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보기로 볼 수 있습니다!>
[29일]
만재도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 속하는 섬이며,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104㎞, 진도에서 서쪽으로 59.7㎞ 지점에 있다.
섬의 면적은 0.60㎢, 해안선 길이는 5.5㎞, 인구 45세대, 78명(2021년 기준)인 작은 섬이다.
만재도가 현재는 흑산면에 속해 있지만, 불과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진도군 조도면의 섬이었다.
지도에서 보면 흑산도와의 거리보다 오히려 조도와의 거리가 가깝다.
맹골군도의 죽도에서 서쪽 수평선을 바라보면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이 만재도다.
섬 이름 만재도(晩財島)는 "해가 지고 나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
"재물을 가득 실은 섬"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다 가운데 멀리 떨어져 있어 '먼데섬' 또는 '만대도'라고도 했다.
그 이름에 걸맞게 1930~1960년대엔 돈섬, 보물섬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만재도 근해에서는 가라지가 많이 잡혀 '가라지 파시'가 성행했다.
전갱잇과의 가라지는 고등어보다 크고 맛이 좋아 고급 어종으로 꼽혔다.
소금으로 간을 해 말린 뒤 구워 먹으면 특히 일품이었다고 한다.
가라지는 가거도나 상태도에서는 보이지 않고 유독 만재도 인근에서만 잡혔다.
한창일 때엔 가라지를 잡는 어선, 가라지를 구입하려는 상선 200여 척이 몰려 만재도 앞바다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흑산도, 가거도, 맹골도, 상태도 등지에서 상인들이 들어와 해변에 천막을 치고 술집을 차렸다.
작은 섬에 그런 술집이 10여 곳을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가라지가 급격히 사라졌고 외지 어부들도 만재도를 떠났다.
이후 1970년대부터 주민들의 생업은 해조류 채취와 소규모 고기잡이로 바뀌었다.
여름에는 미역 전복 홍합 해삼 등을 채취하고 봄 가을에는 주낙이나 낚시로 우럭 농어 장어 등을 잡는다.
여름이 되면 선착장이나 해수욕장에서 돌미역, 홍합 등을 손질하는 주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섬으로 가는 자유인
- 이생진 -
배 위에서 구두끈을 매는 여인은 아름답다
내가 배를 타고 떠도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배 위에서 배낭을 메고
귀로 파도소리 들으며
눈으로 먼 섬을 가리키는 여인은 아름답다
그런 낭만은 어디서 배웠을까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줬다고 하면 그건 명교사다
빈집 문은 어떻게 잠그고 왔을까
요즘 도둑이 심하다든데
파도소리에 맞춰
콧노래 부르며 먼 섬으로 가고 있는 여인은 아름답다
여자여서 그럴까 아니 남자라도
그런 남자는 세상을 살 줄 아는 남자다
사람들은 갈 데가 없어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살 줄 몰라서 방황하는 것인데
저렇게 떠돌아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정말 자유를 누릴 만한 사람이다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할까
우리만의 애국가를 부르고 싶다
낚시꾼과 시인(만재도.86)
- 이생진 -
그들은 만재도에 와서 재미를 못 봤다고 했다
낚싯대와 얼음통을 짊어지고 배를 타기 직전까지도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날보고 재미 봤느냐고 묻기에
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이라고 했더니
시는 어디서 잘 잡히느냐고 물었다
등대 쪽이라고 했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다.
만재도 주상절리는 부러진 연필 자루 수백여 개를 세워놓은 듯
신비롭고 장쾌한 풍경을 연출한다. 수직절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수평절리가 더해져 절리의 간격과 방향이 각양각색이다.
풍파에 깎여 나간 해안 절벽이 짙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절정의 풍색을 펼쳐 낸다.
만재도의 해안선은 단순히 '거친 풍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조율된 균열'을 이룬다.
특히 남동쪽 해안은 2024년 국가 지정 유산(천연기념물 579호)으로 인정받았다.
바다를 향해 기둥처럼 서 있는 이 지형은 1억년 전의 검은 유문암의 군락, 즉 주상절리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식애, 해식동, 시아치 등의 침식 지형까지 어우러지니, 이름처럼 1만 가지의 재물을 가진 섬임이 틀림없다.
만재 슈퍼는 청정마을 만재도에 홀로 존재하는 문명의 혜택.
그러나 사장님은 '독점 체제'의 금전적 수익에 연연하지 않는 '시크'한 운영으로 화제가 됐었다.
만재도와 2025년에 고인이 되신 '이생진' 시인하고는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인연을 지니고 있다!
이생진 시인의 호가 '만재(晩才)' 이다.
처음 만재도를 찾아왔을 때 만재도가 너무 좋아서 만재라는 호를 얻기도 했지만
'만재'는 대기만성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시인의 어머니께서 생전에 '너는 대기만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생진 시인은 '만재'라는 호를 좋아하셨다 합니다.
- 이생진(李生珍) -
충남 서산 출생(1929), 현대문학 (1969)으로 등단.
시집 『산토끼』(1955)이후 『나도 피카소처럼』(2021)까지 40권,
시선집 『시인과 갈매기』 등 3권, 기타 시화집, 산문집 및 편저 다수.
대표시집으로 『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
윤동주 문학상, 상화시인상 등 수상.
제주도 명예 도민, 신안군 명예 군민.
이생진 시인은 97세에 이르기까지 펜을 놓지 않는 현역으로 활동하셨다.
