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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용 시집 『박물관에서 깨닫다』 해설 (2021. 다시올문학)
시와 경제, 다른 결을 감각하다
마경덕 (시인)
부레가 없어 평생 빠르게 헤엄을 친다는 ‘참치’는 바다를 누비는 활동량만큼 산소가 필요해 1초도 멈출 수가 없다. 숨을 쉬기 위한 몸짓이 치열하다. 이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멀리 달아나거나 호흡이 끊어지는 詩, 물고기 떼가 수면으로 떠올라 헤엄을 칠 때 바다가 끓듯이 시 쓰기도 인식에 파동을 일으키는 보일링(Boiling)이 필요하다.
김훈 소설가는 소설 ‘칼의 노래’에서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어서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라고 했다. 새로운 적을 만나 싸울 때 그동안의 “전적(戰績)은 무효”이며 낯선 상대와 개별적으로 겨루는 싸움은 “서로가 처음”이며 각자의 ‘몫’이다.
시 쓰기 역시 새로운 대상을 만나 매번 홀로 치르는 “첫 번째 싸움”이다. 본질이 각각인 대상 앞에 이미 사용한 언어나 생각은 무의미하다.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잠입해 대척점에 있는 언어마저 지면으로 불러내는 치열한 싸움이다.
심문섭 조각가는 “소재가 결정될 때마다 이미 작품은 완성된 것과 같다. 내게 중요한 것은 소재와 관계하는 것과 관계하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좋은 원단(原緞)이 좋은 옷을 만들 듯이 어떤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글감이 좋은 시를 만든다. 먼저 소재를 둘러싼 것들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의도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서영용 시인이 선택한 시의 소재는 어떤 것일까. 첫 시집에 담긴 시인의 탐구는 ‘경제’라는 독특한 감각으로 채집되었다. 경제학을 전공한 시인은 ‘실생활’과 ‘경제’를 엮어 시를 짓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경제”와 “비현실적인 시”가 만나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상반(相反)된 각각의 결, 이질적인 요소의 조합(組合)을 놓고 고심한 흔적이 있다.
시인은 수시로 ‘경제 문제’를 놓고 답을 궁리한다. 필요한 것을 어떤 방법으로 구하고 얻은 것을 어디에 어떻게 쓸까? 현명한 선택을 위해 질문을 확인한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나선 시골 오일장에서부터 시작된 경제관념은 합리적인 경제 활동의 밑절미가 되었다. 시인은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로 국제금융시장의 동향과 기후변화에 따른 물가, 정치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 나름의 경제관을 펼치며 시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서영용 시인이 주목하는 또 하나는 ‘고대 문화’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국보나 보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남다르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시대에 합류해 사라진 시간을 어루만지며 이 시대와 “다른 결”을 감각한다. 선대가 남긴 유물(遺物)을 통해 한국 역사와 당대의 생활풍습, 역사적 배경, 문화적 특징을 알아가는 일도 일상의 즐거움이다. 경제가 공동생활을 위한 물적 기초라면 문화재는 삶의 질을 높이는 정신적 기초이기에 한 집단이 소유한 ‘물질문화’에는 ‘정신문화’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질과 정신,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시인은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FM 음악을 듣는데 경제 뉴스가 나온다
물가를 감안하면 마이너스 금리 시대
외환위기 전에는 매월 금리로 노테크를 했다
저금리로 패러다임이 변하니 저마다
상가 임대소득 소형아파트 월세소득으로
재테크 준비에 모두들 혈안이다
재테크를 하지만 막막하기는 매한가지
펀드도 불안해서 은행에 다니는 조카한테
묻고 또 물어본다
적립식으로 3년 정도 보며 하세요
푼돈으로 은행에 적금을 들었지만
이자가 너무나 적다
저축에 대한 혼란이 온다
초등학교 때 6년 동안
적금통장을 의무적으로 가입을 시키고
선생님은 저축습관을 배우라고 하셨다
저축을 하면 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를 하고 국민소득이 는다고 가르쳤다
대학 시절 과소비는 사회악이라고
언론은 이야기했다
경제학과를 다니며
케인즈의 소비는 미덕, 저축은 악덕이란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환위기 세계금융위기 때
경제정책은 소비심리 저하를 부추겨
