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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소서
왕상8장 20절 ~ 45절
이 세상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통치자를 가까이 하는 것도 대단한 축복입니다. 통치자의 부름을 받으면 모두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그 부름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대통령 취임식 할 때 보면 세계 정상들이 다 옵니다. 재벌들이 다 옵니다. 멀리서 봅니다. 가서 악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멀리서 보는 그 초청장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대통령 초청받은 것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번에 윤석열 대통령 취임할 때 사수교회 원로 목사님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장을 보여 주면서 자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1. 주님의 초청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이 자리에 초청받아 왔습니다. 대통령의 초청이 아닙니다. 만군의 하나님이 초청하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부유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대통령 초청받는 것도 영광이지만 청와대에 사는 것도 지나놓고 보면 별개 아닙입니다. 청와대에 있다고 해서 인간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자만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의 모든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우리 하나님,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은 그냥 우리를 부르는 게 아닙니다. 온갖 나를 위한 계획을 세워놓고, 축복을 준비해 놓고 나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부르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가정이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교회 나오는 것이 제일 큰 축복이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교회를 섬기는 축복입니다. 구약성경에 제사장도 1년에 세 번밖에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못 갑니다. 성전에 자주 들어가는 줄 아십니까? 지성소에 1년에 7월 10일 대속죄일 지성소는 더구나 한번밖에 못 들어갑니다. 못 들어갑니다. 이방인인 우리가 오늘 하나님 앞에 이렇게 바로 온다는 것 얼마나 축복입니까?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야말로 얼마나 높은 분이십니까? 온 천하를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사랑을 받고, 마음껏 주의 이름을 부르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주신 특별한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이렇게 마음대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높은 분가는 데도 마음대로 못 들어가는데, 오늘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오늘 우리가 같이 예배드리는 것 얼마나 축복인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위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2. 성전의 중요성
하나님은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동 중이지만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제사)를 위한 장소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광야를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예배 장소도 이동 가능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텐트’를 만들었습니다. 천막을 가죽으로 만들었을 테니‘피막’이라고 해야겠지요. 아무튼 ‘성막(tabernacle)’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6장과 2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성막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면서 예배하는 장소를 더 이상 이동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최초의 ‘정착형 예배당’은 솔로몬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친지라 …” (왕상 7:51) 건축을 마친 후에, 솔로몬은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겼습니다. (왕상 8:1~4), 수많은 양과 소를 제물 삼아 제사를 지냈습니다. (왕상 8:5), 성전 앞에 모인 백성들을 축복했습니다. (왕상 8:14), 그리고 “솔로몬은 여호와의 제단 앞에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과 마주 보고 서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늘을 향해 팔을 치켜들었습니다. <쉬운 성경, 왕상 8:22> 제단 앞에 선 솔로몬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과 마주보고 서서, 하늘을 향해 팔을 들었고, 기도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솔로몬이 그 때 했던 기도문 중 일부입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왕상 8:28) 그리고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왕상 8:29) 솔로몬은 하나님께 자신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전을 향해 드리는 기도를 들어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주시기를 바랐던 솔로몬의 기도는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 ”(왕상 8:35~36) 였습니다. 솔로몬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성전을 바라보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바라보기 위해 예루살렘 중심부 시온산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지형상 예루살렘 도시는 높은 곳이어서 동서남북에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은 더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나 잘 보였습니다. 본문을 통해 솔로몬이 왜 그토록 성전을 그리워하고 성전을 사모했는지 그 까닭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3. 성전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입니다.