‘섬의 시인’으로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는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던 6, 70년대부터 천여 개의 섬을 탐방하면서
섬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을 시로 알리는데 힘을 기울였다.
한 예를 들면 저 남쪽 바다 끝 거문도를, ‘거문도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읊으면서
‘거문도에 가면 처음엔 자연에 취하고 다음엔 인물에 감동하고 나중엔 역사에 눈을 돌린다’
(시집『거문도』서문, 1998 참조)는 식이다.
섬과 바다를 표제로 삼은 시집은 이외에도
『바다에 오는 이유』 (1972),『섬에 오는 이유』(1987),『하늘에 있는 섬』(1997),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2000),『독도로 가는 길』(2007),『우이도로 가야지(2010),
『실미도, 꿩 우는 소리』(2011),『맹골도』(2017) 등이 있는데
그 중의 백미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1978)을 들 수 있다.
이 시집은 1978년에 초판 500부를 신도출판사에서 발간이래,
개정 1판을 1987년 동천사에서, 개정 2판을 2008년 우리글에서 펴냈는데,
2023년 기준 6판 4쇄를 넘어서게 되면서 시인 이생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매개가 되었다.
이는 섬이 우리의 심상에 외로움이나 그리움, 기다림과 같은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거니와
급격한 산업화로 말미암은 풍요가 오히려 사람을 계층화하고
물신(物神)에 삐지게 하는 세태를 정화하는 낭만적 시풍에 얹으므로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 이생진의 바다와 섬의 시편들은 단순히 시인이 지니고 있는
낭만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편협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40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어떤 발문이나 해설을 붙이지 않았다.
어떤 시류(時流)나 시류(詩類)에 영합하지 않는 시인은 첫 시집 『산토끼』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지 시는 죽어도 아니다.
한 번도 시 때문에 사람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 때문에 시의 희생은 수없이 하더라도 .....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없고 시만 있는 고독은 시와 함께 그 고독도 싫다.
그 고독도 시도 사람이 있는 고독이고 사람이 있는 시여야만 한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일관되게 평생 시업을 이루는 시관으로서
삶을 달관하거나 교훈의 메시지로서의 시가 아니라
필연적인 존재의 고독을 껴안고 그 고독마저 사랑하려는 열정으로 뿜어내는 깊은 숨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리운 바다 성산포』개정판에는 해설이 붙어 있다.
시인이면서 문학평론가인 김석준은 「포월로서의 바다」를 통해
이생진 시를 관통하는 시론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의 이생진論은 시인의 평생 시업詩業을 규명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그에 의하면 이생진의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삶의 공간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섬 시인인 이생진 시인은
1997년에 펴낸 '만재도'에 관한 그의 시집에서 만재도를 <하늘에 있는 섬>이라고 썼다.
당시 이생진 시인은 만재도에 관한 시만 무려 93개를 써서 시집 한권으로 묶었다.
그는 유서를 쓰듯 이들 시를 썼다고 했다.
"나는 살아서 만재도에 왔고 죽어서 이 시를 썼다.
유서를 쓰듯 쓴 시. 며칠을 살자고 울다가 떠난 매미처럼 벗어놓은 껍질이 이 시집이다.
그 껍질을 들고 매미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도 이 시집에 포함된 한 편의 시다".
아찔한 벼랑 밑으로 꼭 코끼리를 닮은 내마, 외마 두개의 섬이 나란히 붙어 서있다.
하늘에 있는 섬(만재도.4)
- 이생진 -
이 비경을 나만 보여주기 위해
어젯밤 조물주가 새로 만든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어젯밤에 태어났다
손톱 사이에도 때가 끼지 않았다
비공개리에 공개된 섬
만재도
배에서 내려 찾아가면 없고
없어서 다시 배에 올라타면 나타나던 섬
십 년을 그짓하다 오늘에야 올라간 섬
만재도
그 섬을 놓치지 않기 위해
큰산 물생산 장바위산
나도 검은 염소가 되어
염소들 틈에 끼어 따라다녔다
그들은 내가 염소인 줄 알고 마음놓고 다녔다
이 섬은 내가 염소이길 바랬다
마을의 집들은 하나같이 차곡차곡 돌을 쌓아 지붕까지 높게 담을 둘렀다.
멀리서 보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요새같아 보인다.
섬사람에게 이 돌담은 태풍이란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우는 성벽이다.
보이지 않는 섬(만재도. 43)
- 이생진 -
만재도에 가고 싶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오지 말라고 했다
아니 만재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가
아예 만재도는 없다고 했다가
만재도는 당신의 꿈속에 있을 뿐이라고 했다
만재도에 갔다 온 사람도 쉬쉬했다
만재도를 숨기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도 만재도에 갔다 왔으면서 만재도는 없다고 했다.
목포에서 105km 떨어진 신안군 만재도. 예전엔 만재도에 가려면 목포에서 5시간 30분 이상 걸렸다.
여객선 접안시설이 없어 바다에서 종선(從船)으로 갈아타고 섬에 들어가야 했지만,
2021년 접안시설과 경사식 선착장이 생긴 이후로 쾌속선을 타고 2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남해고속 뉴퀸호는 매일 목포항을 출발해 만재도를 거쳐 가거도까지 오간다.
만재도 주민들은 아침에 목포로 나가 일을 본 뒤 해 떨어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다.
만재도가 목포와 하루생활권이 된 것이다.
[30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