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대범한 전개와 완성도 높은 짜임새를 보여 주는 이 작품은 남편을 [언제나]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화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급 주택에서 남편, 두 아이와 살며 교사이자 번역가로 일하는 [나]의 생활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남편이 자신을 귤에 비유했다고 울고, 남편을 더 사랑하기 위해 다른 남자와 밀회하며, 남편의 모든 잘못을 수첩에 기록한 뒤 그에 맞게 형벌을 내린다. 남편의 작은 행동 하나에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기를 반복하는 [나]의 마음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 불안정한 진폭을 그린다. 그리고 모든 것이 폭발하고 무너져 내리려는 순간, 이 이야기는 기묘한 반전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한 부부 사이에서 일주일간 일어나는 일들을 무대로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일상적인 관계의 역학을 강렬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프랑스에서만 10만 부가량 판매된 이 작품은 현재 영어와 프랑스어로 각각 영상화를 논의하고 있다.
나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사랑뿐이다
[사랑한 적이 없으면서 사랑한다 믿었으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닫힌 문을 마주한 채 기다리기만 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중 한 구절로 시작하는 이 책은, 뒤이어 남편을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한다. [나]의 생활은, 언제나 남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는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에 깊이 몰두하며 의미를 찾는다. 남편의 서류를 몰래 감춰 두었다가 그걸 가져다주겠다는 핑계로 얻어 낸 남편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나]는 왜 남편이 이 식당을 골랐는지, 왜 여자 종업원에게 그토록 친절하게 구는지, 마치 이 식당에 자주 온 듯 메뉴를 쉽게 정하는지 의심한다. 남편과 이 종업원, [벌써 같이 잔 건가]?
이런 의문들로 [나]의 하루하루는 불안하기만 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맞추지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슬픔뿐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사랑은, 헌신과 순애보가 아니다. [나]에게 사랑은 규율이자 통제이며,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 요일이 지날수록, 주인공의 사랑은 점점 더 기묘한 방식으로 작동하며 불안감을 자극한다. [나]는 침실 덧창에 손을 뻗은 남편을 창밖으로 미는 상상을 하거나, 딸의 생일 파티 도중 다른 남자와 화장실에서 정사를 나눈다. 일요일 아침, 남편은 [나]에게 중요한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자신이 남편의 잘못을 기록한 [형벌 수첩]을 들켜 이혼당할 거라 생각하며 자신의 결혼 생활을 반추하고, 비련의 주인공이 될 준비를 마친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다다른다. 과연, 이 한 주일 동안의 기록은 [내 남편]에 대해 진실만을 보여 주었던 걸까?
마음을 뒤흔드는 데뷔작
서스펜스와 해학을 오가는 [관계]에 대한 내밀한 묘사
[내 남편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는 내 남편이다. 그는 나에게 속해 있다.](16면)
이것은 [사랑]일까? 이 기묘한 애정의, 집착의, 열망의 일기를 읽다 보면 떠올리게 되는 질문이다. 이 책을 옮긴 이세욱 번역가는 저자 모드 방튀라가 [뒤집어진 방식으로, 해체했다가 다시 구성하는 방식으로 부부간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익살스럽게 다룬다]라고 평했다. 이 작품은 서스펜스와 해학을 오가며 영리한 방식으로 사랑의 정동을 파헤쳐 놓는다. 주인공의 이야기는 공감을 자아내다가도 일순간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의 경계를 침범하고, 이를 통해 저자는 감정과 관계라는 문학의 보편 주제를 새롭게 해석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계급의 문제, 일부일처제에서 비롯하는 강박, 소유에 대한 열망을 촘촘히 엮어 관계의 정치학을 예리하게 묘사한다.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능숙하게 독자와 밀고 당기기를 하는 이 소설은 프랑스 대중에게 먼저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프랑스에서만 10만 부가량 판매되어 연간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랐으며 비평가들이 꼽은 데뷔 작품에 수여되는 [첫 소설 문학상]을 받았다. 영어로 번역, 출간된 이후에는 『오프라 데일리』 등의 영향력 있는 매체에 소개되고 영국 아마존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내 남편』은 강렬한 색채로 마음을 뒤흔들며 장르를 뒤섞는 동시에 모든 장면을 선명하게 그려 내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대상을 면밀하게 관찰하지 않고는 결코 포착해 낼 수 없는 [관계]와 [사랑]에 대한 이 책의 묘사는 『선데이 타임스』의 평가대로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 줘』와 견줄 만하고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의 계보를 잇는다.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동시에 멈출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를 찾는 독자라면, 이 책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나는 내 남편을 사랑한다. 첫날에 그랬던 것처럼, 청소년기에 사랑하듯,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나는 마치 내가 열다섯 살인 것처럼 그를 사랑한다. (……) 마치 그가 첫 남자였던 것처럼, 마치 내가 일요일에 죽게 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사랑한다.
