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월 둘째 주 토요일이 돌아왔다. 그런데 새벽부터 장마보다 더 세찬 비가 무장무장 내렸다. 비를 원망하지 않았다. 늘 한결같이 믿는 마음으로 ‘필요하시다면 오게 하시고 오후에는 맑게 그치어 우리들 마음도 환하게 하여주소서.’하며 기도했다. 역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점심 무렵에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었다.
5시에 보광화언니를 서부정류장 부근에서 만나 1차 집결지인 성서홈플러스까지 택시를 타고 같이 갔다.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나타나고 법원 앞에서 열 분이 더 타셔서 대구경북지부는 모두 27명이 예정보다 20분정도 늦게 대구를 출발했다. 저녁은 버스 안에서 진현거사님과 동운심보살님이 준비하신 꿀맛 같은 김밥으로 맛있게 먹었다. 경산 휴게소에 잠시 들렀을 때 회장님과 대충지부 남산 거사님이 버스에 인사하러 올라오셨다. 알 수 없는 것이 그냥 보기만 해도 반가운 얼굴들이며 어른들은 참으로 듬직하셔서 믿음을 주신다. 8시까지 경주 기림사까지 가야했는데 30분 정도 늦었다.
삼 년 전에 한 번 와 보았던 기림사이다. 20분 정도 만에 절 구경을 끝냈을 정도이니 별로 색다른 기억이 없다. 부산경남지부까지 세 대의 대형버스가 주차장에 집결했다. 산을 넘으면서 꼬불꼬불한 길 때문에 촌스럽게도 멀미를 해서 어질어질하고 나른했다. 어둑어둑하지만 환한 것 같은 길을 따라 일주문을 지나 걸어 들어가는데 상쾌한 바람소리 물소리가 환영사를 해주는 것 같다. 마침 총무스님께서 나오셔서 우리들은 짐을 풀어놓을 요사채로 갔다.(일부러 아침에 현판을 보았는데 지금 도무지 이름이 생각 안 남. 한자여도 읽었는데 3글자 ㅎㅎ)
총무스님께서 우리의 일정표를 보시고 대단한 수련동문회라고 하셨다. 갑자기 주지스님께서 종의원일로 출장을 가셔서 주지스님 법문시간 2시간을 대신 맡아야할 것을 걱정하셨다. 절은 불자 입장에서 니절 내절 할 것 없이 다 부처님 계신 우리 절이겠지만 우리 수련동문들은 처음에는 낯설음에 올망졸망 줄지어 앉아 총무스님 뜷어지게 쳐다보던 체험학습 나온 유치원생이었다가 어느 새 해인사 보경당에서 하듯이 친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옷을 갈아입고 대적광전으로 모였다. 꼬물꼬물거리다가 늦어 자리는 왼쪽 귀퉁이에 앉았다. 대적광전은 옆으로 긴 직사각형 모양인데 장엄하신 삼존불이 우뚝하게 자리를 거의 차지하시는 바람에 90명의 법우들이 다닥다닥 앉을 정도이다.
드디어 94회 수련동문정기법회가 시작되었다. 법문 시간이 되었다. 총무스님께서 시골 촌구석에서는 최첨단방송장비라고 하셨는데 스피커 상태가 안 좋은지 스님 목소리가 모기 소리만한지 하여간 잘 들리지 않았다. 꼭 안 잡히는 주파수의 라디오 채널을 부여잡고 중간중간 뚝뚝 끊기는 듯한 (zzz~~) 방송을 어쩔 수 없이 듣는 것 같았다. 아, 그야말로 로얄석이 아닌 구석진 자리에 앉은 사람은 인욕의 법문 시간이었다. 스님은 초기경전에서 초록한 부처님 법대로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스무 가지 방법을 이야기해 주셨다. 근심과 고통이 없는 것, 원한과 분노가 없는 것, 미움과 질투가 없는 것, 성쇠의 변함이 없는 것, 강제와 구속이 없는 것 ..등등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시고자 했는데 근기가 작았는지 솔직하게 괴로운 시간이 되었다. 그렇다고 괴롭다고 여기면 한없이 괴로울 것 같아서 법당 내부를 꼼꼼히 살폈다. 먼저 앞에 거대한 체구로 앉으신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의 삼존불 부처님을 보았다. 옆모습으로 뵈온 부처님은 요즘 말로 치면 얼짱, 몸짱의 킹카 부처님이시다. 진하고 선명한 나발과 서구적인 오뚝한 콧날, 웃고 있는 듯한 눈매와 입매, 장난을 걸어올 것 같은 경쾌한 수인까지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트리오로 무대를 점령하며 환상적인 춤을 추실 것 같은 친근한 부처님 상이다. 법당 천정은 그냥 평면이 아니라 배 바닥처럼 생겼다. 반야용선에서 따오신 듯 하다. 그리고 단청은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하여 낡고 퇴색된 그대로였다.
