버린 사람들보다는 그 시대를 누리면서 당연시여기던 사람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캐릭터들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는 했어요.
2. 그럼에도 우리는 <귀향>을 봐야만 한다.
실컷 깠죠. 네, 이 영화를 감히 내가 조목조목 따지고 들다니 작은 죄책감이 일기도 해요. 사실 이영화는 누군가의 '삶'이라서 감히 잣대를 대기가 너무 죄송하기도 해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볼게요. 이 영화는 집으로 돌아온 한 '위안부'할머니의 이야기 입니다. 그래요. 돌아왔어요.
제가 사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지만 가장 많이 울었던 부분 중 하나는 나라가 '위안부'할머니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어요. 피해보상을 받고 싶으면 자진 신고를 하래요. 그런데 뭐라는 줄 아세요?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런 걸 이야기 하겠냬요. 그 공무원을 까자는 게 아니에요. 국가가 그렇게 내몰았어요. 그들을 대우해줬어야죠. 죄송하다고 당신들이 얼마나 이 부족한 국가 탓에 고생했느냐고 말했어야죠. 왜 그들이 그토록 돌아오고싶었던 고향땅에서마저 눈치를 보게하나요.
지금도 쓰면서 울컥하네요. 이 이야기는 그대로 우리 사회로 돌아와요. 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급식비 면제받는 애들 손들라고 한 적이 있어요. 한 친구는 끝까지 손을 들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이름을 불렀어요. OOO, 너 왜 손 안들어. 일종의 낙인이죠. 새삼 이나라의 복지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그래서 대책 마련해줬을까요. 그랬다면 이 영화가 안나왔겠죠. 그래서 봐야해요. 이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서.
상영을 시작하기 전에 감독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오늘 한 할머님께서 나비가 되셨다고. 네, 아직 진행형인데 누군가는 자꾸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들이 모두 우리의 곁을 떠나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그래서 보셨으면 좋겠어요. 직접 경험하셨던 분들이 모두 진정한 고향땅으로 돌아가시더라도, 누군가는 계속 싸워야 하니까요.
그 때 나라가 헐값에 소녀들을 판 것 처럼, 이번 정부에서도 헐값에 소녀들을 팔았죠. 그 소녀가 다음번에 내가 아니란 법 있나요.
3.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두개가 결말에 잘 드러납니다. 낯선 나라에서 죽어야만했던 한 소녀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기억속에 아직도 묶여있는 남은 분들이 이제는 내려놓으시기를. 이 영화를 보고 난 저 또한 감독님과 작가분들, 배우분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 영화를 보고 저는 계속 힘들었어요. 이글을 쓰는 이유는 사실 너무 힘들어서 제가 조금은 덜 힘들고 싶어서 쓰는 이기적인 글입니다. 그래서 스포도 많고 감정투성이에요. 이글을 읽을 여시들에게 조금은 미안해요. 소녀들이 억울하게 죽었던 그 골짜기가 잊혀지지 않아요 저 또한 거기에 메여있는 것 같아요.
은경이와 정민이는 이제 집에 갔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걸 여전히 거기 남아서 그걸 기억해야만 해요. 그게 그 시대에게 빚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닐까요.
누군가는 과거와 작별하라고 할거예요. 맞는 말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때로는 과거의 손을 놓아야 미래로 갈 수 있다고. 근데 과거의 손을 놓을 때는 내가 충분히 과거를 애도했을 때 뿐이에요. 애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강제적인 작별은 기형적인 뒤틀림을 낳을거예요.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건 적어도 남이 아니에요. 오로지 상처받은 당사자의 몫이지.
저는 그 사이를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그 사이를 지키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되고 싶어요.
오늘도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첫댓글 나도 여시처럼 이 영화 보고나면 내 마음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많이 망설였는데 여히가 쓴 글 보고나니 그래도 꼭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 들어 영화 꼭 볼게 여시!!!
진짜 꼭보러가야겠다 우리지역은 다행히 상영시간도 많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