총수요를 살려 불황을 극복했다
저축은 영원한 미덕 마이너스 금리 시대
은행에 푼돈 모아 종잣돈을 마련하련다
오피스 상가를 산책하며 장사가 잘되는지
상가 임대소득을 받는 재테크 나의 꿈이다
― 「저축에 대한 고찰」 전문
영화의 끝부분에 영화에 참여한 이름이 자막으로 나열되는 ‘엔딩 크레딧’은 신용 거래를 뜻하는 credit을 쓴다. 제작자가 영화를 ‘보장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고가로 팔리는 유명브랜드에는 “믿음이라는 이미지 값”이 포함되어 있듯이 시 한 편에도 작가의 이름이 붙는다. 이름은 그 작품을 보증하는 신용 크래딧인 셈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자본과 신용은 인류 진보의 동력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급속히 발전한 신용 사회, 신용카드의 편리한 시스템에 소비 패턴이 바뀌고 과소비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했다. ‘변제능력’이 없어 신용불량자도 늘었다. 카드가 없던 시절에는 가게마다 ‘외상장부’가 있었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 라는 속담의 속뜻을 곰곰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외상을 갚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40만 명의 기초생활보호대상자와 약 30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있다고 한다. “절대적 빈곤‘은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기에 어릴 적부터 건강한 경제관의 확립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정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의무적으로 개인의 적금통장을 만들게 하고 저축을 장려했다. 저축에 길들여진 시인에게 저축에 대한 혼란이 온 것은 대학시절이다. “경제학과를 다니며/케인즈의 소비는 미덕, 저축은 악덕이란/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외환위기 세계금융위기 때/경제정책은 소비심리 저하를 부추겨/총수요를 살려 불황을 극복했다”라고 한다. 언제부턴가 “소비가 미덕”이 되어버린 것이다. 불황에 빠진 경기가 살아나려면 소비자가 필요하다. 그 소비로 인해 위축된 생산이 늘고 실업은 줄어들어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서영용 시인은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도 저축은 영원한 미덕이기에 위험한 투자를 피해 안전한 은행에 푼돈으로 종잣돈을 마련한다. 한때 유명 아나운서가 출간한 “나는 나를 경영한다”라는 책이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나름의 확고한 경제관으로 재테크의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서영용 시인도 자산을 관리하며 스스로 “자신을 경영”하고 있다.
매경ECONOMY 기사를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인다
어느 나라나 경기가 침체하면 건설경기를 이용한다
신속히 내수 경기를 부양시켜 고용을 늘릴 수 있기 때문
연관 효과에 대해 알고 싶었다
경제신문과 낯선 용어가 나오는 부동산 재테크 책을
수없이 읽었다
어제는 경제학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내 경제를 부양시키는 연관 효과를 생각했다
지난달, 모피코트를 선물 받은 누나
모피와 걸맞은 핸드백을 샀다
백과 어울리는 구두는 카드로 긁었다
경기 부양은커녕
누나의 경제는 적자였다
경제학과 부동산학은 동전의 양면 같은 시대
두 분야를 연결 짓는 공부를 하면서
감리회사 다니는 형님께 내 공부법을 점검했다
수화기 너머로 네 연관 효과는 연애야 임마
침체된 노총각의 경기는 신붓감이라고…,
― 「연관 효과」 전문
각 산업은 독립적인 것처럼 보여도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상호 의존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주체가 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물이 아래로 떨어지듯 일어나는 현상이 낙수 효과(落水效果)이다. 기업이 물건을 만들고 판매하려면 흐름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대기업과 연관된 중소기업이 덩달아 성장하고 일자리도 많이 창출되어 서민 경제도 호전되지만 이 흐름 안에 묶인 업종 중 한 곳에서 불황이 터지면 다른 곳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극심해진 소득 양극화는 내수 산업의 불황을 초래한다.
“어느 나라나 경기가 침체하면 건설경기를 이용한다/신속히 내수 경기를 부양시켜 고용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서 알 수 있듯이 교량, 항만, 도로, 오락 시설, 주택 건설을 위해 많은 인력과 여러 가지 건축자재가 필요하니 건설은 신속히 내수 경기를 부양시킬 자구책인 셈이다.