--- p.9
나는 소리를 내지른다. 그러고는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척한다. 내 남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난다. 나는 짐짓 잠결에 내는 듯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나쁜 꿈을 꾸었다고 더듬거리고는, 침대의 내 쪽으로 몸을 돌린다. (……) 중요한 것은 그가 스스로 이렇게 묻는 것이다. 어떻게 내 아내를 보잘것없는 귤의 지위로 떨어뜨릴 수 있었지? 내 아내가 바나나의 지위로 떨어져도 괜찮단 말인가?
--- p.94
결혼 생활이란 타협하며 사는 삶이야.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왜 맞춰 사는 것을 받아들인 쪽이 나였을까?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아닌 내가 양보했기 때문이다.
--- p.105
돌아오는 길에 나는 슬픔에 젖어 운다. 귤 때문에 울고, 라사냐 때문에 운다. 내 남편이 나에게 가한 그 모든 상처를 생각하며 운다. 내가 울면, 옆을 지나던 행인들이 나를 돌아다본다. 하기야 나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우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니까. 나는 운다. 더 고약한 것은 나의 확신이다. 눈물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는 확신.
--- p.126
내 남편을 만난 뒤로, 내 부모와 자매와 동료 들은 끊임없이 내가 행복하다고 한 마디씩 했다. 그들 모두가 확신을 갖고 단언하기를, 그런 점에서 내가 운이 좋다고 한다. 마치 내가 로또를 통해 남편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운이 좋다는 것이다. (……) 달리 말하면, 그가 나보다 더 나은 상대를 만날 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을 넌지시 일깨워 주는 것이다.
--- p.131
내 남편의 숨결은 이제 바닷물 소리를 닮아 간다. 숨의 파도가 높아지고, 밀고 들어왔다가 물러 나가기를 되풀이한다. 그 숨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치 눈앞에 수평선이 펼쳐져 있는 듯하다. 그런 기분에 젖은 채로 나는 그가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계속 속삭여 준다. 나도 같은 꿈을 꿀 것이다. 오로지 밤만이 입회할 수 있는 꿈을.
--- p.169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내 살갗에서 막심의 냄새를 맡고 일종의 남성적 본능이 되살아난 것은 아닐까?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내 남편은 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갖고 온 날이면 언제나 나랑 성행위를 했다.
(……) 내 남편은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존재다.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있어도, 나는 그가 무척이나 그립다. 그가 내 몸에서 물러가면, 나에게 깊숙한 자상이, 무시무시한 허허로움이, 곪아 터질 상처가 남는다.
--- p.218
사랑에 빠지면, 나는 언제나 좀 사그라진 듯한 슬픈 상태를 맞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는 엄하고 슬픈 사람으로 변하고 마음 쓰는 폭이 좁아진다. 내 사랑에 심각함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만큼 진지하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 사랑은 고단한 일로(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빠르게 변해 간다. 요컨대, 나는 불행한 사랑을 한다.
--- p.237
내 상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가 수영장에 간 적이 없다는 것으로 뻗어 나간다. 수영은 이상적인 알리바이다. 한 시간 동안 전화를 받지 않고, 샤워를 해서 다른 여자의 냄새를 지우기 위한 마침맞은 핑계다. 그가 돌아오면 그의 가방에 든 수영복이 아직 축축한지 확인해 보리라.
--- p.266
결정은 내 몫이다. 내 남편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 그가 아래로 떨어졌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조금도 어렵지 않다. 의식을 잃은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 부서진 두개골, 뇌를 흥건히 적시는 피. 남편을 잃고 비탄에 빠져 버린 내 모습을 상상하기는 더 쉽다(검은 옷은 금발과 잘 어울리리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으나, 터무니없는 사고 때문에 삶의 흐름이 바뀌어 버린 여자 말이다.
--- p.312
그는 곧 내 목을 조를 것이다. 사실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건 그인데, 그는 나를 사라지게 만들려 한다. 그가 더는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곧 죽을 것이다. 내 남편이 내 위쪽에서 다가든다. 그의 손이 내 목에 놓인다. 나는 버둥거리지 않으리라. 소리도 지르지 않고 몸부림치지도 않으리라.
내 남편이 내 얼굴로 아주 바싹 다가들더니 뺨에 입을 맞춘다.
「여보, 안 자?」
--- p.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