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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 2015년 05월
오승근,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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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5개월, 그는 이제 홀로서기를 시작하려 한다.
그에게 있어 아내 김자옥은 세상에 둘도 없는 뮤즈였다.
비 내리는 오후, 여의도 윤중로에서 가수 오승근을 만났다. 회색 터틀넥에 검은색 가죽 재킷을 멋스럽게 매치한 그와 벚꽃이 어지럽게 흩어져 내린 거리를 걸었다. 불과 5개월 전, 30년을 함께한 아내 김자옥을 떠나보낸 그의 마음처럼 바람이 무척 차가운 날씨였다. 근황을 물으려던 차에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낀 반지가 눈에 띄었다.
“원래 결혼반지가 있었는데 10년 전에 딸을 시집보낼 때 ‘잘 살라’는 의미로 그걸 녹여서 사위에게 반지를 만들어 줬어요. 그래서 한동안 반지를 안 끼고 살았죠. 어느 날, 집사람이 자기 쌍가락지 중 하나를 빼더니 제 새끼손가락에 슬그머니 끼워보는 거예요. 그때는 너무 반짝거려서 싫다고 했죠. 며칠 뒤에 자기가 다니던 금은방에 가서 제 손가락 사이즈에 맞게 늘려왔더라고요. 그때부터 쌍가락지를 나눠 끼기 시작했어요.”
아내와의 행복했던 순간이 생각났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인은 떠나는 순간에도 나머지 한 짝의 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했다. 이제 그 반지는 그가 간직하게 됐다.
지난해 김자옥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대중에겐 큰 충격이었다. 얼마 전까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공연장을 누비며 활약하던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고인은 지난 2008년 대장암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았지만, 언제 아팠느냐는 듯 훌훌 털고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그 사람이 겉으로 티 내는 걸 참 싫어해요. 제 몸이 아파도 남들이 볼 때는 환하게 웃곤 했죠. 천생 배우였어요. 2008년에 대장암 수술을 받고, 2010년 암이 전이됐다는 걸 알았어요. 수술을 세 번이나 했지요. 그러다 작년 9월에 병원에서 이제는 ‘마지막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번만 잘 넘기면 앞으로 몇 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고비를 못 넘겼던 거죠.”
지난 2013년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 촬영차 떠난 크로아티아 배낭여행에서 그녀는 무척이나 밝은 모습이었다. 특유의 소녀 같은 웃음소리도 변함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사람들은 그녀의 투병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병원에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여행을 말렸어요. 보통 사람에게도 배낭여행은 힘든데, 암 환자가 오죽하겠어요? 저 역시 그걸 못 가게 말리느라 말다툼도 많이 했죠. 그런데 ‘나영석 PD와 오래전에 약속한 일이니 지켜야 한다’면서 우기는 거예요. 제가 그 고집 모르나요?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다행히 스태프 중 한 명이 의사 선생님이라더군요. 그래서 조금은 안심하고 잘 다녀오라고 했어요.”
보름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김자옥은 무척 행복해했다. 부부가 함께 TV 앞에 앉아 방송을 보면서 ‘치료가 다 끝나면 함께 꼭 가자’고 약속했다. 비록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지만. 크로아티아 여행을 다녀온 뒤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도 출연했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꼭 해야 한다’는 것이 고인의 생각이었다.
“생전에 김수현 작가를 참 좋아했어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아빠(남편 오승근을 부르는 애칭), 나 드라마 많이는 못할 것 같아. 하지만 2년이든 3년이든 김수현 작가 작품이면 출연하고 싶어’라고 말하곤 했죠. 집사람이 MBC에 입사하고 처음 출연한 드라마도 김수현 작가 작품이었어요. 결국 마지막 작품도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었죠.”
고인은 의리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남편 오승근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랬다. 오승근이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다 IMF 때 수십억대의 빚을 졌을 때도 그녀는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항간에는 ‘오승근의 빚 때문에 김자옥이 아픈 와중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예요. 배우 김자옥을 모르고 하는 소리죠. 아내는 돈을 벌기 위해 일했던 사람이 아니에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내는 사람이에요. 하기 싫은 건 안 하고요.”
오히려 사업 실패 후 실의에 빠져 있는 그에게 ‘노래를 해보라’고 권유하며 적극적으로 격려한 것도 그녀였다. 아내가 처음 트로트 앨범을 내보라고 권유했을 때, 그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고 했다. 팝송을 즐겨 부르던 자신에게 트로트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2001년 ‘있을 때 잘해’라는 곡으로 17년 만에 트로트 가수 오승근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것이 신의 한 수였다. 대히트를 치면서 오승근 인생에 제2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아내는 제 뮤즈였죠. 제가 17년 만에 가수를 하게 된 것도 아내 덕분이고, 히트곡을 만난 것도 아내 덕분이니까요. 아내가 곡을 듣고 ‘잘될 것 같다’고 하면 신기하게도 정말 잘됐어요.”
지난 2012년에 발표한 곡 ‘내 나이가 어때서’ 역시 대박을 터뜨렸다.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근 ‘한국인 애창곡’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노래 역시 김자옥이 추천해준 곡이었다.
