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恒久)는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
항구(恒久)는 만물(萬物)이 그 발용(發用)의 변변화화(變變化化)하는 속에서 그 안정체(安貞體)의 영구존존(永久存存)을 도(圖)함이니,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에 관성(慣性)이 있고, 생물(生物)이 위해(危害)를 방비(防備)하여 수명(壽命)의 영원(永遠)함을 도모(圖謀)하는 것 등(等)이, 모두 항구(恒久)의 정(情)에 의(依)함이오,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항구존속(恒久存續)의 길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하나도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잠시(暫時)도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대지(大地)의 운행속도(運行速度) 같은 것도 미세(微細)하나마 매년(每年) 변화(變化)하고 있고, 산천초목(山川草木)같은 것이 변화(變化)함은 물론(勿論)이오, 조석(潮汐)의 고저(高低) 사람의 체질(體質)같은 것도 고금(古今)이 서로 동일(同一)치 아니하니 우리 국문(國文)같은 것도 창제(創製)하던 당시(當時)에는 이십팔자(二十八字)를 쓰더니 지금에는 이십사자(二十四字)로서 충분(充分)하고 여외(餘外)의 사자(四字)는 사용(使用)치 아니하여도 별(別)로 장해(障害)가 없는 것은, 우리의 순설후아(唇舌喉牙)의 형상(形象)과 동작(動作)이 오백년(五百年) 전(前)보다 변화(變化)한 소치(所致)이다. 이와 같이 천지간(天地間)에는 항구(恒久)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변변화화(變變化化)하는 속에는 오직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있으니, 대지(大地)는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있으되 그 원체(原體)가 역시(亦是) 대지(大地)임에는 변(變)함이 없고, 주야(晝夜)와 사시(四時)의 운행(運行)하는 도수(度數)는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있으되 주야(晝夜)가 교대(交代)하고 사시(四時)가 순환(循環)하는 그 사실(事實)은 매일매년(每日每年)을 틀림이 없고, 사람의 일생(一生)으로써 보면 수야모야(誰也某也)는 출생이후(出生以後)에 노령(老齡)에 이르기까지 일변월화(日變月化)하여 황구청춘(黃口靑春)이 쇠안백발(衰顔白髮)로 되어 다시 구시(舊時)의 형용(形容)이 없으되, 수야모야(誰也某也)라는 사람은 일생(一生)을 동일인(同一人)임에 틀림이 없으니, 이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이 곧 항구(恒久)이며 지금의 자연과학(自然科學)이 여러 가지의 물(物)을 종합(綜合)하여 어떠한 원리원칙(原理原則)을 정(定)하나니 이 원리원칙(原理原則)이 또한 항구(恒久)이다.
만물(萬物)에는 모두 안정(安貞)과 발용(發用)이 있어 안정(安貞)은 항구(恒久)하려 하고 발용(發用)은 변화(變化)하려 함으로, 항구(恒久)는 존존(存存)이니 체(體)가 되고 변화(變化)는 생생(生生)이니 용(用)이 되는지라, 항구(恒久)한 체(體)가 있으므로 써 용(用)이 의착(依着)할 곳을 얻어서 물(物)의 운동(運動)이 일정(一定)한 궤도(軌道)를 밟아 변화(變化)하고.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있으므로 써 체(體)가 고무력(鼓舞力)을 얻어서 물(物)이 일신우신(日新又新)하여 항구(恒久)히 계승(繼承)하나니, 만일 항구(恒久)한 체(體)가 없으면 일월(日月)같은 것도 궤도(軌道)가 혼란(混亂)하여 한서(寒暑)와 주야(晝夜) 등(等)이 질서(秩序)를 잃고 신(信)이 없을 것이오, 또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없으면 사시(四時)가 질운(迭運)치 아니하고 주야(晝夜)가 교대(交代)치 아니하여 생육(生育)의 공(功)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는「天地之道 恒久而不已也 = 천지(天地)의 도(道)는 항구(恒久)하여 그치지 아니한다」【註一】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조금도 쉬지 아니하고 항상(恒常) 계속(繼續)하여 항구(恒久)한 체(體)가 됨을 말함이오, 또 「日月得天而能久照 四時變化而能久成 = 일월(日月)이 천(天)을 득(得)하여 능(能)히 구조(久照)하고 사시(四時)가 변화(變化)하여 능(能)히 구성(久成)한다」【註二】하니, 이는 일월(日月)이 천도(天道)를 순(順)하여 항상(恒常) 왕래영허(往來盈虛)함으로 능(能)히 항구(恒久)히 조림(照臨)하고 사시(四時)가 항상(恒常) 왕래변화(往來變化)하여 일한일서(一寒一暑)함으로 능(能)히 항구(恒久)히 생성(生成)하여 만물(萬物)을 일신(日新)하는 용(用)이 됨을 말함이다.
그런데 모든 사물(事物)이 항구(恒久)한즉 염증(厭症)이 생(生)하나니, 일신(一身)의 굴신좌립(屈伸坐立)같은 것도 동일(同一)한 상태(狀態)를 오래 계속(繼續)치 못함이 그 일례(一例)이오, 오직 만물(萬物)의 본능(本能)만은 항구(恒久)하여도 염(厭)치 아니하나니, 사람이 생명(生命)의 장수(長壽)를 염(厭)하는 자(者)가 없고 음식(飮食)이나 부부생활(夫婦生活)을 염(厭)하는 자(者)가 없는 것이 곧 그것이니, 역(易)에「恒雜而不厭 = 항(恒)은 잡(雜)하되 염(厭)치 아니한다」【註三】함은 이 뜻을 말함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항구(恒久)한 체(體)는 구(久)하되 염(厭)치 아니하나니, 음식(飮食)의 예(例)로써 보면 주식(主食)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부식(副食)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그러므로 주식(主食)은 항구(恒久)히 먹어도 염(厭)치 아니하나, 부식(副食)은 동일물(同一物)을 장복(長服)하면 스스로 염(厭)하여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