지난달, 모피코트를 선물 받은 누나는 걸맞는 핸드백과 어울리는 구두마저 카드로 구입했다. 값비싼 모피코트와 어울리는 격식을 갖추다가 결국 누나의 경제는 적자였다. 이 또한 ‘연관 효과’이다. 밥 한 그릇에도 농부와 기후와 토지와 방앗간과 밥솥과 식기를 제조한 공장과 밥을 지은 사람이 모두 연관되어 있듯이 나와 가족, 이웃, 주변과 사회, 사회와 나라, 나라와 세계는 두루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영용 시인의 ‘연관 효과’는 뜻밖의 것이다. 침체된 노총각의 “연애를 살리는” 것은 신붓감이다. 자신의 처지를 연관 지어 ‘연관 효과’를 재치있게 마무리한 작품이다.
물컵을 사러 그릇 가게를 찾다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그릇 코너 유명브랜드 그릇들
불빛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얀색 바탕에 빨간 장미를 새긴
묵직한 컵 하나에 만오천 원을 지불했다
떨어뜨리면 산산조각이 날 도자기 컵
물을 마시다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좌판에서 천 원짜리 컵을 샀다
값싸고 가벼운 플라스틱 컵
꿀꺽꿀꺽 맹물을 마셨다
물 마시는 횟수가 늘었지만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도무지 물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다이소에서
회색 바탕에 나뭇잎 석장 그려진
도자기 컵을 천오백 원에 샀다
적당한 중량감이 좋았다
떨어뜨려도 별로 아까울 것 없는
나의 한계효용은 천오백 원짜리
도자기 컵,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게에 물맛이 살아났다
― 「나의 한계효용이론」 전문
어떤 컵이 좋은 컵일까.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처럼 가볍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컵을 들었을 때 손이 먼저 느끼는 맛이 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와 맛을 살리는 재질로 만든 컵이 안성맞춤이다. 물맛을 살리는 ‘유리컵’이나 ‘도자기 컵’은 깨질 수 있으니 깨지더라도 그다지 아깝지 않은 “적당한 가격”의 컵이 가장 좋을 것이다. 소비자는 비슷한 품질이라면 ‘가성비’를 먼저 생각한다. 가격은 싸면서도 만족도는 높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경제 재화의 가치는 “그것을 쓰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정도에 따라 결정되며, 인간의 절실한 욕망을 채우고 나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고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앵거스 디턴은 돈의 ‘한계효용’에 대해 “돈이 없는 상태에서는 적은 돈이라도 행복감을 느끼지만 소득이 일정 이상 높아져 돈이 넉넉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였다. 모자람이 주는 행복을, 넘칠 때는 느끼지 못한다니 가난한 사람들이 그 가난으로 인해 다 불행하지 않고 부자인 사람들이 넘치는 재물로 다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스트리아의 멩거(C. Menger)는 경제 현상을 심리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 주관적 가치설로 가치 형성 과정을 설명하였다. 교환경제사회의 합리성의 기초를 개인의 주관적 가치개념을 통해 구축한 점이 흥미롭다.
시인은 백화점에서 만오천 원을 지불하고 예쁜 ‘도자기 컵’을 구입했지만 바닥에 떨어뜨려 깨지고 말았다. 가성비에 비해 별 효용이 없었다. 두 번째 컵은 좌판에서 구입한 저렴한 천 원짜리 ‘플라스틱 컵’이었지만 도무지 물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세 번째는 다이소에서 천오백 원에 구입한 떨어뜨려도 아까울 것 없는 ‘도자기 컵’이다. 시인은 부담 없는 가격과 도자기의 적당한 중량감에 물맛이 살아났다고 한다. 이것이 시인만의 ‘한계효용이론’이다. 「나의 한계효용이론」 은 경제용어를 실생활에 대입해서 자신에게 알맞은 “행복의 중량”을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는 어릴 적 생일날만큼은
보리가 섞이지 않은 흰 쌀밥을 해주셨다
어제는 그 귀한 쌀밥이 밥솥에 가득한
그 쌀밥이 싫증나서 밥 대신 수박을 먹었다
쌀통에 쌀이 떨어지면
세상에 홀로 남은 것처럼 울적해서
퇴근길에 간척지 당진 쌀을 어깨에 메고 왔다
아파트단지 슈퍼에서 파는 쌀보다
6천 원을 더 싸게 샀다
넘치는 쌀, 부족한 밀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2005년 묵은쌀을 가축 사료용으로
전환한다는 정부 발표에 국민 정서상 안 된다며
쌀값이 떨어진다는 등, 다행한 결정이라는 등
북한에 쌀 지원하면 해결된다는 등
밀가루 제품에 쌀가루를 10%씩 섞어 쓰자는 등
여러 입과 말들이 충돌을 한다
쌀 대북지원이 끊기고 국민 일인당
쌀 소비가 감소한 게 원인이지만
전 세계가 이상기온으로 곡물작황이 나빠
애그플레이션*이 온다고 한다
어둠이 내리는 한강 너머 행주산성을 바라본다
먹고 사는 일이 전쟁이다 보니 어머니가 차려 주던
그 보리밥이 그립다
천대받던 보리가 지금은 쌀보다 귀하다
― 「쌀」 전문
너나없이 가난한 시절엔 보리밥이 주식(主食)이었다. 특별한 날에만 먹어보던 쌀밥, 어머니가 생일날 차려 준 흰쌀밥에는 따뜻하고 애틋한 기억이 담겨있다. 시인에게 쌀은 ‘밥’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쌀통에 쌀이 떨어지면/세상에 홀로 남은 것처럼 울적해서/퇴근길에 간척지 당진 쌀을 어깨에 메고 왔다/아파트단지 슈퍼에서 파는 쌀보다/6천 원을 더 싸게 샀다”고 한다.