“집사람이 제게 준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싶어요. 처음 이 노래의 데모를 받은 게 2012년 9월이에요. 집사람과 병원 가는 길에 차에서 데모 CD를 틀었는데 마침 이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저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집사람은 흥얼거리면서 따라 하더군요. 그러면서 ‘내가 쉽게 부를 수 있을 정도면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더라고요. 아내 말을 듣고 이 곡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김자옥에게 있어서도 오승근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지난해 5월, 그녀가 악극 [봄날은 간다]로 무대에 올랐을 땐 남편에게 “어떻게 하면 더 애잔하게 노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악극 [봄날은 간다]의 주제곡이 있어요.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아내는 이 곡을 특히 좋아했죠. 아내는 극의 맨 마지막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 홀가분하게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연기했어요. 공연할 때 가서 그 장면을 봤는데 무척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부부는 그렇게 서로를 격려했고, 존경했으며, 사랑했다. 이번에 열리는 콘서트에서 그는 아내가 사랑하던 이 곡을 부르기로 했다. 그는 아내 생각이 나서 과연 이 곡을 제대로 완창할 수 있을지 많이 걱정된다고 했다. 콘서트에선 이번에 발표한 신곡 ‘즐거운 인생’도 부를 예정이다. 이 곡 역시 아내가 골라준 곡이다.
“엄마(오승근이 김자옥을 부르는 애칭)가 병원에 있을 때, 이 노래를 골라줬어요. 원래 조금 일찍 앨범을 내려고 했는데 아내가 많이 아파 발매일을 미뤘죠. ‘내 나이가 어때서’ 후속곡으로 준비한 건데, 아내가 떠나고 나니 가사가 영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제 마음이 많이 쓸쓸해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더 즐거운 가사로 바꿨어요. 그러면 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한때 ‘공주병 신드롬’을 일으킨 고인의 성격이 실제로 ‘공주 같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집에서는 남편의 사각팬티를 입고 생활할 정도로 수더분한 성격이었다는 것. 겉모습은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남자 못지않게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애연가인 그가 담배를 끊은 지도 1년이 되어간다. 아내의 병세가 악화되고부터 담배를 손에 쥘 엄두가 안 났다고 했다.
“아이들이야 자기 일 하느라 바빴죠. 둘 다 외국에 있어 엄마와는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고요. 또 아내 곁엔 제가 있으니까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있었던 부분도 있죠.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니, 아이들이 ‘그때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후회스럽다고 하더군요.”
아내가 가고 한 달 뒤 있었던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방송 3사는 일제히 김자옥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당시만 해도 사별의 아픔을 가누지 못해 대리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르는 것조차 힘들었다.
“시상대에 오르기가 너무 싫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아직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거든요. 아내가 가고도 한동안 ‘정말 아내가 먼저 간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멍했던 것 같아요.”
지난 3월에는 아들 영환씨의 결혼식이 열렸다. 암 투병 중에도 아내는 아들의 결혼식 준비를 손수 챙겼다. 그녀가 아들의 결혼식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웬만한 준비는 아내가 해놓고 갔어요. 지인들에게 보낼 청첩장도 아내가 직접 골랐죠. 전에 살던 집엔 아들 내외가 새살림을 차렸고, 저는 아내와 가까운 곳인 판교로 이사해 혼자 살고 있어요. 쾌활한 성격의 며느리는 혼자된 시아버지가 걱정되나 봐요.(웃음)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제 생활은 똑같아요. 예전에도 아내가 일 나가고 없으면 혼자서 곧잘 끼니를 챙겨 먹었는데요, 뭘.”
생전에는 부부가 함께 교회 성가대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김자옥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성가대 봉사는 접었지만, 부부의 신앙생활은 계속됐다. 홀로되고 이사한 후에도 그는 일요일이면 혼자 교회에 간다.
“특별할 게 있나요? 아내가 살아 있을 땐 그저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죠. 후회되는 게 있다면, 제가 아내를 건강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건강만큼은 제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더라고요.”
그녀와 함께한 나날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아달라고 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가끔씩 서로에게 상처 주는 행동도 하고, 양보해야 할 상황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 순간마저 행복이라는 걸 깨닫게 돼요. 심지어 아내는 몹시 아픈 순간에도 소녀처럼 웃었어요. 아내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이라는 걸요.”
그는 요즘 5월에 있을 전국 투어 콘서트 준비에 한창이다. 가수 데뷔 47년 만에 처음 여는 첫 단독 콘서트다. 고인이 떠난 후 그 빈자리를 바쁜 일정으로 버텨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봄비가 멎었다. 그의 마음에도 그렇게 비는 잦아들고 있는 듯했다.

첫댓글 이분 돌아가신거 아직 실감이 잘 안남 얼마전에도 하이킥글보고 생각해보니까 김자옥 할머니 별세하신거 생각나서 온몸에 소름돋았다 실감안나 진짜...
22 실감이 안 나
2008년부터 아프셨을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니 한동안 마음 안좋았음ㅠㅠ근데 이 글을 보니 정말 김자옥씨는 정말 사랑스러우신 사람이였구나 하네...보고싶습니다ㅠㅠㅠ..
ㅠㅠ까먹고있었음 그 꽃보다누나생각하면..진짜 안믿김
헐 잊고있었다..가슴아파..진짜 실감이 안남ㅠㅠㅠㅠㅠ
아침에하는프로에서 아들결혼식나오는데 ㅠㅠ슬퍼서눈물흐렷음 ㅠㅠ
아이거며칠전에 네이버메인에 잇길래보고 너무좋아서 남친도 보야줌 더도말고덜도말고 이렇게 사랑하며살고싶다
?헐 내나이가어때서 오승근님하고 김자옥여사님 부부엿다니 충격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