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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동해관광에서 숙박비와 버스 요금 환불이 27일 완료돼 이제 여행기를 쓸 수 있게 됐다.
지난 16일 밤 11시 서울 중구 다동의 맛나호프에서 시작된 여정이 19일 오후 4시쯤 청량리역에서 헤어지며 일단 막을 내렸다가 정산 및 환불이 완료될 때까지 조금 오래 걸렸다. 다시 느꼈지만 울릉 산행은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변수가 많아 참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누가 가더라도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간접, 대리 경험으로 삼을 수 있겠다 싶어 상세히 정리하려고 한다.
16일 밤 11시. 난 야근이라 20판까지 마감하고 조금 기다렸다가 산바람 형과 아톰 형을 회사 로비로 오시라고 해 곧바로 맛나호프로 갔다. 불금이라 꽤 많은 이들이 북적이는데 마늘치킨에 생맥주, 소주 시켜 먹다가 코다리찜 더 시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새벽 2시 조금 넘어 버스 타러 시의회 앞 건널목을 건너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두 형은 모르고 지나치는데 내 눈에 피러 선배가 너무 잘 보인다. 반갑게 인사 나누고 버스에 올랐는데 그 다음부터 새벽 5시쯤 강릉 도착해 어느 식당 앞에 차가 멈춰섰을 때까지 난 아무런 기억을 못한다. 더부룩해 도저히 못 먹겠다. 세 형만 드시고 돌아왔는데 7시 조금 넘어 배가 떠났는데 마치 영화 필름이 끊긴 듯 기억이 뚝뚝 끊긴다.
그래도 버스에서 충분히 잠잔 인간은 나뿐이라 그럴까. 나만 정신이 말짱하다. 출항 30분 정도 되자 곳곳에서 검은 비닐봉지 달라고 손을 내민다. 산바람 형은 3시간 내내 힘겨워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난 2시간 30분 정도 뒤편 화장실 근처 벽에 몸을 기댄 채 선실 풍경과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겪는 인내의 시간을 스케치에 담듯 바라봤다.
17일 오전 10시 조금 넘어 저동항에 닿았다. 가이드를 만났더니 밥부터 먹잔다. 5분쯤 걸어가니 369 식당이 나온다. 오징어내장국으로 맛나게 아침을 먹는다. 산바람 형이 속의 것들을 채워넣느라 제일 분주하다. 우리랑 가까운 좌석에 있던 10여명의 남녀 일행은 얼큰하게 소주 잔치를 벌인다. 부지깽이 나물에 제육볶음 같은 것도 있어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누룽지가 있는데 땅콩 같은 것을 넣어 끓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11시 30분쯤 B코스 투어를 하잔다. 피러 선배와 난 두 번째 울릉 방문인데 내 머릿속으로는 성인봉 갈까 싶었지만 버스에 어느 정도 인원이 타야 하고 나리분지 간다는 말에 그냥 몸을 실었다. 예전에 가본 길을 간다. 다만 버스 기사분이 말로 여행객들 꼬시는 재주가 현란하다. 조금 의외였던 것이 이 기사가 올해 처음 투어 손님을 모신다고 얘기한 것이었다. 한참을 달려 예림원이란 곳을 올라갔다. 일주 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70도 가까이 핸들을 우꺽해 가파른 길을 오르길래 예전에 다녀온 성불사 오르는 길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전혀 다른 곳이었다.
예림원은 글자와 기호를 테마로 한 조각공원을 표방하고 있다. 해안가 절벽 아래 굉장히 좁은 터에 이런저런 모뉴먼트들을 앙증맞고 영리하게 조성해놓았다. 연리근도 있고 기기묘묘한 분재, 나무 편액에 잠언, 참언들을 잔뜩 새겨놓았고 세심하게 관리하는 듯 기괴한 형상의 돌들에 물을 끼얹어 이 물이 햇빛에 반사되는 영롱한 순간을 완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성불사 들러 그로테스크한 절벽 아래 네 군데 구멍이 숭숭 뚫려 그 사이로 햇살이 뻗어나오는 풍광을 즐긴다. 그 뒤 삼선암, 성하신당에 들러 약수도 마셨는데 마실 만했다. 옆 가게에서 피러 회장님 오징어 한 축을 5만원 주고 샀다. 어휴 비싸, 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울릉도를 일주할 수 있는 관통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석포 선창까지만 갈 수 있었다. 유턴해 나리분지로 향하는데 몇년 전 울릉도 왔을 때는 3월 초여서 사위가 온통 눈 천국이었는데 들머리는 눈을 찾을 수 없고 분지를 빙 둘러싼 산자락에도 북사면만 눈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많은 곳은 제법 양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지 들어서면서부터 기사님이 유혹을 던진다. 삼나물(눈개승마) 맛이 기막히니 막걸리와 함께 먹어보란다. 여기까지 와서 넘 삭막하게 구는 것도 도리가 아니란 피러 회장의 엄명에 따라 2만원 하는 삼나물무침을 시키고 워낙 쌉쌀하니 부침개 시켜 함께 먹자는 산바람 형의 주문에 따라 그렇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이 기사분 우리를 그냥 보내지 않는다. 삼백리향 비누 등을 파는 가게에 들른다. 이 기사는 가게 직원에게 올해는 처음이네 인삿말을 건넨다. 난 시큰둥해져 주위의 전망대 같은 곳에 올라 나리분지 전경을 눈에 담았다. 피러 회장은 아니나다를까 한 아름 사들고 버스에 오른다. 다음날엔가 다다음날엔가 집사람 쓰라고 건넨다.
