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
성 루이즈 드 마리약은 1591년 8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한 정치가들을 탄생시킨 귀족 드 마리약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푸이시에 있는 수도원에 맡겨져 교육을 받으며 자란 루이즈는 1613년 본래 수도자로 살고 싶어하며 결혼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거절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청원서 심의관 앙투안 드 그라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후에도 영적독서로 영성을 성화시켜 나갔고 부르심을 받고도 부름심을 따르지 않았던 괴로움에 어두운 밤과 같은 영적인 시련을 거쳐야 했다.
1623년 성 니콜라스 성당의 성령 강림절 미사에서 루이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총의 순간을 체험했다.
그날 자신의 모든 이기적인 야심과 인간적인 계획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1624년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만난 루이즈는 1625년 남편 앙트안이 세상을 떠나자, 남은 생애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만 모두 바칠 것을 결심했다.
그후 루이즈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도와 1633년 가난한 이들의 종이라 불리우는 지금의 ’사랑의 딸회’를 창설하였다.
1660년 3월 15일 69세를 일기로 자신과 함께 사도직을 수행했던 자매들과 협력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 그녀는 1934년 3월 11일 성인품에 오르셨고 1960년 2월 16일에는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모든 크리스챤 사회사업가들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홈에서)
그녀의 임종 때, 프랑스 내에는 이미 40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구호소는 수 없이 많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섬기는 이는 곧 그리스도이시니..."
1617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는 샤티옹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애덕부인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어느날, 평소대로 빈첸시오는 미사를 집전하기위해 제의를 입고 있을 때, 한 부인이 외딴 집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처참한 환경에 대해 말하였다.
전 식구가 다 아파 몸져 누워있으나 그들을 돌봐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빈첸시오는 측은함이 넘친 강론을 하여 모든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미사후, 빈첸시오는 그 외딴집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가는도중, 빵과 약품 바구니를 들고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하루에 그 집을 방문하고 그 다음날에는 전혀 방문하는 이들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조직적인 봉사단체가 필요함을 깨달았고,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위하여 애덕부인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이렇게 창설된 애덕부인회는 프랑스 전체로 그 조직이 커 나갔다.
귀족 부인들로 구성된 애덕부인회는 본당이나 마을에 가난하고 병든 환자들을 방문하여 돌보았고, 자선병원 등에서 봉사하였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려는 애덕의 마음은 넘쳤으나, 그들의 대부분이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 활동할 수 없는 이들이 많아, 때때로 그들은 자신들의 하녀들에게 대신 봉사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애덕부인회는 증가했으며 빈첸시오는 루이즈 드 마리약에게 애덕부인회를 맡기며 하느님의 다른 뜻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중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고 싶다는 원의를 품은 한 양치기 소녀가 빈첸시오를 찾았다.
빈첸시오는 말가릿 나조와 같은 지향을 갖고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를 원하는 자매들을 모아 루이즈에게 맡겼다.
1633년 11월 29일. 6명의 처녀들이 성 루이즈 드 마리약에게 맡겨졌으며 이로써 최초의 활동회인 사랑의 딸회를 창설되었다.
그당시, 교회에서는 수녀들이 수녀원 담밖을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므로 실질적인 활동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의 삶에 동참하기를 원했던 빈첸시오는 수도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사랑의 딸회라 이름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는 1655년 파리 대주교에 의해 승인되었으며, 1668년 교황 클레멘스 9세에 의해 로마에서 승인되었다.
성 빈첸시오는 사랑의 딸회 창설 당시부터 1625년에 창설한 빈첸시안 선교회 (라자리스트회)
총장신부에게 사랑의 딸회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였는데, 이는 성 루이즈 드 마리약이 본회의 일치를 보존하기 위해 청한 것이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