홀로 남은 것처럼 울적해지는 것, 그것은 타향에서 느끼는 “그리움이라는 허기”이다. 그 허기 속엔 어머니의 부재와 그리운 유년의 시간이 들어있다. 쌀이 떨어지면 몰려오는 헛헛함, 알 수 없는 그 허기로 인해 시인은 퇴근길에 쌀을 구입해 어깨에 메고 집으로 온다.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하고 “배고픈 설움이 가장 크다”고 하니 의식주에서 식생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예전에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광에 연탄을 쌓아놓고 김장독 그득히 김장김치를 채워 겨울 채비를 했다. 쌀통까지 채우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며 한시름 놓았다고 했다. 이 모두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였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품종이 개량되고 농사짓는 기술도 늘고 대체할 식품들이 많으니 지금은 ‘쌀’이 흔하다. 천대받던 보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대접을 받고 ‘쌀’은 해마다 남아돌아 처치 곤란이다. 먹다 남긴 음식은 그냥 버려지고 과잉 섭취로 인해 비만 인구도 늘고 질병도 늘어났다. 묵은쌀을 가축 사료용으로 전환한다는 정부 발표에 여러 입과 말들이 충돌한다. 북한의 식량 사정도 심각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 산림파괴로 인한 사막화,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굶어 죽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농산물의 수요와 공급의 변화로 발생하는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곡물 가격이 상승하는 영향으로 일반 물가도 덩달아 상승하는 현상이다. 농촌의 노령화, 인구의 증가, 경작지 감소, 곡물의 대체 에너지화가 농산물 수급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세계 인구의 증가는 식품의 수요의 증가로 인해 갈수록 식품 가격은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구의 증가보다 더 두려운 것은 “기후의 변화”이다. 장마가 오래 지속되거나 가뭄이 계속되면 곡물은 물론 야챗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해도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기후가 농사에 미치는 영향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펜데믹으로 전세계의 경제가 불황으로 치닫는 시대, 시인은 지금도 “먹고 사는 일”이 전쟁이라고 한다. 제한된 사회 체계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에서 불편한 현실과 마주치는 현대인들은 외부 환경에 육체적, 정신적 피로까지 누적된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점심으로 주꾸미를 먹는다
난로 테두리에서 매콤하게 조리해
깻잎에 싸 먹는 계란말이도 특이하다
벽에 붙은 외상 사절 안주 일체
설치물 전봇대 외등 나무문과 창살
반공 문구나 포스터 초등학교 시절
휘갈긴 글씨가 감성을 자극 시킨다
여주인 왈
“70년대 방식이에요
중후한 50대 손님들이 찾아들고요
가족 단위로 많이 와서 감성을 먹고 가곤해요
대체로 젊은 사람들은 적어요”
나이 든 사람은 추억을 먹고 가고
젊은 사람은 부모님 세대의 낯선 호기심을
눈치로 쇼핑하듯 먹는다
복고풍 테마가 돈이 되는 감성포차
복고풍 감성조차 포장당하는
치열한 마케팅전략도 한몫한다
― 「복고풍 감성포차」 전문
아이디어 시대에 맞춰 “불편을 소재”로 기발한 접시가 태어났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도록 디자인된 ‘밸런스 플레이트’라는 접시는 기울어진 부분을 스마트폰으로 받치게 되어 있어 식사를 하는 동안 통화나 문자를 차단하고 오롯이 “음식의 맛”에만 집중하도록 돕는다. 특정한 음식을 광고하기 위한 전략으로 태어난 접시, 누군가의 “상투성을 파괴한” 상상력이 현실로 나타났다.
