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2]손자와 관람한 고흐의 그림
새해 벽두인 1월 3일, 대한민국의 돌아가는 정치뽄새가 날이 갈수록 심상치 않습니다. 드디어 공수처에서 탄핵 가결로 직무정지가 된 대통령을 체포한다고 합니다. 용산 관저 앞이 긴장이 팽팽하다는 것부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앞에서 왜 탄핵에 대한 찬반집회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내란수괴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손종이를 흔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란수괴 이재명을 체포하라>고 하니, 종잡기가 힘듭니다. 아홉 살 손자가 묻더군요. “할아버지, '재명아 감방 가자'가 무슨 말이야?” “으잉? 어디에서 봤어?” “TV에서 봤지” “으응, 그건 아주 잘못된 말이야. 실제로는 대통령이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되레 이재명이라는 정치인한테 덤테기를 씌우는 거야” “감방이 뭐야?” “감방은 죄를 뉘우치라고 나쁜 사람들을 가두는 교도소야. 옛날에는 형무소라고 했어” 대화는 여기에서 끊어졌지만, 기분은 참으로 더럽더군요.
우리가 보기엔 내란죄가 명백한 팩트인데도,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여당의 작태가 한심스럽기만 한데, 다른 편(러프하게 국민의 10%라고 합시다)에서는 ‘반대 생각’을 하고 있는 것같아 가슴이 한없이 답답합니다. 90대 10의 싸움은 과연 누가 이길까요? 아니, 이것이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풀 이슈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내란 실패 한 달이 지났는데실패가 풀리지 않고 더욱 꼬이기만 하는 것같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손자를 데리고 아내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고흐전>을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잘 아시죠? 정신착란에 시달리다 제 귀를 자르고, 마침내 37살 나이에 권총자살한 천재화가. 생전에 화가로서 단 한번도 제대로 명함을 내밀지 못했던 불운한, 하지만 사후 불멸의 화가가 된 거장입니다. 죽기 1년 전에 작품 <붉은 포도밭> 딱 1점이 팔렸다지요. 포스터에 ‘불멸의 화가’라 쓰여 있어 손자에게 불멸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망설이지도 않고 “사라지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해 깜짝 놀랐습니다. 영어로 쓰여진 "A Great Passion”의 뜻은 모르겠다해 “위대한 열정”이라고 말해주니, Passion을 의상을 뜻하는 fashion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초교 2학년 주제에 지난해 바레인에서 국제학교 1년 다닌 것이 영어를 낯설어하지 않게 했으니, 어학은 확실히 어릴 적 가르쳐야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7살 때 <고흐 위인전>을 다 읽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흐의 대표작들이 어느 미술관에 있는지 지도를 혼자 그렸더군요. 그때 놀라서 ‘얘가 화가가 되려나 보다’는 생각으로 헌책방을 수소문해 생각의나무에서 펴낸 <고흐 그림책>을 어렵게 구해 선물을 했지요. 녀석이 데생 등 76점을 훑어보고는 “그 유명한 <해바라기> 작품은 왜 없냐?”며 시큰둥한 게 제법 기특하더군요. 작년에는 유럽에서 고흐의 실제 작품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어쨌든, 제 부모의 생각은 모르지만, 나중에 화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이 녀석 답변이 자못 현실적입니다. “유명해지지 않으면 돈을 못벌잖아”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 참.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하는 수 없어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Art is long, Life is short”는 잠언을 들려줄 수 밖에 없었지요. 하하.
지난 연말 그림학원에서 크리스마스 관련 그림을 그리게 했나봐요. 그림의 소재를 스스로 찾은 게 영국 런던의 빅벤과 런던아이 그리고 도심의 우체통이었답니다. 학원에서 3주에 걸쳐 완성한 그림을 들고 오는데, 내가 그림을 모르지만 너무나 잘 그린 것같아 탄복을 했습니다. 그런데, 학원 원장님은 크게 칭찬한 것같지 않다 합니다. 전문가이니까 보는 눈이 아무래도 우리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겠지요. 어쨌든 어릴 적 그림전시회 같은 곳은 많이 데리고 다녀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견문을 많이 넓히면 그림을 그리거나 학습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무튼 왔다갔다하면서 조손간에 소통이 되는 시간을 가져 좋았습니다.
그런데, 할래비나 할머니가 요즘 나이의 손자를 보살피기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유튜브나 핸드폰 게임에 몰입하려는 손자를 가로막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제 자식이므로 혼낼 때는 크게 혼낼 수도 있지만, 조부모는 보기만 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같은 예쁜 손자를 차마 혼낼 수가 없습니다. 갖은 감언이설로 꼬셔 산책을 시켜보고, 도서관을 가자고 사정사정해 잠깐 다녀오기도 하지만, 30분만 게임을 하게 해달라는데 거절하기가 참으로 어렵지 않겠어요. 이래저래 난맥상은 계속됩니다. 더구나 이제 겨울방학을 두 달간이나 한다니 한숨이 나옵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할애비와 할머니에게 떼를 쓰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도 단단히 박아놓으라고 부탁을 해야 할 판입니다. 결코 즐거운 비명이 아님을 아시겠지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