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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재클럽(Y-Club) 원문보기 글쓴이: 카안
조선의 모자, 모자, 모자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몇몇 모자를 보시겠습니다. 서양인들이 남겼던 그림에서 보이는 모자도 보이고, 풍속화에서 보이는 모자도 보이네요.
참고: 국립민속박물관 및 문화재청
김홍도作
위 그림은 조선후기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의 <서화(書畵)보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머리 부분을 신경써서 보면, 모두가 모자를 쓰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 이 그림에서만 유독 모자 쓴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요?
참고:『파란눈에 비친 하얀조선』 백성현 이한우 저
조선은 모자의 왕국이다. 너무도 다양하고 여러 용도를 가진 조선의 모자 패션은 파리인들도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르 바라-
우산용 모자가 지닌 기발한 아이디어는 한국 이외에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비가 내릴 때도 주위를 자유롭게 바라보면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막힌 명품이다.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한국은 가장 독특한 모자 문화를 지닌 나라이다. 모자에 간한 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문을 해 주어도 될 수준이다. 그들에게 모자는 이미 외관의 소품을 넘어서 자신을 나타내 주는 상징물인 것이다. -고종 공식 초상화를 그린 프랑스 화가 드 라네지에르-
한국인들은 대체로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모자만큼은 예외적으로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다. 지위, 계층에 따라 모자의 형태가 상이하며 재질도 서민용인 짚에서부터 양반을 위한 비단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따라서 그들은 모자만 보고도 어떤 사람인지 금방 식별한다. -프랑스 학자 듀크로끄-
한국 모자의 모든 형태를 전부 나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 모자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여 약 4천 종에 달할 것이다. -<극동전쟁> 저자 프랑스인 앙리 갈리-
한국은 모자의 나라이며 모자를 명예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긴다. 집안에 들어갈 때 신발은 벗고 들어가지만 모자만은 꼭 쓰고 들어간다. 모자를 의복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 식사를 할 경우에도 편한 차림을 위해 겉옷은 벗어도 모자만은 쓰고 먹는다. -<조선> 저자 미국인 로웰-
한국인들은 결혼한 이후부터는 모자를 인생의 반려로 생각하며 평생 곁에 두고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저자 프랑스인 장 드 팡즈-
흰 옷은 그들에게 동심처럼 밝은 마음이 깃들게 해 주는 반면에 모자는 주로 검은 색으로, 이것은 변함없는 숭고한 정신을 의미하고 있다. -영국 화가 콘스탄스 테일러-
한국은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모자를 지니고 있는 모자 발명국으로 그들의 민속품은 프랑스인들의 신상품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학자 모리스 꾸랑-
그림으로 남긴 기록에는 기록자의 생각이 강하게 나타나는데요, 조선 말, 처음으로 조선땅을 밟은 외국인들은 가지각색의 모자를 쓰고 다니는 조선을 보고 깜짝 놀라 여러 그림들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 파란눈에 비친 하얀조선
모자에 초점을 맞춰서 보니, 좀 이상할 정도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자를 쓰고 있지요. 당시 모자를 쓴 조선인들을 접한 서양인들이 느꼈을 놀라움이 잘 드러나요.
ⓒ 파란눈에 비친 하얀조선
폭우가 쏟아지네요. 이 사람들이 쓰고 있는 것은 '비막이' 모자 입니다. 당시 조선에는 우산은 없었어도 모자가 이렇게 발달해 있었으니, 서양인들은 조선 사람들의 '비막이'에 대한 놀라움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날이 개면 쉽게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비가 올 때는 다시 꺼내어 머리 위에 펼쳐 쓰도록 고안되어 매우 실용적이었다. 이 방법은 서양보다 훨씬 간편한 것임에 틀림없다.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
ⓒ 파란눈에 비친 하얀조선
위 기록들도 조선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랍니다. 전혀 조선 사람들 같지 않죠? 서양인들이 남긴 그림 기록이다보니, 조선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미숙함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들인 남긴 기록의 초점은 바로 조선의 모자이지요. 지름이 어마어마한 조선의 모자를 본 놀라움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조선의 모자에 대한 놀라운 찬사는 '우리의 모자 문화가 이 정도였나?' 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합니다. 그럼 이번엔 우리가 남긴 기록인 풍속화로 모자를 쓴 조선인들을 만나 볼까요?
***** 풍속화에서 모자를 쓴 조선인들을 만나다 *****
풍속화에는 당시 조선 사람들의 생활 모습, 의복 등이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요. 초상화는 지배층이나 갖을 수 있던 것이었기 때문에 풍속화는 조선의 일반 사람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그럼 모자 쓴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서 풍속화의 인물들을 살펴 볼까요?
풍속화의 대표적 인물 2人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작품으로 모자 쓴 조선인들을 만나보아요.
김홍도가 만난 모자 쓴 사람들
신윤복이 만난 모자 쓴 사람들
양반들
조선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조선땅에 처음 온 서양인들 대다수가 조선 사람들이 쓰고 있는 모자들에 대한 기록과 그 모습을 묘사한 그림까지 남겨 그 놀라움을 표현했죠. '모자의 나라', '모자의 천국' 이라고 기록되었을 만큼.
그런데 조선에는 왜 이렇게 모자문화가 발달해 있었을까요? ☆모자에 대한 조선인들의 생각☆ 참고: KBS 역사스페셜
조선시대에는 아이 상태에서 사회구성원(성인)으로 넘어 가게 될 때 모자를 착용했다고 해요. 즉 모자쓰는 것은 단지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사회적 의미를 띄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성인이 되면 모자를 꼭 착용하게 되는 것이고, 모자가 필수가 되니 그 용도에 맞게 다양한 모자가 발달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모자가 자신의 사회적 의미를 나타내게 되는 만큼 누구나, 아무 모자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겠죠? 남자냐 여자냐, 신분이 어떠하냐에 따라 쓸 수 있는 모자가 달랐어요. 조선에는 모자의 종류가 매우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우리 모자는 외국 문물과 충돌하면서 급격히 사라지게 되고 아쉽게도 오늘날에는 그 풍부했던 모자의 일부만이 전해지고 있어, 우리의 모자 문화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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