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3]새해 벽두, 이런 산문 어때요?
언론인이자 시인이고 작가인 김택근 선배의 신간 『묵언』을 정독했는데도, 글들이 하도 아깝고 맛있어 새로 읽다. 우리같은 촌놈들이 읽으면 마음이 짜안할 산문 <논을 팔다>를 두 번째 읽다가 필사를 했다. 새해 벽두, 한 미치광이의 소행(패악이 더 맞겠다)으로 나라가 심히 어지러운데, 마음이나 가라앉히려 책을 들었건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울울하기가 말로 못할 지경이고 뛰다 죽을 노릇이다.
글쓴이가 도회지 생활 수십 년만에 백살이 다 되는 노모의 전화를 받고 고향을 찾는다. 어머니 명의로 된 마지막 논의 매매절차를 밟고 하루밤 자고온 이야기이다. 논을 사고파는 정경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그 마음들이 어쨌을 것인가?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어째쓰까이. 어쩐지 그립고 서러운 풍경의 연속이어서 내내 마음을 졸였다. 나만 그럴까? 아닐 것이다. 읽는 내내 이청준의 <눈길>이라는 단편이 왜 생각났을까? 참 쓸쓸하고 허허롭고 씁쓸했다. 하여, 한번쯤 읽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전재한다.
---------------------------------------------------------------------------------------------------------
논을 팔다
어머니는 전화에 대고 논 임자가 나타났으니 “가만히 다녀가라”고 했다. 어머니 말대로 ‘가만히’ 논을 팔러 고향에 갔다. 아버지가 물려준 어머니 명의의 논이었다.
기차 역을 빠져나오니 읍내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었다. 노인들만 남아 있는 마을은한 집 건너 빈집이었다. 빈집들은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위가 조용했다. 개도 짖지 않았다. 마을에 또 새 길이 생겼다. 동쪽을 향해 뻗었는데, 길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크고 작은 길들은 마을을 이리저리 토막 냈다. 길이 마을을 칭칭 감아 숨 쉬기가 불편해 보였다. 언덕에 올라 읍내를 내려다봤다. 교회 십자가만큼의 높이로 떠 있는 초승달이 씩씩했다. 하지만 초승달이 할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몇 해 전 문을 연 어린이집은 뜰에 잡초가 무성했다. 아이 울음이 끊긴 농촌에 어린이집을 세운, 미련한 이는 어디로 갔을까.
가게에 들러 소주를 샀다. 텅 빈 고향집 마당에 서서 하늘을 보니 별빛이 슬프다. 어머니의 방은 세상에서 가장 외딴 곳이다. 수천 년 농경사회의 마지막 난민, 우리네 어머니들. 시대의 어디에도 내리지 못하고 점점 밀려나 세상의 한 점에 갇혀 있다.
노모와 소주를 마셨다.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표정도 없었다. 이미 많은 표정들이 얼굴에서 빠져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잠옷이 마땅찮아 어머니 몸뻬를 입었다. 머리 흰 자식, 어머니가 웃었다.
어릴 때, 이맘때쁨이면 우리 집 마당은 그득했다. 볏가리가 하늘을 가렸다. 들녘의 삭풍이 넘어와도 끄떡없었다. 얼마나 든든했던가. 그 포만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윤기가 흐르는 하얀 쌀밥, 그것이 그 살림살이의 윤기였다. 집안이 기울면, 버티다 버티다 최후에 논을 팔았다. 논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아버지들은 자기네 논두렁에서 담배를 태울 때가 가장 느긋했다. 논 없는 사람들은 떠도는 놉에 불과했다. 논에서 모든 것이 나왔다. 그럼에도 아버지들은 서둘러 일제히 세상을 떠났고, 이제 어머니들만 남아 아직도 그 논에 갇혀 있다. 어머니에게 아직도 논은 지아비요, 자식이었다.
아침이 왔다. 약속한 읍사무소에 어머니랑 함께 갔다. 입구에 ‘나락 투쟁’격문이 붙어 있었다. 벼를 논에 가둬서 키운 이래 이처럼 쌀이 애물로 변한 적이 있던가. 읍사무소 안에서 논 사는 사람 내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에 성실하기로 소문난 60대 부부였다. 인사를 나누고 논을 사고파는 데 필요한 서류를 뗐다. 다시 법무사 사무실을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기사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30리 길을 달리면서도 동창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가만히’ 묻고 있었다. 왜 논을 파느냐고. 동창생은 논 사는 사람을 향해 실없이 물었다. “태풍이 안 온 것은 아마 처음이지요?”
법무사 사무실에서도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논 사는 사람 부인이 어머니 손을 꼬옥 잡았다. “어쩐대요. 아이고 어쩌야 쓴대요. 그 논이 어떤 논인디….” 그래도 어머니는 덤덤하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도장을 찍었다. 다시 도장을 드렸더니 혼잣말처럼 얘기한다. “이제는 도장 찍을 일 없을턴디….”
논 사는 사람이 ‘논 산 사람’이 되는 데는 두 시간 남짓 걸렸다. 어머니가 말했다. “논은 참 잘 샀어. 내 논이라 내가 알지만, 그 논은 여태 말썽 한번 안 피웠거든” 논 산 사람이 받아 말했다. “뭐 다 끝났으니 말씀드리는데, 그 논이 다 좋은데 물을 끌어오기가 사납네요.” 이렇게 신경전도 끝이 났다. 어머니의 논은 팔렸다. 나는 돈을 받아 챙겼다.
논 산 사람은 어머니를 읍내에서 제일 큰 식당으로 모셨다. “노인양반인게 이 집에서 제일 좋은 쇠고기로, 제일 연한 놈으로 주시오. 돈은 생각허지 말고 제일 좋은 놈으로 주시오.” 그의 부인이 어머니에게 소주를 권하며 말했다. “참말로 서운허시겄어요. 참말로 어째야 쓴대요” 그러자 어머니가 소주를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여, 시원허고만. 참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