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는 새다
정일근
왜 집오리는 날지 않을까, 기러기목에 속하는
우아하고 튼튼한 날개를 접어 퇴화시키며
저 넓고 푸른 하늘의 자유를 포기한 채,
일용할 하루의 양식을 위해
도시의 더러운 시궁창에 거룩한 황금색 부리를 묻는
날지 않는 새, 집오리
시립 도서관의 먼지 쌓인 서가처럼
TV 앞에 침묵하는 우리들처럼
스포츠에 거세당한 이 시대처럼
날지 않는 집오리여, 너는 새다
길들여진 관습과 타성의 질긴 그물을 찢으며
빈 발목을 죄는 불안한 시대의 불안한 생존,
사육의 쇠사슬을 풀고, 혁명하라
날아라 집오리여, 새여
달 밝은 우리 나라의 가을밤
기역자 시옷자로 무리 지어 힘차게 날아가는
쇠기러기, 청둥오리떼를 따라 우리 다 함께
무서운 무리의 힘으로 힘차게 날갯짓하며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유의 하늘로 푸른 하늘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1987)-
해설
[개관 정리]
◆ 성격 : 풍자적, 우의적
◆ 표현
* 명령형의 어조를 사용하여 작가의 의도를 강하게 전달함.
* 직설적이고 선언적인 어조 -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을 질타하려는 의도
*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과 대조적 이미지를 통해 주제를 전달함.
* 우의적 수법(비유와 상징)을 통해 현대인의 삶의 태도 변화를 촉구함.
* 대상(자연물)을 통해 현대인의 부정적인 삶의 양상을 비판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왜 집오리는 날지 않을까, → 물음 형식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함.(자문자답의 형식)
* 우아하고 튼튼한 날개, 거룩한 황금색 부리
→ 집오리의 본질적 모습,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수단
* 저 넓고 푸른 하늘 → 자유로운 이상의 세계
* 일용할 하루의 양식 → 현실에 안주하는 삶, 물질적 가치에 경도된 현대인의 삶의 상징
* 더러운 시궁창 → 부정적 현실(군사정권의 상징)
* 날지 않는 새, 집오리 → 일상에 매몰되어 참된 본성으로서의 자유를 상실한 존재
* 시립도서관의 먼지 쌓인 서가처럼 / TV 앞에 침묵하는 우리들처럼 / 스포츠에
거세당한 이 시대처럼
→ 삶의 일상적 조건에 얽매어 참된 자아와 자유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
* TV, 스포츠 → 본질을 상실케 하는 문명의 이기들
* TV 앞에 침묵하는 우리들 → 비판의식을 상실한 모습
* 스포츠에 거세당한 이 시대
→ 현실에 대한 관심보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시대에 대한 비판적 생각이 담김.
* 너는 새다 →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임을 강조함.
* 길들여진 관습과 타성의 질긴 그물 → 집오리를 옭아매고 있는 현실적 조건, 소시민적 근성
* 사육의 쇠사슬을 풀고, 혁명하라 / 날아라 집오리여, 새여.
→ 존재를 억압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떨치고 본질을 되찾아 자유를 추구하기를 촉구함.
* 쇠기러기, 청둥오리떼 → 자유로운 존재, 새다운 새
* 무서운 무리의 힘 → 공동체의 힘, 단결의 힘
* 자유의 하늘로 푸른 하늘로 → 화자가 추구하는 세상, 반드시 이루어야 할 세상
◆ 제재 : 집오리(현실에 안주하여 살아가는 존재, 본성과 자아를 잃어 버린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
◆ 화자 : 현실적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자아 회복을 촉구하는 사람
◆ 주제 → 참된 자아 회복의 염원
현실의 관습과 타성에서 벗어나 자유의 세계로 비상하려는 의지의 촉구
[시상의 흐름(짜임)]
◆ 1 ~ 10행 : 자유를 상실한 집오리에 대한 안타까움
◆ 11 ~ 20행 : 자유 회복에 대한 염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하루의 양식을 추구하다가 점차 하늘을 나는 본성을 잃어 버린 '집오리'의 모습을 통해 일상적 삶의 조건에 얽매여 참된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자아를 회복하기를 염원하고 있다.
'TV 앞에 침묵하는 우리들처럼 / 스포츠에 거세당한 이 시대처럼 / 날지 않는 집오리'라는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집오리의 모습은 곧 꿈과 이상을 잃은 채 현실의 안일함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인간에게 '길들여진 관습과 타성'을 버리고 참된 인간성을 회복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작가소개]
정일근
직업 : 시인, 교육인
국적 : 대한민국
장르 : 시, 동화
출생 : 1958년 7월 28일, 경상남도 진해
<생애>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1984년 『실천문학』에 <야학일기> 등 7편의 시를 발표하고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라는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울산 및 경상남도의 지역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시힘’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경남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를 거쳐 경남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화일보와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등 사회적인 활동도 활발하다. 이전 국어 교사로서 근무했을 때에 1985년 진해 남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은 뒤 쓴 <바다가 보이는 교실 10-유리창 청소>는 2001년부터 7차 교육과정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작품 목록>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 (1987)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1991)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 (1994)
『처용의 도시』 (1995)
『경주 남산』 (1998)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2001)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2003)
『오른손잡이의 슬픔』 (2005)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 (2006)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2009)
『방!』 (2013)
『소금 성자』 (2015)
『저녁의고래』 한영대역신작시집 (2019)
-동화
『내가 꽃을 피웠어요』 (2009)
『우린 친구야 모두 친구야』 (2009)
『하나 동생 두나』 (2009)
『우리는 모두 하나예요』 (2014)
<수상 목록>
한국시조작품상 (2000)
시와시학 젊은시인상(2001)
소월시문학상(2003)
영랑시문학상(2006)
포항국제동해문학상(2008)
지훈문학상 (2009)
월하진해문학상 (2009)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 특별상 (2013)
김달진 문학상 (2013)
첫댓글 오리가 날면
오리가 아니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