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년 前 동경의 지하철역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장렬하게 목숨을 거두어 한일간의 가교를 놓은 부산의 李秀賢님의 9주기의 날입니다. 가깝고도 멀기만 하였던 一衣帶水의 韓國과 日本에 선린의 다리를 놓아주신 李秀賢님의 冥福을 다시 한번 빌어마지않습니다.
아래는 2005년 2월 4일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부산학생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일 가교 이수현(일본에 유학중이던 2001년 1월26일 도쿄 지하철역 선로에 몸을 날려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義人) 4주기 추모행사"에서 추모시를 낭송한 일본 시인 스즈키히사오(鈴木比佐雄)의 李秀賢님 추모행사 와 묘소 참배 후의 감상을 적은 詩 <부산학생문화회관의 피리>와 <釜山市立公園墓地의 까치>와 당시의 사진입니다.(번역: 河光範)
<부산학생문화회관의 피리>
저가 부는 피리 소리가 멎으면
낭독하여 주십시오.
풍체 좋은 연주자는
웃는 얼굴로 뱀피리라고도 불린다는
큰 피리를 호쾌하게 불기 시작했다.
청년(이수현)의 혼을 부르기 위해서는
뱀 모양의 피리가 필요한 것이다.
피리 소리는 이 세상에 남기고 싶어했던
청년의 생전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을 짊어지고
산하를 순례하는 수행승은
어느 새 큰뱀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산길을 걸어가는 마을 처녀에게
나무 그늘 속의 독사가 덥치려 했다.
이를 본 큰뱀은 재빨리 독사에게 달려 갔다.
큰뱀은 독사와 장렬한 싸움을 벌였다.
독사에 물린 큰뱀은 독이퍼져 죽어갔다.
도망온 처녀는 약혼자에게 이를 전했다.
큰뱀의 주검을 발견한 마을의 그 청년은
눈물을 흘리며 예를 다해 장례를 치뤘다.
어느 날 큰뱀의 묘소를 찾으니
그곳엔 큰 피리가 있었다.
마을 청년이 그 피리를 불어 보니
수행승의 슬픈 사연들이 되살아 났다.
청년은 그 피리를 손에 쥐고
수행승이 한 것 같이 산하를 유랑했다.
피리 소리에 인도되어
나는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한 구절이 끝나면 보조를 마추어
다시 피리 소리가 울려 펴졌다.
풍체 좋은 연주자의 뱃속에서부터
용솟음쳐 나오는 피리소리가
대강당을 감싸안았다.
2005년 2월 4일
부산학생문화회관에서
한 의인 청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편의 시를 낭송하였다.
李秀賢님의 어머니 辛潤贊님과 아버지 李성대님
<釜山市立公園墓地의 까치>
꽃집 아주머니에게 만원을 주고
두 다발의 국화꽃을 샀다.
안내하는 하선생과 함께
이수현의 묘를 찾아 헤맸다.
장소를 몰라 관리실 쪽으로 가니
그곳은 火葬場의 열기가 느껴졌다.
나라는 달라도 장례식장의 견딜 수 없는
슬픈 모습들은 다를 바 없다.
黑白으로 얼룩진 갈가마귀 같은 새가 있다고
일본서부터 동행한I씨가 신기해 하였다.
그 새 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그리운 사람과 만난 듯이 중얼거렸다.
아아 그것은 까치라는 새입니다.
재일 한국 시인들이 그리워하는
그들의 글 속에 나오는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그 새 말입니다.
까치가 있던 곳 가까이로 가니
이수현의 묘가 나타났습니다.
행복을 가져다 주는 새와 함께
이수현의 혼이 잠들고 있는 것일까
횐 국화를 헌화하고
명복을 빌었다.
공원묘지에 있다고 하는 일본인 위령비
이 나라의 침략에 일익을 한 사람들을
이 나라 사람들은 따뜻이 묻어 주고 있다.
일본인 위령비에도 까치는 찾아 올 것이다.
다음 다시 올 때는 꼭 찾아가 참배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부산시립공원묘지를 뒤로 했다.
첫댓글 李秀賢님의 9주기를 맞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9年前のことを私もしっかり覚えています。
その時、李秀賢ニムの実家のすぐ近くで日本語を教えていました。
고 李秀賢님의 명복을 빌며....그 가족께도 삼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도 한국과 일본에서의 9주기 행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삼가 李秀賢님 명복을 빕니다.
벌써 아홉해가 지났군요. 삼가 명복을 빕니다..
합장!
9주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