그렇게 승객들은 꾸벅꾸벅 졸고 기사는 하염없이 뭔가를 주워섬기며 저동항에 돌아왔더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었다. 기사에게 일정을 맡기고 저동 쪽에 머물렀던 가이드 이정근 과장이 반갑게 맞는데 보통 4시간반 정도 걸리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걸 보면 무지하게 돌아다니셨나 봐요 그런다. 아무렴 그렇지 웃어넘겼다.
또 밥을 먹어야 한단다. 숙소가 조금 떨어져 있어 걸어 오려면 20분 정도 걸린다며 저동항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녁은 여행사에서 책임지지 않으니 우리끼리 알아서 먹는다. 몇년 전 갔던 조붓한 홍합밥 집은 도동 쪽이다. 걸어가려면 시간은 족히 걸리고 또 숙소로 돌아오려면 여러 모로 복잡해질 것 같다. 시간은 이르지만 여기서 먹는 게 최선이다. 제법 유명한 집 얘기를 꺼냈더니 이 과장은 국수방을 가리킨다. 유명한 집을 판 주인장이 새로 차렸다는 믿기지 않는 얘기를 했다. 믿어야지 뭐 하며 들어갔다. 홍합밥 셋을 넷으로 나눠달라고 하고 따개비칼국수와 비빔국수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별로 배 고플 이유가 없는데 잘 먹었다.
저녁 전 이정근 과장이 그런다. 모레부터 배가 안 떠 금요일까지 뜨지 않으니 내일 오후에 나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 기상청의 예보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준다. 우리가 뭐 아나. 자기들 말로는 한국 기상청보다 그쪽을 믿는 게 좋다는 것을 오랜 세월 깨달아 늘 그 쪽 정보에 의존한다고 했다. 씁쓸한 일이다. 여튼 나중에 생각해보니 울릉 도착한 순간부터 내일 떠나야 한다고 알려줬더라면 B투어 하지 않고 성인봉 올랐을 것 같았다. 뭐 나중에 그랬다는 얘기다. 아톰 형과는 숙소에 여장 풀고 성인봉 오르자고 얘기하고 숙소에 태워달라고 했다.
저녁 먹으며 잠깐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 과장은 다음날 오전 독도 투어가 있으니 가시란다. 산바람 형은 배 타는 게 지긋지긋하고 85 뽀로로 종일이가 A투어 트레킹이 정말 좋았다더라며 독도 가는 걸 포기하겠다고 했다. 어렵지 않게 산바람-아톰 형은 A투어를, 나랑 피러 회장은 독도를 다녀오기로 했다.
산바람 형은 홍도 숙소 얘기를 꺼내며 여관이나 모텔 수준이겠지? 했다. 그랬는데 5분여 해안쪽, 나중에 보니 전수전망대 들머리 가는 길이다. 언덕배기에 하얀 펜션이다. 펜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더 읽어보면 알 것이다. 주인이 달려와 친절한 한마디를 건넨다. 3층 객실 문을 열었는데 앞에 전신주 줄이 걸리적거리긴 하지만 오션 뷰! 다. 모두 만족이다. 씻고-무람 없이 내가 먼저 씻었다-나니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사실 가이드 차에서 내린 지 느껴진 바람과 추위가 장난 아니었던 이유도 있다. 성인봉 포기다, 둘이 의견일치했다. 태양이 까무룩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니 할일이 없다.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터였다. 8시 뉴스 보며 자리 깔고 누웠다.
눈을 떴다. 어디선가 되게 못 부르는 노래 소리가 왕왕 댄다. 이건 뭐지? 시계를 보니 맙소사 눈을 의심했다. 밤 10시 30분. 5분 정도 뒤척이니 산바람 형이 그런다. “네가 내려가서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네” 새삼 말할 게 있겠는가? 막내이고 대장이니 이리저리 다 걸린다.
만 55세인데 아무렇게나 뭐 하나 걸치고 걸어내려갔다. 술 취한 인간들이 행패 부리면 어떡하지? 펜션 앞 좁다란 마당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내고 술집 겸 밥집을 차렸는데 우리는 숙소 들어가며 '저기서 한 잔' 그랬다가 심신이 힘들어 그냥 잤던 터였다. 한눈에 봐도 여기 사람들인 60대 중반 가객들이 둘씩 자리를 나눠 한 팀은 노래방 책을 뒤척이고 있고, 둘은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정말 놀랍게도 주인이 술잔을 기울이다. 아 303호 손님 그런다.
