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이런 선생님이 계실까?♤
산천이 새 세상으로 활짝 피어나는 3월의 마지막 날, 순천의 시내를 동서로 길게 가로지르는 동천변 가로수길은 희고 붉은 벚꽃들로 그득하다.
새색시 같은 화사한 길을 지나는데 동천변 뒤로 익숙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우리 부부와 친하게 지내며 늘 온화하게 대해주시던, 안타깝게도 수년 전에 대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Y여사가 살던 곳이다.
그녀가 생전에 우리와 부곡 온천 근처의 어느 산동네를 지나갈 때, 자동차 안에서 어느 선생님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를 소개하는 Y여사는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하면서 그 교사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보여주었다.
Y여사 역시도 이웃에 대단히 헌신적인 분인데, 그녀가 그토록 존경하는 정선생이라는 분은 도대체 누구일까?
동쪽으로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몹시도 긍금해졌다.
언젠가 Y여사는 남편의 친구인 정선생 집을 가보고는 많이 놀랐다고 하였다.
그집엔 가구가 거의 없었고, 옷이라고는 부부 모두 한 두 벌이 전부였다고 한다.
정선생은 재산을 모으는 것 대신 자신이 가진 모든 재물을 가난한 어린 제자들을 도와주는데 사용하였던 것이다.
요즘들어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려우므로 우리에겐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가 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무더운 여름 오후에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정선생이 그에게 다가갔다.
“애야.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뭐하고 있어?”
정선생이 묻자 그 아이의 대답이 그를 감동시켰다.
“제 자신과 싸우고 있어요. 저는 저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지금 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정선생은 어린 초등학생인 그 아이를 매우 기특하게 생각하였고, 내심 그 애를 키워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고는 아이의 집 사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함께 가정방문을 가보니 참담한 집안 환경이었다.
아이는 거의 쓰러져가는 집에서 병약한 홀어머니와 단둘이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정선생은 그 때 부터 본인이 키워주겠다고 한 결심대로 아이와 그 집을 돌봐주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급여를 털어서 학비와 먹을 것을 대주었고, 아이 엄마가 죽자 정선생이 직접 거적에 그녀의 시신을 말아서 지게에 지고 동네 야산의 무덤에 매장도 해주었다.
무덤도 정선생이 직접 삽으로 파서 만든 것이었다.
이제 아이가 아무도 돌보아줄 사람이 없는 고아가 되자 정선생은 아예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 친자식처럼 돌보기 시작하였다.
아이는 스승의 은혜에 보은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 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시험을 보았는데 다섯개 은행에 모두 합격할 정도였다.
“선생님, 5개 은행 중에서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요?”
아이가 상의하자 정선생은 한국의 은행들의 지주격인 산업은행을 권했다.
어린 제자는 정말로 초등학생 때 그 무더운 여름 운동장에서의 결심대로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여 자신을 단련해온 것이다.
그리고는 결국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열심히 공부하여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것이다.
산업은행에서 착실하게 근무하고 있던 때에 우리나라가 국가부도사태인 IMF가 터졌다.
“외국의 IMF 심사관들에게 한국의 사정을 잘 설명해서 유리한 도움을 받아내야하는데 담당자로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을까?”
산업은행의 관료들은 수많은 직원들의 명단을 앞에 두고 고심에 고심을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정선생의 그 제자가 한국은행의 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리고 간부들은 얼마 지나지않아그들의 결정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유학도 가지않은 그가 실전에서 유창한 영어로 심사관들을 설득하여 거대한 외자를 유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한국을 IMF로부터 구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정선생은 이런 학생들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계속 자신의 재산을 다바쳐서 키워냈으니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그의 후원을 받았겠는가?
퇴직한 지 한참 오래인 정선생은 요즘 제자들의 초청으로 주례만 다녀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고 하였다.
정선생은 지금 또한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하는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성공한 제자들이 도와주도록 연결하는 일을 주로 한다고도 하였다.
나는 그날 그 자동차 안에서 Y여사로부터 스승의 사도가 어때야하는지를 배웠다.
평생 잊지못할,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위대한 가르침이었다.
- 옮겨온 글 -
2023년 12월 15일,
"선생은 영원한 영향력을 안겨주는 사람이다.
그는 절대로 영향력이 어디에서 중지될지 말 할 수가 없다."는 헨리 아담스의 충고를 모든 선생님들의 마음에 새겨지기를 소망하는 스승의 날인 월요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