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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토요일 맑음
토마토 한 개로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해서 출발한다. 열쇠를 갖다 주려고 사무실에 갔더니 주인은 바닥에 이불피고 곤하게 자고 있다. 책상위에 열쇠를 놓고 조용히 나왔다. 아침 6시에 숙소를 나섰다. 큰 길로 향하는 골목길은 조용하다. 개들이 많다. 으르렁 거리며 끈질기게 따라오는 개가 짜증나게 한다. 큰 길에 나오니 사람들과 차들이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한다. 택시를 잡아타고 노르디 역으로 향했다. 역은 잠도 없이 밤새 북적였나보다. 지저분한 느낌이다. 아침 바람은 약간 차다. 브라쇼브 행 7시 30분 기차를 끊고 밤차로가는 벨그라드행 시간을 알아보았다. 21시 05분에 출발하여 아침 8시 45분에 도착하는 기차가 적당한것 같다. 브라쇼브에 다녀와서 끊기로 하고 짐을 맡기러 갔다. 택시비는 8R인데, 가방 맡기는 비용은 1개당 4R이다. 다양한 시설이 역에 있어서 좋다. 아침 7시 30분 기차를 탔다. 좌석 번호는 24, 25번이다. 한 칸에 6명이 탈 수 있는 기차다. 87세인 할아버지 부부와 우리 보다 좀 젊어 보이는 부부가 탔다. 모두 소박한 미소를 갖고 있는 행복해 보이는 부부였다. 잔잔한 웃음과 배려하는 행동들이 우리를 편안하게 했다. 서로 영어를 못해 말도 통하지 않아 답답했지만 음식을 주고받으며 웃는 것이 의사소통이었다. 주는 음식 받아먹는 것도 중요한 대화임을 알았다. 코믹한 표정으로 노래까지 불러주는 할아버지는 약간 푼수 끼 있는 할머니와 귀엽게 살아가시는 것 같다. 말없이 입 다물고 미소 짓는 아저씨는 차분한 아주머니와 조용히 살아가는 것 같다. 남들 눈에 우리부부는 어떻게 비쳐질까? 우리 부부는 뭔가 다르겠지 생각했는데, 우리도 비슷한 모습으로 보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차는 연착이다. 표에는 도착시간이 10시 46분으로 되어있는데, 목적지에는 반도 못 왔다.
힘차게 출발하여 제법 달리던 기차가 넓은 벌판을 지나 Ploiesti 역에 한무리의 사람을 내려놓았다. 이곳은 루마니아 최대의 석유 정제소가 있는 공업도시다. 비즈니스의 요지이므로 관광지로서의 볼거리는 적다. 석유박물관에 가보면 19세기에 시작한 석유정제의 역사에 관한 사진 자료 등을 견학할 수 있다. 1810년에 지은 보테자토룰 대성당은 은세공이 멋진 곳이다. 기차는 점점 느려진다. 이제는 멈춰버려 갈 생각을 안 한다. 지난번 폭우로 기차 길이 망가져 보수작업을 하고 있단다. 기차는 거의 1시간을 멈춰 있다가 서서히 움직인다. 작은 언덕과 시냇물이 보인다. 시냇물은 공사 탓인지 뿌옇게 흐른다. 느리게 가는데 S자로 간다. 길이 험해지고 힘겹게 올라간다. 왼쪽 창가 밖에는 거대한 암벽 산이 구름과 함께 버티고 있다. 이 산들이 카르파티아 산맥이다. 루마니아에 자리하고 있으며 14개의 산맥지류가 있고, 해발 2000m 이상의 높은 산이 많다. 그중에서도 브라쇼브와 시비유 사이에 있는 파가라스 산줄기가 유명한데, 40여개의 빙하호와 루마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 네고이유(2535m) 와 몰도비아누 산이 있다. 산악지대가 넓게 퍼져있어서 그만큼 동물의 종류와 식물의 종류가 많이 살고 있다. 많은 젊은 이 들이 산을 오르기 위해 큰 배낭을 메고 Sinaia 역에 내린다. 기차는 텅 빈 느낌이다. 힘겹게 오르던 기차도 제법 속도를 내고 달려간다. 이제 약간 내리막이다. 브라쇼브에 12시에 도착했다. 거의 1시간 30분이 연착되었다. 할아버지의 짐을 하나 들어드리고 기차를 내렸다. 서로 웃으며 인사를 하고 많은 인파 속으로 할아버지 부부가 서둘러 사라지신 후 우리도 갈 길을 찾았다. 여기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Bartolomeu 버스 정류장에 가서 브란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시간이 좀 부족할 것 같아서 택시 가격을 알아보니, 왕복 35유로를 내란다. 몇 대의 택시를 흥정하여서 왕복 20유로에 택시를 하나 잡았다. 수첩에 20유로라고 써서 확인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는 음악을 틀고 간단한 몇마다 인사를 영어로 나누고 달린다.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달리니 기분이 좋다. 말로만 듣던 드라큘라 성으로 간다. 도로변에 세워진 집들이 모두 붙어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아내와 얘기를 나누었다. 택시기사는 중년의 남자로 머리에 기름을 바른 제비 같은 인상을 주는 잘생긴 사람이다. 주변 관광지 사진을 보여주며 브라쇼브에서 묵고가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생각해 본다는 말 밖에........ 흡혈귀 드라큘라의 모델이 된 부란성은 브라쇼브에서 남서쪽으로 약 30km 떨어져있다. 드디어 택시는 브란성 앞에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문제가 생겼다. 메타기를 가리키며 80R(약20유로)가 나왔으니, 메타 요금으로 달란다. 