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내용 |
9시에 황골육교에 집합하여 팀을 나누어 팀 각각의 장소로 갔다.그때 마니또를 뽑았는데 나는 위민영이라는 친구였다. 그리고 내 조는 1조였으며 2조와 함께 공주의 공산성에 가게 되었다. 공산성에 도착해서 우리는 공산성의 특징, 문화재, 설화, 관련인물 같은 것을 알아오는 것을 미션으로 받았다. 먼저 금서루에서 시작했는데 금서루는 공산성 4개의 성문중 서쪽의 문루였으나 성안에 도로를 개설하면서 오래전에 파괴되어 터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문헌의 기록과 동문의 유구를 조사한 결과 밑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간 곳은 진남루였다.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으로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조선 초기에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세운 문루이다. 그리고 다음에 간 곳은 영동루이다. 영동루는 공산성의 4개 성문 가운데 동문으로 이미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건물의 하부구조를 확인하였다고 한다. 이때 얻은 자료와 철종 10년에 편찬된 공산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1993년에 2층 문루와 복원하였다고 한다. 공산성 깃발은 화성처럼 북현무, 남주작, 동청룡, 서백호로 깃발이 나누어져 있다. 이 깃발들은 송산리고분군 6호분 벽화의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고 해방 후 김구 선생과 이시영 선생이 광복이란 이름을 붙인 광복루도 갔었고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 공주에 주둔하였던 명나라 세 장수 이공, 임제, 남방위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인 명국삼장비도 봤었다. 일제 때에는 명국삼장비를 일본인들이 왜구라는 글자를 지우고 공주읍사무소 뒤뜰에 묻어두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공주 공산성 연지, 만하루도 갔었고 우리는 쌍수정을 마지막으로 갔는데 쌍수정 사적비에는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 머물렀던 일을 기록한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인절미에 대한 설화가 있었는데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에 피난을 왔었는데 임씨 댁에서 콩고물을 묻힌 떡을 진상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인조가 이름을 물으니 아무도 몰라서 맛이 절미이고 임씨가 만든 떡이라 하여 임절미라 하다가 발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인절미로 되었다고 한다. 공산성 답사가 끝나고 공주국밥을 먹은 후에 수련원에 가서 짐을 풀고 lets라는 활동을 했는데 이 활동은 배우고 싶은 것과 자신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을 각각 적은 후에 수업을 개설하여 자기가 배우고 싶은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배우고 싶은 것엔 수학, 기타. 살찌는 법을 썼고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살안찌는법, 잠 잘자는법을 썼다. 나는 마니또의 수업에 들어가려 했으나 내 살안찌는법 수업이 개설되는 바람에 못들어갔다. 내가 할수 있는대로 수업을 했는데 저녁식사때 샘들이 먹는거 가지고 자꾸 따라하셔서 재미있었지만 난처했다. 그리고 공감 문화재 발표를 했는데 솔직히 나는 할 줄 모르고 조금만 준비했는데 내 이름이 나와서 재치를 활용하여 겨우겨우 2분 30초를 채우긴 했는데 내가 제일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다음에 장기자랑 및 레크레이션을 했는데 우리는 2조와 연합하여 붉은 노을을 불렀다. 그 후에 숙소에 들어가서 잘 준비를 하고 라면을 먹은 후에 4시까지 놀다가 잤다. 그 후에 6시 30분에 힘들게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했는데 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그 후에 강당으로 가서 모니터링한 내용을 발표하였다. 우리는 되게 메모를 충실히 해서 쉽게 할 수 있었다. 발표가 끝나고 조별로 2인3각 경기를 했는데 일찍 떨어진게 이득이었다. 왜냐하면 발목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그리고 닭싸움을 했는데 그때도 일찍 떨어져서 약간 아쉬웠다. 그 다음에 풀장에 가서 신나게 놀기 전에 나는 방장으로서 방안의 수건을 가지고 와야했었다. 그래서 조금 귀찮았지만 가져온 후에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형들이 나를 막 던져서 빠뜨리고 했지만 그게 제일 재미있었고 내년에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숙소에 다시 왔지만 씻지도 못하고 옷만 갈아입고 숙소를 정리하고 나와서 점심을 먹고 차를 타고 장곡사는 패스하고 바로 수원으로 출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