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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죽은 시인의 사회(http://cafe.daum.net/engdps
게 시 판 : { 우수-영시 }
번 호 : 604
제 목 : Death- W.B. Yeats
글 쓴 이 : cheezelol
조 회 수 : 382
날 짜 : 2001/08/22 22:02:56
내 용 :
Death
Nor dread nor hope attend
A dying animal;
A man awaits his end
Dreading and hoping all;
Many times he died,
Many times rose again.
A great man in his pride
Confronting murderous men
Casts derision upon
Supersession of breath;
He knows death to the bone-
Man has created death.
William Butler Yeats (1865-1939)
죽음
두려움도 희망도
죽어가는 동물을 동반하지 않으니.
인간은 두려워하고 희망하며
그의 최후를 기다린다.
수번 그는 죽었고,
수번 그는 다시 일어났다.
자부심 속의 한 위대한 인간은
살인자들을 맞닥뜨려,
숨결의 대체 위에*
경멸을 던지니.
그는 뼈저리게 죽음을 아는구나--
인간이 죽음을 창조하였다.
* Casts derision upon/ Supersession of breath; 라는 구절을 '자신의 숨을 대체하여 살인자들에게 경멸을 던진다"(which, to my interpretation, practically means something similar to "마지막 숨을 살인자들에게 경멸의 조소를 보내는데 쓰다")라는 뜻으로 해석했는데 맞는 해석이 될지 궁금합니다.
생각해보면 죽음만큼 심플한 것이 없다. 어찌 생각해보면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보다 더 당연하고 간단한 현상이다. 죽는데 만유인력이 필요한 것인지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에는 존재 이외의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살았으므로 죽는다.간단하고 쉬우며 질문의 여지가 없는 대자연의 원리, 죽음이다.
그런데 인간은 '질문의 여지가 없는' 것들에 끊임없이 질문을 해댄다. 질문을 해대고, 캐내고,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몇천페이지의 이론을 세우고, 그러므로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들고- 하는 것들이 우리 인간의 특기처럼 보일 정도다.(하긴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라지만.) 죽음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낱낱이 열거하기가 내 머리로는 벅찰 정도로 죽음은 어려워 졌다. 어려워지고 심각해졌다. 숭고해졌으며 거룩해졌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불행의 결말이 되었다. 어떤 죽음은 중요한 것으로 분류되고 어떤 죽음은 하찮은 것으로 분류된다. 어찌 보면, 우리는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화' 된 동물의 죽음이 아닌 이상 우리에게 그들의 죽음은 '더이상 호흡이 없는 것' 이라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그 자연원리 그 자체인데. 그 간단한 것이 인간에게 적용되는 순간 돌변한다. 인간이 죽음을 창조하였다는 말은 그래서 참말이다.
한때 나는 이렇게, 수많은 것들을 이렇게 복잡하게 변형시키고 창조해내기 좋아하는 우리 인간들의 경향에 정나미가 떨어지곤 했다. 나에게 그런 경향은 단지 발전, 발전, 발전, 그러므로 자연에의 간섭, 자연으로부터의 멀어짐, 최종적으로는 자연과의 결별 또는 독립- 이런 것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춰졌고 나는 그것들을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던가? 물론 현실적으로 어리석은 소리인건 알았지만 나는 그 아이디어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그런데 얼마전에서야 나는 그 자연으로 돌아가자 라는 소리가 현실적으로 불합리할뿐만 아니라 커다란 모순까지 하나 가지고 있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아주 기초적인 자연현상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자라는 것. 모든 동식물들은 자연적으로 자라고, 더 나아지고, 따라서 더 살기 적합해지게 발전한다. 그러므로 그 모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는 우리인간들의 창조발전 근성 역시도 결국에는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소리는 결국 자연의 섭리, 우리의 본성을 거부하라는 소리이며 "지금 상태로 계속 발전하려 노력하라"는 소리와 결국 똑같게 되는 것이다. 자연이 준 우리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동시에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니! 그럼 우리의 삶 자체가 모순이라는 말 아닌가? 대체 이게 다 뭔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져서 더이상 생각하기를 미루고 있다. 앞으로 살면서 항상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을 생각. 이쯤되면 부처의 삶은 고통스럽다는 진리가 진짜 진리이구나 하고 느껴진다. 윌리엄 예츠도 그것을 알았던 것 같다.
"We only begin to live when we conceive life as trage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