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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펴고 전북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를 탐색해본다. 출발점은 용담호 서안을 따라 형성된 795번 지방도. 가슴을 흔들어줄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 진안에서 부안까지 달려볼 작정이다. 여름철 잃었던 입맛을 되살려줄 맛 탐험은 ‘맛의 고장’ 전북 여행의 덤이렷다. 진안 나들목에서 우회전해 무주 방면 30번 국도를 내려오다, 용담댐 방향으로 가는 13번 국도로 갈아탄다. 용담댐을 지나 정천면에 이르는 795번 지방도는 달리는 40여분 내내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시원스런 호반경치를 안겨준다. 지나는 차량도 거의 없으니 느릿느릿 거북이 운전한들 누가 뭐라 하리. 호젓한 물안개 드라이브에 촉촉해지는 아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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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댐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인공호수. 댐을 만들고 물을 채울 때 헬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마치 용이 꿈틀대는 모습이었다 할 만큼, 용담댐의 물길은 산줄기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다. 사연 많은 자연의 속살을 훔쳐보는 듯 가슴이 쿵쾅거린다. 가을이 좀더 깊어지면 호반도로를 따라 코스모스가 만발해 아늑한 꽃길도 선사할 테다. 용담대교를 건너기 직전 오른편 언덕배기에 자리한 ‘망향의 동산’에는 꼭 올라볼 일이다. 1991년 용담댐 수몰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면민들의 뜻을 기려 만든 공간인데, 용담댐의 4개 전망대보다 더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용담호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호반의 360도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그야말로 명당이다. 호반 드라이브를 마무리하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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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호의 막바지인 정천면 봉학리에서 725번 지방도를 타고 운일암반일암 방향으로 가는 길목과 진안읍에서 완주 방향으로 이어지는 옛 26번 국도 위 모래재터널, 이 두 도로는 가로수 드라이브 코스로 일품이다. 약 1km 정도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비롯해 은행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싱그러운 가로수길이 줄곧 이어진다. 역시나 가을이 깊어지면 낭만 선율을 뚝뚝 흘려낼 곳이다. 사방팔방 둘러싸인 능선의 단풍 장관도 기대된다. 슬슬 배가 고파질 무렵이다. 26번 국도가 지나가는 길목, 전주 방향으로 꺾이는 화심 삼거리에서 250m 지점에 위치한 화심 두부마을로 향했다. 한가했던 도로와 달리 두부촌 길 양쪽에는 주차된 차들로 북적거려 전북 ‘완주8味’ 중 하나인 화심두부의 명성을 실감케 했다. 입안을 부드럽게 파고드는 두부 속살의 황홀경에 빠져 순두부찌개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도 연달아 두부도너츠에 손이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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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정취 물씬, 갈대밭 강변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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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심에서 익산-장수간고속국도를 타고 1시간쯤 내달려 금강 줄기에 다다랐다. 전북 익산의 서쪽으로 금강이 흘러가는데 강 건너편은 충남 부여와 서천이다. 그 유명한 신성리갈대밭이 바로 서천땅 금강변에 자리하기도 하거니와, 웅포대교에서 군산시 나포면으로 이어지는 약 15km의 강변에도 듬성듬성 갈대밭의 정취가 멋스럽다. 웅포리에 자리한 정자 덕양정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일품 낙조 감상지. |
금강하구둑까지 달려오면 이번엔 도로변을 노랗게 수놓은 해바라기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계절이 이동하는 사잇 시간의 느낌은 왠지 헛헛하다. 한풀 꺾인 더위가 반가운 것도 잠시, 이내 낙엽에 스산해질 마음을 달래야 할 테니 말이다.
계속해서 706번 지방도로 10여분을 더 달리니 군산시 경암동에 닿는다. 다음 드라이브 코스인 김제와 부안으로 넘어가기 위해 하루 여정을 정리할만한 적합한 위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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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벌판 카펫 삼아 지평선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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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슬슬 김제로 넘어오자 넓디넓은 들판에 오롯이 안겨드는 기분이다. 김제 만경평야를 에두르는 29번 국도를 타고 가다 702번 지방도로 옮겨왔다. 사방으로 펼쳐진 들녘 세상 틈새로 자동차의 네 바퀴는 더욱 신이 난다. 끝도 없을 것 같은 길이지만 저 들판 너머 망망대해가 자리한다고 생각하니 설렘이 배가 된다. 지평선의 고장이자 아름다운 수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 김제다.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어 마치 ‘제자리에서 헛 |
걸음질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고, 소설 <아리랑>에서 조정래가 묘사했던 바로 그곳. 시 전체가 높이 50m 미만의 구릉지와 광활한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있는 김제는 넉넉한 가을철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아직은 푸르름이 살포시 남아있는 들판이지만, 가을바람 짙어질 즈음이면 지평선은 온통 황금물결로 출렁일 터. 그 물결에 몸을 싣고 달리는 기분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10월 초 열리는 지평선축제를 위해 올해도 어김없이 도로는 코스모스 꽃길로 장식된다. 행인들을 시인이라도 만들 요량이다.
심포항에 다다를 무렵,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절 ‘망해사(望海寺)’가 등장한다. 작은 사찰이지만 바다를 내려보며 서있는 팽나무 한그루의 매혹적인 풍광만으로도 오후 한때가 눈부시다. 특히 망해사전망대에 오르면 한쪽에는 가슴 확 트이는 서해바다가, 반대편엔 또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한눈 가득 들어오는 이색적인 장관이 연출된다. 뒤돌아서는 것만으로 이렇게 수평선과 지평선을 모두 감싸 안을 수 있다니 진정 벅찬 순간이다.
심포리에서 부안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남포리까지 702번 지방도의 지평선 드라이브는 계속된다. 꽃길이 이어지고 어린 나무들의 아기자기한 몸짓 퍼레이드인가 싶더니 또 어느 순간엔 큼지막한 가로수가 줄을 선다. 그럼에도 가려지지 않는 높고 푸른 하늘과 황금빛 벌판은 쉼 없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길을 지나는 가을 나그네의 가슴도 고독이 아닌 풍요로 채색돼간다.
간척지 들판 지나 해안 드라이브로 마무리
23번 국도를 짧게 타고 부안읍에 도착. 변산반도를 감고 도는 절대풍광 드라이브 코스인 30번 국도로 바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부안군 북서부에 자리한 계화리를 들러본다. 동진강 하구의 간척공사로 육지와 이어져 더 이상 섬은 아닌, 그러나 분위기만큼은 여전히 고요하고 정적인 섬마을 풍경이다.
무엇보다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에서 간척지 들판 가운데를 시원하게 내달려 계화리로 닿는 약 7km 구간이 또 하나의 추천 드라이브 코스다. 특히 봄철엔 유채밭으로 노랗게 변신하고 겨울엔 철새들의 놀이터가 되니 사시사철 눈에 담아도 좋을 곳이다. 30번 국도를 타기 위해 계화리에서 장신리까지 이어진 705번 지방도를 달리는 맛도 쏠쏠하다. 바닷바람 맞으며 튼실하게 자란 해송숲을 비롯해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 속도전을 낼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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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감성의 신호에 맞춰 멈춰서고 달리기를 자유롭게 반복하면 될 뿐. |
/글·사진 이효정 기자
전북 드라이브 추천 코스 진안 용담댐 지나 정천면에 이르는 795번 지방도 용담호반 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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