8:11절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고 했고, 13절을 보면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라고 했고, 16, 18, 20절을 보면 "내 이름을 둘만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성전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집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며, 하나님이 이름을 두시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은 자기가 사는 집보다 더 소중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를 해도 성전에 올라가 했고, 성전에 올라갈 형편이 못되면 성전을 바라보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다니엘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유대나라가 망할 때 포로로 잡혀간 젊은이 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왕의 신임을 받아 포로 출신으로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을 빼앗긴 바벨론 조정 대신들의 시기와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을 제거할 음모를 꾸몄습니다. 만일 바벨론 국왕이 아닌 다른 신이나 대상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굶주린 사자굴에 집어넣어 처형한다는 법안을 만들어 왕의 재가를 받아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매일 세 번씩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잡은 계책이었습니다. 법령이 공포된 그날부터 누구라도 다른 신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다니엘 6:10을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이야말로 목숨걸고 죽을 각오로 성전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두시는 곳,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집입니다. 주님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지도와 사랑을 받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상처는 치료가 됩니다. 길은 열립니다. 하나 하나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것을 주시고 내년에는 또 저것을 주시고, 해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달마다 해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축복이 쌓여질 줄로 믿습니다. 형통한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33편 3절에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아침이 되면 보이지 않지만 이슬이 내림같이 여호와는 성전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슬 같은 복을 내려주시고” 시편134편 3절에 “천지를 지으신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내게 복을 주실 지어다” 역대상 29장 12절 “부과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자손만대에 우리는 성전에 거해야 합니다. 다윗이 시편23편에서 고백하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도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교회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4.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요즈음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현대인 4명 중 한 명은 몸이 늘어지고, 기운이 없고, 의욕이 없고, 자고 나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이른바 피로증후군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피로증후군입니다. 교회 나올 맘이 없어집니다.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려도 감격이 없습니다. 의무적으로 나와 앉았다 돌아갈 뿐 답답하고 맥이 뛰질 않습니다. 맡은 일을 하긴 하는데 억지로 할 뿐 기쁨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영혼피로 증후군인 것입니다. 오래전에 탤런트 임영규씨가 TV에 나와 가지고 고백했습니다. 자기는 아버지가 유산을 물려주었는데 요사이 돈으로 600억 재산을 물려줬는데, 2년 반 동안 도박해 가지고 싹 다 잃어버리고, 빈 털털이가 되어가지고 찜질방에서 자고, 여인숙에 가서 자고, 옷을 전부 여인숙 안에서 여관에서 빨다가 또 종업원이 와가지고 왜 빠느냐 그러고, 별의별 창피를 다 당하고, 가족도 다 잃어버리고,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늦게서야 주님 앞에 돌아와서 회개하고 어느 조그마한 교회에서 청소하고 설겉이 하고 봉사하며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 나와야 재산도 내 재산이고, 건강도 내 재산이지, 교회 떠나서 잘되는 것이 그게 잘되는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서는 멀리갈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회개하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본문 30절을 보면,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여기서 솔로몬은 '복 주시옵소서!" 하지 않고, '사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복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만 먼저 '죄 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중요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영적으로 우리를 건강하게 해 주시는 곳입니다. 교회시대가 열리면 그 사회가 건강하고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해야 모든 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육신도 병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정신적으로 병들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병은 더 치명적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면 정신적으로 병든 것도 다 치료가 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면 다 정상적으로 회복시켜줍니다. 모든 회복, 우울증 교회 나아와 기도하면 고침받습니다. 이거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영적으로 건강해,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면 영적으로 건강해지는 영적헬쓰의 시간입니다, 영적. 오늘도 여러분 건강해지는 것을 여러분 경험하지 않습니까? 바로 세워 주시고, 영양보충해 주시고, 힘주시고, 근육을 올려주시고, 온갖 은혜를 주시는 시간이 예배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22절을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손을 펴고"라고 했고, 29, 42, 44, 48절을 보면 "이 전을 향하여, 전 있는 편을 향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8, 43, 52절을 보면 "부르짖고 빌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기도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손을 펴고, 손을 들고, 성전을 향하여,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왜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습니까? 시편 3:4을 보면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성산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성산에서 응답하신다는 것은 곧 성전에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을 보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했고, 33-34절을 보면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라고 했고, 42-43절을 보면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라고 했습니다. 44-45절도, 48-49절도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들으시고"라고 했습니다. 