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마저 임자가 없는 섬, 임자도
임자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에 속한 섬으로 인구는 1,693가구, 3,436명(2013년 기준)이다. 목포와의 거리는 45km로
신안군의 서북단에 위치하며, 재원도 부남도 갈도 등의 부속도서가 있다. 임자도는 전체 면적의 절반가량이
네덜란드처럼 해수면 아래에 있었지만 섬 주민들이 바작에 돌을 지고와 섬과 섬 사이 바다에 둑을 쌓아 만들어진 섬이다.
150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흩어져 있던 6개 섬이 하나로 합쳐졌다.
조상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자연과 싸워 새로운 땅을 만들어 오늘날 풍요로운 임자도를 건설하였다.
광주로부터 90km, 목포와의 거리는 66.6km. 지도읍 점암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채 20분도 안 되어 임자도
진리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당일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섬이 되었다.
임자도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지도이다.
무안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신안군 지도는 1975년 2월 무안군 해제면과 연륙됨으로써
육지와 다름없는 곳이 되었다.
지도점암과 임자도를 연결하는 여객선
지도읍 점암선착장에서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하루 14회 배편을 운항한다
본래 임자도에 있는 대둔산(280m), 삼학산(164m), 불갑산(224m), 조무산, 괘길도 등의 산이 섬처럼 해수면 위에 떠 있다.
현재의 임자도의 전체 면적의 절반 정도가 당시에는 네덜란드처럼 해수면 밑에 있었던 것이다.
깨알같이 분산돼 있는 여러 곳을 매립과 간척으로 만들어낸 섬인 것이다. 신안군 대부분의 섬이 이러한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면적을 넓힌 것은 국토개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대둔산에서 바라본 임자도 간척지
임자도의 시골마을풍경들
임자도 염전 천일염
1950~60년대 임자도를 대표하던 천일염은 청정해역의 미네랄을 품고 재래방식으로 생산되고 있어,
지금까지도 대표 주산물이다. 임자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의 생산시기는 4월에서 10월까지이지만
장마가 들기 전인 5~6월까지 전체의 60% 정도가 생산된다.이 중에서도 강한 햇살을 받아 응결된
6월 소금을 최고로 친다.
임자도 전장포구
임자도는 신안군에서 자은도 다음으로 큰 섬이며 300여 년 전부터 임자도 하우리와 대태이도(타리섬)에서는 부서파시가 열렸으며
전장포 새우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제일 유명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새우파시로 흥청거릴 만큼 이름을 날렸던 임자 전장포.
옛 명성 못지않게 음력 오뉴월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포구에 새우잡이 배들로 가득하고 모래처럼 희고 고운 백화새우(둥근돗대기새우)가 지천인 때이다.임자도는 민어와 병어의
주산지로, 산란철인 5~6월부터 잡히며 맛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임자도의 귀한생선 민어
봄철이면 열리는 임자도 튤립축제
국내에서 가장긴 대광해수욕장
임자도는 모래섬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모래해변.
삐죽 튀어나온 해안선을 돌면 다시 아득한 백사장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서북쪽의 대광해수욕장이다.
이름 그대로 광대하다. 자그만치 12㎞인 해수욕장의 백사장,섬의 북서쪽 대기리와 광산리를 잇는 대광해수욕장은 걷는데만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피서철 하루 평균 이곳을 찾는 이가 3,000명을 헤아리지만 이들을 해수욕장에 풀어놓으면 티도 안날 정도이다.
해수욕장 폭 250m. 경사가 완만해 물놀이를 즐기기에 적격이다.
해수욕장도 독특하다. 모래밭 한가운데 개펄지대가 따로 있다. 썰물때 폭 300m의 모래밭과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바닷가에서 개펄밭으로 나아가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뒹굴다 이내 바닷물에 ‘첨벙’ 뛰어든다.해맑은 웃음이 해변에 왁자하다.
사실 임자도는 모래로 유명한 곳.“임자도 처녀는 모래 서말을 마셔야 시집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래가 많았다.
대광해수욕장 바로 뒤쪽엔 이 곳 사람들이 모래치·물치라고 부르는 오아시스가 있다.이 섬 전체 16개 가운데 하나.모래가 머금은 수분이 모이고 모여 소(沼)를 이루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또한 넓은 백사장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 또한 서정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중국으로 가는 길목 신안 임자도에 딸린 재원도
목포에서 북서쪽으로 45㎞, 면소재지인 임자도에서 서쪽으로 1.1㎞ 해상에 자리잡고 있는
재원도는
비금도, 자은도 등과 함께 서남해의 큰 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에 뱃길로는 매우 중요한
섬이다.
재원도는 넓이 5㎢, 해안선 길이 11㎞의 작은 섬이다. 이런 조그마한 섬에도 무려 200명 안팎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며 살고 있지만
외지인들이 찾지 않는 고적한 섬이기도 하다.
재원도는 서쪽으로 트인 만 주변부와 동쪽 해안 저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다.
남·북쪽에는 산괴(山塊)가 있고, 중앙부의 동·서쪽에 해안 저지대가 있어
동쪽해안에 재원리, 서쪽해안에 예미마을이 들어섰다.
농사라 해야 마을 뒷산을 개간하고 사람이 살다 떠난 집터를 일궈 고추, 상추 등
밭농사를 짓는 것이 전부다.
예전에는 높은 구릉지까지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모두 묵히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이
어업에 종사한다.
재원도는 신안군 지도읍 점암에서 배를 타고
임자도를 거쳐 1시간여 걸려 도착하는 작은 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임자면에 속하지만, 임자면 진리 선착장에서도 뱃길로 40여 분이나
걸린다.
재원도를 연결하는 섬사랑호
재원도 앞의 무동력선 멍텅구리선
재원도 마을 풍경
재원도는 옛날부터 중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섬이다.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중국 상해가 나온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러 가기 위해서는 길목인 이 섬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섬 앞바다의 풍랑이 심해 항해가
어려운 동절기에는 날씨가 풀리는 3~4월에
수송하기 위해 이곳에다 양곡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그래서 섬이름을 재원도(財源島)라 불렀다.
임자도 본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여 재원도(在遠島)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사람의 입도시기는 약 270여 년 전, 여량 진씨가 처음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온다.
여느 섬이나 마찬가지이듯 재원도 역시 농사 지을 땅이 없는 곳이다.
일제시대에는 범선 안강망 배가 있었지만,
이곳의 바다가 워낙 험하고 물살이 거세어 어획에 실패한 후부터 어선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쌀밥과 고기국은 명절과 제사때에만 구경하고 보리밥과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던 가난한 섬마을이었다.
그래도 섬사람들이 이렇듯 가난한 섬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미역과 톳, 우뭇가사리, 뜸부기, 전복 등 자연에서 얻는 혜택 때문이었다.
해안에 정박하고 있는 고깃배에 찾아가서
뱃사람들에게 생필품인 나무와 물, 김치, 술 등을 팔거나 생선과 물물교환을 하면서 살아왔다.
낙후된 재원도 주민들이 고기잡는 기술을 익히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파시(波市)가 사라질 무렵이었다.
젊은이들이 타지역의 고기잡는 배를 타면서 어획기술을 익힌 덕이었다.
1977년 경에 진성인, 강대율, 함택산 세 사람이 낭장망으로 어장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마을 풍경들
첫댓글 저 섬에 발 닿으면 누구나 임자가 되는 섬 ...
노랫가락 처럼 은은하고 정서적인 풍이 흐르지 않나요 ....언젠가 가봐야겠네요
제고향이 전남인데 제일 안가본 곳이 또한 제 고장 전남....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