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솔직히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게는 양 백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한 마리쯤이야..
한 마리라서 다행스럽기까지 합니다.
나머지 양 아흔아홉의 양들이 있으니, 제가 굶어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또한 저는 압니다.
당신 눈이 보시는 그 길 잃은 양이 저이고
그런 저를 찾아주신 분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아 돌아오실 때까지
산에 남겨진 채 기다려준 이들 그들이 바로 제 형제들임을 압니다.
이다지도 저와는 다른 주님, 거룩하신 이여.
자기로 똘똘 뭉친 저의 완고한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순한 양되어 사랑의 우리 안에 머물게 하시며
당신을 닮아 사랑하는 일이
때로는 기다리고 인내해야하는 고통을 안겨 줄 때라도
그냥 그런 당신처럼 의연하고 한결같게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99마리를 놔두고 잃은 한 마리를 찾아서 길을 떠나다.
바보... 어리석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정말 어리석다.
99마리를 택할 것인가, 한 마리를 택할 것인가...
다수를 선택할 것인가, 소수를 선택할 것인가...
다수는 힘이 있다. 소수는 힘이 약하다.
다수는 목소리가 크다. 소수는 목소리가 없다.
다수는 드러나지만 소수는 가려져 있다.
근데, 백마리의 양중에 한마리 양이 없어졌는지 알아차리는게 쉬울까?
아무나 그것을 쉽게 알아채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안에 가려져 있는 소수를 찾아내는 것도 그 만큼의 '민감함'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연민'이다.
잃어버린 양에 대한 연민...
소수에 대한 연민...
그 '소수'는 우리가 가는 길을 멈추게 하고,
되돌아 서게 만들고,
어떤 때는 내가 가진 것을,
또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해야하는 희생을 요구한다.
잃어 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고 나서 뛸듯이 기뻐했던(rejoice) 그 '바보' 목동처럼,
진정한 기쁨을 가지고 소수와 함께 하기 위해선 '바보'가 되어야 한다.
사랑.... '사랑'만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어 준다.
누구나 소중한 사람
한 생을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을 만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분에 넘치도록 좋은 사람도 있지만 기대와는 다른 사람,
전혀 예기치 않은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골치덩이를 만나서 아파하기도 합니다.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사람이 다 못된 사람은 아닙니다.
그도 누군가의 마음에 들고 사랑받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그런 사람들과 뒤섞여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이 깊고 넓지 않고서는 화병이 나기도 합니다.
마음을 키워서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어야 하겠습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길을 잃은 것이 자신의 부주의 탓이든, 경솔함의 탓이든, 아니면 남의 탓이든 상관없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가 있다면 그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든, 골치덩이든 그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더더욱 하느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어떤 공동체이든 골치덩이는 있게 마련이고
따라서 서로를 소중히 인정해 주는 노력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외면하고 싶은 그 사람은 나에게 더 큰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줍니다.
되찾은 양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기쁨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잃은 양을 찾는 마음이 가득한 곳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때론 내가 바로 길 잃은 양이라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놈 매 한 번 더 때리랬다.”는
옛 말을 기억하며 더 큰 사랑의 요구를 일깨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