적은 종이를 보여주며 20유로에 왕복하기로 함을 보여주며 따졌다. 안된다고 그냥 돌아간단다. 차 문을 열고 아내와 일단 내렸다.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기사도 좋단다. 아내와 나는 걷고 기사는 택시를 타고 따라온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경찰서는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단다. 택시 기사는 타고 가자는 것을 너무 화가 나서 걸어가기로 했다. 100여m 걸어가니 흥정하잔다. 그냥 걸어가는데, 아내가 걱정이 된다며 그냥 요금을 주고 돌려보내잖다. 그래도 약속한 요금의 반값인 10유로이상 줄 수 없다고 말하고 다시 걸어간다. 택시기사는 10유만 달라고 사정을 한다. 약속한 20유로에서 반인 10유로를 주고 헤어졌다. 이겼다는 기분보다는 불쾌감과 안도감이 더 생긴다. 사람 사는 어디나 마음은 똑같은가 보다. 드라큘라 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는 무시무시한 가면들을 많이 팔고 있다. 전 세계 무서운 가면은 다 와 있는 것 같다.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다.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보던 가면들도 보인다. 다른 기념품들이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입장료 20R를 내고 들어간다. 드디어 성이다. 계단을 오르는데, 시원하다. 부체지산 기슭에 있는 브란 마을의 산위에 우뚝 서 있는 전형적인 중세의 성채이다. 이 성은 1377년 독일 상인이 왈라키아 평원에서 브라쇼브로 들어오는 오스만 군을 일찍 발견하기위해 축성했다고 한다. 14세기 말에는 왈라키아 공 블라드 1세가 이곳에서 살았다. 드라큘라의 모델인 체베슈의 조부에 해당한다. 성안에는 군주의 집무실 등 많은 방이 있다. 실내는 주로 검은 색 칠을 한 나무로 되어 있어 부드럽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분위기다. 탑 맨 윗 층에 서니 주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피아노, 철갑옷, 주방기구, 문장 깃발 등 간단한 가구들이 방을 장식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좀 좁아 보이는 성이다. 좁은 통로와 층계가 좀 답답하다. 루마니아 트란살바니아에 남아있는 드라큘라 전설의 발단은 15세기에 실재했던 왈라키아 공 블라드 3세, 일명 블라드 체베슈(창꽂이 공)의 이상한 잔학성이었다고 한다. 그는 배반자나 당시 적대시 하였던 터키병을 본보기로 삼아 꼬쟁이에 꿰어 처형하는 등 여러 가지 고문을 고안하여 실행했다고 한다. 드라큘라란 루마니아어로 악마(드라큐르)를 뜻하기도 한다. 혹자는 드라큘라는 루마니아어로 드라큘의 아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후자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드라큘라에 대한 이미지를 친근하게 느끼고 있고 또 정의로운 군주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1952년에 미국의 첫 탐사팀이 드라큘라 소설에 나오는 ‘보르고파스성’ 을 찾기 위해 루마니아에 왔다. 당시 루마니아 정부와 탐사 팀은 그 성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 노력했다. 그 후 정부는 국가의 이미지를 고려하여 드라큘라 소설을 읽는 것을 금지시켰고, 루마니아 혁명(1989년)까지는 이 소설을 아는 이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미국의 드라큘아 영화에 나오는 성과 닮았다는 이유로 브란성을 지목하게 되어서....... 뭐 이런 내용이란다. 영화 드라큘라는 1931년 감독 토드 브라우닝이 만든 영화에 드라큘라 백작이 살고 있다는 보르고파스 성이 나온다. 처음 드라큘라 라는 소설은 아일랜드의 소설가 브람 스토커가 1897년에 썼다. 그는 공포소설을 쓰려고 동유럽의 전설을 수집하던 차에 잔인한 블라드 이야기를 듣고서 그의 상상력을 더해서 흡혈귀로 탄생되었다. 그 후 전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백편의 영화가 만들어 졌다.
블라드 제페슈는 시기쇼아라에서 태어난 군주였다. 지금도 13세기 작센 상인들이 세운도시, 시기쇼하라의 드라큘라 레스토랑이 그의 탄생지로 알려져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블라드 가문은 오스만 터키에 맞서 싸운 군주다. 제페슈는 루마니아 말로 꼬쟁이라는 뜻이란다. 꼬쟁이로 처형하는 방법은 당시 중세에는 흔한 처형방법이란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꼭, 가보고 싶은 곳 이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음산한 소설분위기 보다는 쾌적하고 흥겨운 느낌이다. 동화 속 헨젤과 그레텔이 생각나는 곳이다. 무서움 보다는 웃음이 나오는 곳이다. 이 성은 지금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유로 되어 있다.
