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 (Spartacus) - 1960
원제:Spartacus
감독:스탠리 큐브릭
출연:커크 더글라스, 로렌스 올리비에, 진 시몬스, 찰스 로튼, 토니 커티스, 죤 개빈, 피터 유스티노브
대로마 제국을 뒤 흔든 노예 반란 사건을 다룬 제작비 1200만 달러의 스펙타클 고전 명작이자 초호화 배역진이 펼치는 전쟁 대하물.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과 뜨거운 사랑 등이 서사 영웅담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독특한 주제들의 영화들을 제작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데, 그의 영화와는 다른 다소 상업적인 면이 많아 제작 당시에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큐브릭 감독은 검투사 훈련과 결투 장면의 각본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촬영에 임한다. 하지만 얼마 후 제작자로부터 개작 불가 판정이 떨어지자 그는 실의에 빠진다. 이때, 당시까지의 촬영분량을 본 원작자 하워드 패스트가 주연배우 더글러스에게 어디서 저런 천재를 찾았느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바람에 감독으로서 큐브릭의 권위는 회복되었다. 이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게 첫 상업적 성공과 함께, 이름을 알리게 해 주었지만,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교훈도 함께 주었다. 그는 이 작품을 자기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셸 시몽과의 인터뷰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이렇게 말했다. "난 이 영화를 가능한 사실적으로 만들려 했다. 그래서 스팔타커스가 누구인지에 관해 신뢰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멍청한 시나리오에 반발했다. 만약 용납될 수 있는 한계 안에서만 필요하다면, 감독이란 그저 돈많이 받는 다른 기능공이나 제작자나 다를 바 없다. 내 생애에서 <스팔타커스>가 그 증거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작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제작 통제와 장면 삭제가 결정적이었다. 매카시즘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스팔타커스>의 시나리오 작가 달턴 트럼보(Dalton Trumbo)에 따르면 당시 유니버설 사장 에드워드 뮬은 이 영화가 스펙터클이 아니라 제작비 3-400만달러의 역사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원로원 안의 갈등을 현실 정치에 빗대 표현하는데 관심이 많았고, 결과적으로 <스팔타커스>에 1200만달러나 쏟아부을 줄 몰랐던 것이다.
주연 배우이자 기획자였던 커크 더글라스의 생각은 또 달랐다. 그는 로맨스와 노예 반란이 절반씩 들어간 영웅담을 원했다. 이런 환경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로마 제국을 무너뜨릴 수도 있던 노예 반란군의 역사를 제대로 그릴 수 없었고, 로마군과의 전투 장면이 대폭 줄어들었다. 영화 연구자 던컨 L. 쿠퍼는 <시네아스트>에서 이 영화의 감독판은 스팔타커스의 노예 군대가 승리하는 전쟁 장면들을 새로 찍어 넣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나마 202분 분량의 <스팔타커스> 마지막 시사본은 1975년 유니버설에 의해 폐품 처리됐고 198분 버전이 남아있는 가장 긴 편집본이 됐다.
1960년 당시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184분, 7년 뒤 영화는 161분으로 더 줄었다. 그리고 1991년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복구한 로버트 A.해리스가 컬러와 사운드를 보완한 198분 편집본을 부활시켰다. 해리스의 편집본에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토니 커티스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하는 유명한 장면이 되살아났다. 이 장면은 제작 당시 동성애를 암시한다는 이유로 삭제됐던 것. 올리비에가 "난 굴(여자)과 달팽이(남자) 양쪽 다 즐기지"라고 말하는 이 장면은 그의 사후에 복구된 탓에 앤서니 홉킨스가 목소리 연기를 대신했다. 우여곡절이 많지만 졸작 취급되던 <스팔타커스>는 후대에 새로운 평가를 받았다. 후일 스탠리 큐브릭도 영화사에서 멋대로 편집한 <스팔타커스>에 대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단 나았다"고 말했다.
{로마의 폭정을 타도하고 신사회를 세우게 될 '기독교'라는 새로운 믿음이 탄생되기 바로 전 해까지, 로마 공화국은 문명 세계의 중심지였다. 시인은 "가장 아름다운 제1의 도시요, 모든 신의 고향인 황금 로마여"라 노래했고, 자긍심과 권력에 있어서도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인간 노예라는 병폐로 쓰러지게 될 로마의 전제시대는 곧 다가올 어두운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해, 트레이스라는 점령지에서 한 문맹 노예가 스파타커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반항아인 그는 13세도 되기 전에 리비아 탄광에 팔렸다. 채찍과 쇠사슬의 태양아래서 그는 2천년간의 노예 제도 종식을 꿈꾸며 청춘 시기를 보냈다.}
BC 1년, 리비아 광산의 노예 스팔타커스(커크 더글라스)는 검투사 양성소 주인 바티아투스(피터 유스티노브)의 눈에 띄어 카푸아의 양성소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 목숨을 건 훈련 속에서도 여자 노예 바리니아(진 시몬즈)를 사랑하게 된다.
어느 날 이 곳을 방문한 로마 최고의 권력가 크라서스 일행은 살생 시합을 요구하고, 스팔타커스의 목을 찌르는 대신 일행에게 달려든 드라바는 크라서스(로렌스 올리비에)의 단검에 목숨을 잃는다. 결국 크라서스에게 팔려가는 바리니아를 본 스팔타커스가 포악한 훈련관 마셀러스를 죽이는 것을 계기로 노예들이 봉기, 반란이 시작된다. 스팔타커스를 대장으로 한 그들은 가는 곳마다 노예를 해방시키고 집단은 점점 커져간다. 로마로 끌려가던 도중 바티아투스로부터 도망친 바리니아 또한 스팔타커스와 재회한다.
한편, 원로원 내에서 크라서스와 팽팽히 대치 중인 그라커스(찰스 로튼)는 크라서스의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크라서스의 처남이자 심복인 글라브러스의 부대를 노예군 토벌대로 보내고 대신 자신의 젊은 친구 시저(존 게빈)에게 로마 수비대를 맡긴다. 글라브러스의 군대는 전멸하고 크라서스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원로원은 진압에 성공하면 제1집정관으로서 독재권을 준다는 조건으로 크라서스에게 진압을 의뢰한다.
한편, 크라서스의 노예였던 시인 안토니누스는 스팔타커스의 부대에 합류, 참모를 맡는다. 스팔타커스의 계획은 실레지안 해적의 배를 입수해 노예들을 모두 고향으로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라커스의 주선으로 노예군에게 배를 제공하기로 한 해적들이 크라서스에게 매수되고, 고립된 노예군은 크라서스군과 정면으로 대치, 궤멸당한다. 스팔타커스를 찾지 못한 크라서스는 바리니아와 그녀의 아기를 데리고 온다. 6,000명에 이르는 포로가 로마로 통하는 아피아 길가를 따라 늘어선 십자가에 못박히고, 마지막 안토니누스와 함께 있는 자가 스팔타커스임을 직감한 크라서스는 그 둘에게 사투를 벌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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