다윗이나 솔로몬의 신앙은 성전에서 기도하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성전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 그 이름을 두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성전은 중요한 것입니다. 세종문화 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 있는 피아노와 오르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 제품들입니다. 값도 고가입니다. 저희 교회 오르간이나 피아노는 그것들에 비하면 저가의 것들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것들은 성구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며, 성전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성전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전을 사모하고 살아야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이 성전(거룩한 집, 교회) 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죄 사함의 은혜가 넘침을 믿습니다. 솔로몬은 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8:41~43) 솔로몬은 건축한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먼 지방에 사는 이방인(외국인)이라도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여러분의 기도와 여러분의 헌신과 여러분의 수고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우리만의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누구나 찾아와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적을 두지 못한 이들도, 예수 믿지 않는 이들도 기도하고 싶을 때 찾아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故 이어령 교수의 이야기 중에 ‘배고픈 사람은 식당에 갑니다. 알고 싶은 것 있는 사람은 도서관에 갑니다. 심심해서 즐길 거리가 필요한 사람은 극장으로 갑니다. 아픈 사람은 병원에 갑니다. 그러나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갈증 나고, 놀아도 심심하고, 배워도 답답한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딜까요? 교회로 가면 됩니다. 예배드리러, 찬송하러, 기도하러 가세요. 교회로 오면 됩니다.’ 예배한 적 없는 단 한 사람이라도 교회를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면, 예수님을 몰랐던 단 한 사람이라도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솔로몬의 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성전에 / 이 거룩한 집에 / 이 예배당에 와서 예배하는 이들마다 / 기도하는 이들마다 사함 받고 구원의 확신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누구라도 이곳에 오는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 은혜를 /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나님께 드리는 교회에 누구든지 찾아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제단 앞에서, 손을 펴고 / 손을 들고 기도했던 솔로몬처럼 자신을 위해 / 가정을 위해 / 우리 교회를 위하여 나라를 위해 / 세계선교와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리에 여러분이 앉아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경험하고 마음껏 가슴에 담아 세상을 향해 나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복된 삶의 주인공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34절을 보면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라고 했고, 35-36절을 보면 "비가오지 않아 땅이 메마를 때 비를 내리시옵소서"라고 했고, 37-39절을 보면 "기근과 재앙이 계속될 때 기도하거든 응답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려가서 44-49절을 보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쟁에 져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도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이기게 해주시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43절의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라는 말씀과 52절의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라는 말씀입니다. 천재지변도, 재앙도, 전쟁도, 고통도, 질병도 기도하면 들으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것이 솔로몬의 신앙이었습니다. 천재지변이나 재앙이나 실패나 고통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들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본문 54절 "솔로몬이 무릎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왕입니다. 백성들이 왕을 향해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왕을 높이는 것이 당시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경배하고 찬양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로 이런 점들이 솔로몬의 성공 비결이었고 복 받은 비결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손들고 찬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시작될 때 큰 일이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기도를 복되게 활용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오래 하거나 잘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꼭 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새로운 승리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힘을 얻고 살아가게 됩니다. 기도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300년 간의 탄압에서 그리스도교를 해방시킨 사람이 콘스탄틴 대제입니다. 그는 자기 군대보다 배가 넘는 8만 대군을 거느린 막센티우스 황제와 싸울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늘 위에서 십자가가 나타나고 그 위에 "이것으로 승리를 얻으리라"는 글이 씌어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큰 감격 속에서 전 군대에게 십자가 군기를 들고 나가 싸우게 했습니다. 결국 그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 승전이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임을 확신했습니다. 이로 인해 콘스탄틴 대제는 그리스도교에 귀의하는 동시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기도는 문제해결의 열쇠요, 능력의 원천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의 역사입니다. 즉 기독교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고, 기도하는 교회가 부흥되어 왔습니다. 역사를 지배하고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행복을 원하면서도 그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제 시원한 9월, 열매의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잘 안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고 일이 꼬여만 가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입니다. 영적인 전쟁터에서 기도하는 자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기도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제 겸손한 기도를 드리십시오. 순종하는 기도를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진실로 회개의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통해 더욱 풍요로운 영육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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