성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나오니 좀 허전하다. 입구에서 표 검사하는 아저씨와 사진을 찍고 나왔다. 줄지어 있는 기념품 가게에도 온통 드라큘라 상품이다. 와인 상표를 잘 보니 드라큘라 피라고 이름 지어져 있다. T셔츠, 컵........., 온통 드라큘라 얼굴이다. 괴기스러운 물건이 가득한 동화나라 같다. 잔디 깎는 긴 낫을 든 일꾼이 4명 지나가는데, 낫이 워낙 길고 커서 무서울 정도다. 돌아가려고 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버스 시간표가 보인다. 40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길가에 있는 택시를 흥정했다. 10유로로는 어려웠다. 10E에 10Rei(2.5E)를 더 주기로 하고 택시를 잡았다. 이것도 수첩에 기록하고 서로 확인했다. 차는 잘 달려 브라쇼브 입구에 도착했는데, 기사가 또 메타요금을 달라고 한다. 할 수 없이 이곳에서 내려 수첩에 적은대로 돈을 주고 화난표정으로 문을 꽝 닫고 내렸다. 택시는 아무 말 없이 간다. 약속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다. 좀 실망스럽다. 다행히도 내린 곳이 Bartolomeu Auto Gara(bus Station) 이다. 친절한 아가씨의 도움으로 버스를 타고 역전으로 왔다. 덕분에 브라쇼브 시내를 구경하게 되었다. 브라쇼브는 루마니아 제 2의 도시다. 중세의 거리가 남아있는 아름다운 고도다. 툼파산과 포스타바툴산의 기슭에 있으며 맑은 공기와 주황색 지붕이 인상적이다. 12세기에 독일 상인이 건설하였으며 루마니아인, 헝가리인 등 세 민족에 의해 발전해 왔단다. 시내 중심가에 우뚝 서 있는 검은 교회와 성 니콜라이 교회, 그리고 톰파산이 볼거리다. 특히 검은 교회는 높이가 약 65m의 트란실바니아 최대의 후기 고딕양식이다.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초반까지 약 80년에 걸쳐서 건립하였다. 1869년에 합스부르크 군의 공격으로 외벽이 검게 그을어 검은 교회라고 불린다. 교회 안에는 1839년에 만들어진 4000개의 파이프와 네 개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또 16~18세기의 터키 아나톨리산 카펫이 장식되어 있단다. 기차역에 들어서니 3시 30분이다. 3시 50분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역 옆에는 버스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시외버스 터미널인 셈이다. 주로 미니버스가 많다. 기차를 타고 다시 부크레시티로 향했다. 한번 갔던 길이라고 이젠 낯설지 않다. 덜덜거리는 흔들림에 잠이 들었다. 저녁 8시에 북역에 내렸다. 또 한 시간 정도 연착되어 도착한 것이다.
서둘러 세르비아의 벨그라드행 열차표를 끊으러 갔다. 오전에 예매를 했으면 2등칸(123Rei) 자리가 있었는데, 저녁이 되니 모두 매진되고 1등칸(173Rei) 밖에 없단다. 할 수없이 신용카드로 표를 끊었다. 덥고 눈이 아프다. 침대칸은 250Rei 다. 일단 짐을 찾고 화장실(1Rei)에 들어가서 세면을 하고 밤새 달릴 마음의 준비를 했다. 햄버거를 하나 사서 21시 05분에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정확하게 출발했다. 아침 일찍부터 지금까지 사건 사고도 많은 날 이었다. 성호를 긋는 택시기사를 믿어야 할까?
이제 루마니아를 떠난다. 부크레 시티를 떠난다. 창밖에는 마차들이 차들과 함께 힘겹게 달려간다. 기차 안에서는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얘기를 한다. 농부들은 중세풍 농가 뒤뜰에 있는 접시모양 안테나를 통해 베이와치(Bay Watch : 인기 있는 미국 TV 시리즈, LA 해양구조대)를 시청하며......... 루마니아는 스스로를 깨고, 차우세스쿠 시대의 흔적에서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벗어나고 있다. 그러한 변화과정이 쉽지않으며 때로는 매우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돈이면 뭐든지 되고 옷은 알마니아(Armani : 의류브랜드)를 입는 성장 속으로 급격히 내닫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도 나라의 형편은 뒤쳐져 있다. 그러나 1996년 신 공산주의 정부가 국민투표로 밀려나고 순수한 개혁을 표방하는 당이 정권을 잡아 나라는 희망을 잃지 않게 되었다. 루마니아에는 웅장한 성, 중세의 모습의 마을, 훌륭한 하이킹 코스와 야생 동식물, 그리고 값 싼 스키장이 많이 있다. 유럽에서 가난한 나라이지만 서유럽 국가와 같은 꿈을 쫓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여행객 상대의 사기에는 재주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데, 실망스러운 일이 오늘도 있었고 이 밤에도 일어날 줄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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