이런 제기랄. 주인이 이 난리를 피우는 거였어. 이상하게도 내 태도가 나직해진다. “저희 한숨도 못 자고 달려와 너무 피곤해 바로 잠자리 들었는데 내일 일정도 있고 하니 잠 좀 자게 해주세요.” 그 중 연배가 가장 돼보이는 이가 상당히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뭍이라면 아마 그런 반응, 더욱이 펜션 손님이 내려와 사정하는 상황에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표정이다. 여긴 섬이야, 내 머리의 뉴런신경계가 일깨운다. 훅 가는 수가 있어. 주인이 벌떡 일어나 그 70대와 나 사이에 끼어 들며 손을 맞잡는다. “우리도 사정이 있어 그러는데 좀만 참아주시면 빨리 정리하도록 할게요” 그런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더 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해 세 형께 최대한 좋게 얘기했다. 그래도 서너 곡-내 기억에 그렇다. 더 했는지 모르겠지만-더 아우성을 친 뒤 난 잠에 다시 빠졌다.
다시 눈을 뜨니 새벽 5시, 사실 내겐 굉장히 선방한 잠자리다. 피러 회장도 일어나 창 밖을 엿보는 듯했다. 일어나 산책을 떠났다. 신작로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무조건 산쪽으로 걸었는데 나중에 보니 내수전 들머리 가는 길이었다. 들머리가 금세 나올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갈수록 오르막이 심해진다. 30분쯤 만에 포기하고 되내려와 해안 쪽으로 가봤다. 펜션에서도 보이던 흰 천막 두른 집 앞에 여러 대의 트럭과 형광 점퍼 입은 이들이 북적인다. 아 함바집이다. 섬 일주 도로 공사 중인 인부와 환경미화원 30명 정도가 아침을 들고 있다. 섬에서 일주일 머무른다면 아침은 저집이다 싶었다. 그곳을 지나 200m쯤 가면 물을 채워넣지 않은 풀장이다. 절벽 기슭에서 바다와 풀장을 동시에 담은 관광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곳이었다.
태양이 떠오를 것처럼 수평선이 붉어지다가 금세 오늘은 틀렸다고 알려준다. 6시 30분. 펜션 돌아오니 모두 일어났다. 씻고 짐 챙겨 마당 나와 조금 기다리니 이 과장 차가 정확히 도착한다. 다시 369식당. 이번엔 뷔페식으로 자율배식이다. 어떻게 끓였는지 미역국이 정말 맛있었다. 아주머니가 부지깽이나물 새싹을, 나중에 전호나물 생것을 내준다. 보통 무친 것을 먹었는데 이렇게 날것으로 먹는 맛도 독특하다. 그리고 앞에 얘기한 땅콩누룽지, 정말 다시 맛보는데도 매력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건강한 느낌의 누룽지를 내놓는지 한없이 궁금해졌다.
둘씩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이 과장의 현지 여행사 사무실에 짐을 맡기니 독도 가는 둘에게 태극기를 건넨다. 독도 여행의 느낌은 우리 신문의 ‘길섶에서’ 란에 실었던 짧은 글로 대신한다.
내 나라 내 땅 들어가는데 태극기를 쥐여준다. 그제(18일) 울릉도 저동항을 출발해 독도를 다녀오는 여행상품에 태극기도 포함돼 있다며 건넨다. 뭐지 이 어색함? 2시간을 달렸더니 그 어렵다는 독도 입도가 가능하단다. 울릉도 방문 두번째 만에 독도 땅을 밟는다.
경찰 간부인 듯한 셋이 계단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것을 많은 이들이 부러움 반, 질시 반으로 쳐다보는데 어느 고교 졸업 30주년을 기념하는 무리가 플래카드를 펼치고 태극기를 휘저으며 함성을 질러 댄다. 태극기를 안 가져왔더라면 민망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사실 독도 입안 조금 전 50일 동안 갇혀 지내는 독도경비대 대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과자 등 간식거리이니 성의를 더해 달라는 선내 방송에도 시큰둥해 있었다. 그런데 20분 정도 관광객들의 접근을 티 안 나게 막느라 애쓰는 그네들을 보니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배 문이 닫혔는데 한 아주머니가 과자 상자를 들고 창밖에서 거수경례를 하는 부대원들을 향해 소리친다. “과자 맛있게 먹어요.” 과단성 없는 난 몸 둘 바를 몰랐고 그네들은 배시시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사실 독도 입안한 것도 감지덕지인데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해줘 고마웠다. 발을 딛자마자 떠났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다. 여튼 저동항 돌아오니 두 형은 벌써 369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다 먹었다. 배 시간도 급박해 피러 회장과 나도 서둘러 먹었다. 또 누룽지, 예술이다. 세 끼를 먹었으니 딱 좋았다.<계속>
첫댓글 쓰느라 애썼다. 근데 활자 좀 키워라. 글고 오징어 5만 원이야. 나눠 먹으니 다들 맛있다고 하더라. ㅎㅎㅎ 독도에 소주 못 사주고 온 건 맘에 좀 걸리더라. 내가 뭐 대단하게 많이 산 것 같네. 오징어 한 축과 비누 산 게 전부야.
분부 받잡아 활자 키웠습니다. 축이란 단어가 생각 안 나 힘들었는데 반영해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