『나는 투자금 없이 아이디어만으로 돈을 번다!』 의 저자 최규철 대표는 “무자본 창업의 핵심은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것이며 개인의 창의력을 기반으로 특허 없이, 자본금 없이 아이디어를 기업에 팔아 매출을 만든다”고 한다.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의 가치로 인해 회사 설립과 사업 운영에 소요되는 자금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디어’가 돈이 되는 시대, 소비자를 겨냥할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은 장기적이며 전개 방법이 혁신적이어서 전술보다는 한 수 위다. 소비자에게 기억되려면 자신만의 “특별한 이미지”를 쌓아야 한다. 손님에게 이미지를 파는 「복고풍 감성포차」 는 “사라진 감성”을 재현해서 상품으로 내놓은 마케팅 전략이다. 구시대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벽에 붙은 외상사절, 안주 일체, 초등학생이 쓴 듯한 서툰 글씨, 나무문과 창살, 반공 문구나 포스터 전봇대 등을 보면서 손님은 타임머신을 타고 6~70년대로 돌아간다.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감성팔이’라는 말도 있다. 감성이 메마른 시대에 감성은 ‘상품’으로 등장했다. 빛이 바랜 복고풍 “추억을 판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흘러가 버린 시대의 감성은 매출과 연결되고 있다.
추석 전날 방화대교 밑에 쪼그려 앉아
한강을 바라보니 물끄러미가 된 것 같은
강태공이 추석의 보름달을 낚는다
강 건너편 행주산성의 산 그림자
어둠을 붙들고 행주대첩비는 불빛을 받으며
대들보처럼 버티고 서서 도시를 가로지르는
한강의 기적을 지켜본다
1997년 여름, 문학에 흠뻑 빠졌다
나주 남산에 올라 김천일 동상에서
시어를 낚던 시절을 떠올리니
가슴이 에인다
김천일 장군은 행주산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고향 선조이다
강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애무하자
경제사 공부의 한 토막이 불쑥 뛰쳐나오는 것은
내년 G 20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에
설익은 감성 감개무량하여 행주대첩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게 하는 우두커니가 됐다
경제가 얼고 마음마저 컴컴한 밤
이념이 사라진 지구촌의 경제 파고
행주대첩비를 돛대처럼 보이게 한다
이제, G 20 영원하여라!
차례상에 걸린 달이 접시 물처럼
검소하게 떠 있다
― 「나에 대한 사소한 기록」 전문
“행주대첩비에 걸린 달”이 부제로 붙은 작품이다. 경제가 얼고 마음마저 컴컴한 밤, 이념이 사라진 지구촌에 밀어닥친 ‘경제 파고’를 염려하며 시인은 저녁 강 너머 ‘행주대첩비’에 주목한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 대첩’이 있었던 행주산성에는 승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행주대첩비’가 있다. 강 너머에 있는 행주산성은 시인이 닿고 싶어 하지만 넘을 수 없는 대상이 존재한다. 그곳엔 꿈이 있고 암울한 시대를 헤쳐나갈 ‘돛대’가 있다.
추석 전날 방화대교 밑에 쪼그려 앉아 물끄러미 강 건너 행주산성 ‘행주대첩비’를 바라보며 시인은 회상에 잠긴다. 그때 감성의 버튼이 작동되고 오랫동안 은폐된 기억이 재생된다. 1997년 문학에 흠뻑 빠져 “시어를 낚던 기억”에 가슴이 에인다. 시에 빠져 지낸 시간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추석 전날 홀로 달을 지켜보는 외로운 시인에게 시는 무엇이었을까.
