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전씨(全氏)
▢전황후(全皇后)
송(宋)나라 도종(度宗)의 후비(后妃)이다. 월주(越州) 회계(會稽) 사람, 이종(理宗)의 어머니 자헌부인(慈憲夫人)의 질손녀이다. 어려서 아버지 소손(昭孫)이 악주의 주지(州知)가 되었을 때 따라갔다가 강호(江湖)로 돌아와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종(理宗)의 어머니로 인하여 입관(入官)하였고, 경종 2년에 황태자비로 책봉되고 함순(咸淳) 3년(1267)에 황후로 책봉되었다.
송(宋)이 망하니 영국공(瀛國公)을 따라 원(元)에 들어갔고, 뒤에 여승이 되어 정지사(正智寺)에서 생을 마쳤다.
▢전종(全琮)
(?ㅡ294) 삼국시에 오군(吳郡) 전당인(錢塘人)으로, (字)는 자황(子璜)이다. 아버지를 따라 오(吳)를 섬겼고 명성이 있었으니, 손권이 비위교위(備威校尉)를 삼았고, 병사 수천을 받아서 산월(山越)을 토벌하게 하였다. 한(漢)나라 헌제(獻帝) 건안 중에 관우가 번(樊)과 양양을 외우니, 종(琮)이 관우를 토벌하는 계획을 올렸다.
손권 황무 초에 위(魏)의 주사(舟師)를 격파하고 수남장군으로 옮기었으며 전당후(錢塘侯)에 봉해졌다. 뒤에 동안군(東安郡) 태수가 되었는데, 산민(山民)이 봉기하니, 종(琮)이 회유하여 항복한 자가 만여 명이다. 관직은 우대사마에 이르고 좌군사(左軍師)가 되었다.
▢전조망(全祖望)
전조망(全祖望, 1705~1755) 자는 소의(紹衣), 호는 사산(謝山)이다. 절강성 은현(鄞縣) 사람, 건륭 원년(1736)에 진사(進士)가 되어 서길사(庶吉士)가 되었고, 영락대전(永樂大典)을 빌려서 읽었으며, 이 책은 당시 얻기 어려운 책이다. 산관(散館)이 된 뒤에 지현(知縣)에 임명하였는데, 취임하지 않았다. 뒤에 광동 단계서원의 강석(講席)으로 있었고, 평생 황종의(黃宗義)를 흠모하였고 학문은 사학(史學)을 잘하였다. 명나라 말의 충렬(忠烈)한 사람과 청나라 초의 학자들의 사적에 대하여 가장 유의(留意)하였다.
저서는 《길기정집(鮚埼亭集)》가 있다. 또한 황종희(黃宗羲)를 이어 보충한 《송원학안(宋元學案)》이 있고, 특별히 《경사문답(經史問答)》•《구여토음(句餘土音)》•《한서지리지계의(漢書地理志稽疑)》가 있고, 아울러 《수경주(水經注)》를 교수(校讎)하고 《곤학기문(困學紀問)》을 편(編)하고 《용상기구시(甬上耆舊詩)》를 수집했다.
[자료제공] 해동번역원 전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