「나에 대한 사소한 기록」을 읽으며 문득, 김훈 소설가의 “배는 살아있는 생선과 같다. 생선의 몸이 물을 읽듯이 배는 물을 읽고, 물을 받아내면서 나아간다. 물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라는 소설 한 대목이 생각났다. 서영용 시인에게는 마치 시는 “밀물 때면 들이닥치는 파도”와 같았을 것이다. 고기를 잡듯이 “시를 지으며 시를 붙잡고” 파도가 밀어주는 대로 물길을 따라 이곳까지 흘러오지 않았을까. 외롭고 쓸쓸한 길이었지만 시인은 오랜 시간 시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부드러운 강바람에 그동안 익힌 경제사 한 토막이 불쑥 뛰쳐나오고”에서 알 수 있듯이 「나에 대한 사소한 기록」 은 시인에게 “역사와 경제와 문학”이 삶을 차지한 “주 관심사”인 것을 말해준다. 어느 날 밤의 사소한 “삶의 한 부분”만으로 독자는 그동안 시인이 “걸어온 길”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관념이 투철하고 평소 검소한 생활 습관을 가진 시인에게는 보름달마저도 검소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원
종각 주위 느티나무는 갈색 잎으로 변하고
참새 울음이 가지마다 열려있다
아침햇살에 검은 몸체를 드러내는 보신각종
조선 시대 도성문 여닫으며 시각 알리던 보물 2호
종로에서 늙은 몸, 박물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흑백 TV 시절
새해 복을 빌며 자정까지
타종 모습을 지켜보던 유년의 추억
송구영신 알리던 소리의 삶은
주관성 객관성 필연성 우연성이
어우러지는 것
쇠붙이도 오래 쓰면 금이 가는지
소리를 잃은 종이 벙어리로 살고 있고
새로 태어난 징징 소리 울음이 되어
타원을 그리며 주변을 감아 돈다
― 「보신각종」 전문
보신각 종소리에 오백 년이 넘도록 “서울의 문”이 닫히고 열렸다. 종로에서 늙은 ‘보신각종’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되어 벙어리로 살고 있지만 임진왜란과 6. 25 전쟁을 목격한 증인이며 명실공히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1985년까지 종로 보신각에 걸려 제야(除夜)를 알리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종 치는 모습이 TV와 라디오로 중계되고 마지막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는 인파로 서울 종로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청자와 청취자도 타종 소리에 맞춰 카운트다운을 함께 세며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했다. 역사의 변천과 흥망의 자취가 기록된 대표적인 조선 초기의 보신각종은 흑백시절의 그리운 한때에 앞서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사회 집단과 공동체의 건강지표는 구성하는 전체가 낱개로 존재하는 개인인가, 아니면 개개의 특성이 그대로 보존된 전체인가”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제야의 종소리로 하나가 되지 않았던가.
보신각 종소리를 듣고 자란 시인은 목소리를 잃어버린 보신각종을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개인의 서사가 외연으로 확장되고 「보신각종」 은 지나간 시대와 현재, 미래까지 관계를 이어주고 있다. 늙고 늙어 벙어리가 되어버린 종,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민족의 형언할 수 없는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다.
“결이 다른 시와 경제”가 어우러진 시집, 뒷 배경에 박물관이 서 있다. 독특한 조합이지만 능청스럽게 “시와 경제”가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 하나가 되곤 한다. 시인이 활력을 얻는 곳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하는 가파른 도시의 “층계참” 같은 곳이어서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길 때 가슴을 관통하는 ‘떨림’은 어떤 실체를 드러내는 시적 이미지로 변용된다.
어느 작가는 세상에 던지는 질문을 “규정을 흩트리려는 몸부림”이라 했고 “일상과 예술의 간극, 그 사이를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서영용 시인은 현실과 비현실, “시와 경제”를 매개로 “삶의 간극”을 들여다보며 사유를 확장한다. 시집 『박물관에서 깨닫다 』 는 오랜 시간을 거친 “체험의 기록”이다. 합리적으로 “자신을 경영하는” 시인은 각 문장에 역할을 부여하고 제시된 맥락이 하나로 이어지도록 “경제적 질서”를 확인한다. 여러 층의 시간을 관통하며 면밀히 쌓아올린 시적세계는 여느 시와 구별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 서영용 시인
나주출생, 세종대 경제학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 농학과 졸업,
1999년《한국시》수필 당선, 2010년《다시올문학》시 당선, 2019년《다시올문학》수필 당선,
시집『박물관에서 깨닫다』
강남 문인협회 회원, 다시올문학 전망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