스님은 아침에 예정되었던 사찰 안내를 못하시게 되어 법문이 끝나고 기림사 전반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주셨다. 대적광전을 비롯해서 맞은편에 있는 진남루, 진남루는 절의 전각이 아니라 전쟁 때 쓰이던 군사용도의 건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과거 천 불, 현재 천 불, 미래 천 불을 모신 삼천불전과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 그리고 오종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기림사는 함월산 계곡이 깊어서 물의 수질이 좋을뿐더러 수량이 풍부해서 가뭄이 들지 않는 곳이라고 하신다. 오종수는 마시면 눈이 맑아지는 명안수, 마시면 천하무적 장군이 된다는 장군수, 마실수록 마음이 평안해지는 화정수, 차를 끓이면 맛이 좋은 감로수, 물맛이 좋아 까마귀가 쪼아 먹었다는 오탁수의 5군데 샘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화정수와 감로수만 먹을 수 있다고 하시며 우리보고 화정수는 요사채 뒤에 있는 수각이라며 돈 안 받을테니 실컷 마시라고 하셨다. 대적광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이 장군수가 있는 던 곳인데 지금도 밤에 들으면 물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진짜 들어보면 안 난다고 하셨다. 마당에 있는 둥그런 소나무는 세월이 많이 된 것 같지만 80년 정도의 수령이라고 하셨다. 절이 계속 공사가 끊이질 않아 오는 분들에게 어수선하게 보여 죄송하다고 하셨다. 아쉽게(?) 총무스님과의 시간은 끝나고 평소에는 생략되거나 짧았던 회장님 인사말씀도 들었다. 역사가 깊은 사찰에서 더군다나 늦은 시간 대적광전에서 우리의 수련회를 갖게 된 소중한 인연과 선근공덕을 언급해주셨다. 다과회를 하러 아까 모였던 요사채로 갔다.
좁은 방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떡이랑 과일을 먹었다. 처음 오신 분들은 단체로 인사를 했다. 이번에는 흑미모듬떡이 없었지만 검은콩이 두 알씩 박힌 쫀득하고 말랑한 귀여운 송편을 많이 먹었다. 감이랑 배랑 사과도 먹었다. 철야를 한다는 마음에 든든하게 먹었다. 금강경 독송과 108예참을 번갈아 가면서 하신다고 하셨다. 귀퉁이 자리에서 힘들었던 입재식을 생각하고 이번에는 자리를 옮길까 해서 조금 빨리 내려가서 자리를 잡았다.
의전국장이신 정안거사님의 집전으로 철야정진이 시작되었다. 저녁예불을 못한 것도 있고 해서 예불문, 천수경, 금강경 1독, 한글108예참을 했다. 다시 금강경 1독과 108예참, 석가모니불정근을 하니까 2시 45분이다. 다른 날 보다 철야를 하시는 분이 많으신 것 같다. 처음 1독 할 때 독경법이 제각기 달라서 힘들었지만 2독은 수월케 했고 금강경 2독 할 때부터 밖에는 비가 무심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근할 때 108배를 하면서 아침에는 비가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나뿐만이 아니라 화합제일대중 해인사수련동문회원들 모두가 지성발원을 드렸을 것이다.
경주 기림사에서 금강경을 독경하는 일은 의미가 새롭다. 경주 祇林寺!!
불교의 위대한 경전인 다이아몬드경 그러니까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설해진 곳이 기원정사이다.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하며 쭝얼쭝얼 시작하는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분들은 누구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이라는 어원을 다 안다.
--사위국이란 말은 인도의 북코살라왕국의 수도 사위성의 확대개념이며 사위舍衛Savatth를 산스크리트 원어에 충실히 하여 현장스님께서는 室羅筏실라벌이라고 음역하신 것이다. 실라벌이라고 하면 우리는 신라의 옛국명 徐羅伐서라벌, 徐伐서벌을 떠올릴 수 있다. 신라라는 국명은 부처님이 계셨던 나라의 수도 이름인 슈라바스띠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이 바로 ‘서벌’에서 온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 현재 수도의 이름도 부처님이 주로 설법하신 장소의 이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서벌’의 원음은 ‘셔월’이고 그것이 서울이 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그리고 기수급고독원이란 말은 부처님 당시 초기승가의 절대적 외호자였던 파사익왕에게 태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제따Jeta祇陀이다. 그리고 초기승단에 수달이라는 장자 역시 사위성에 살고 있었다. 항상 빈곤하고 고독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보시를 하고 부처님 공양을 지극히 해서 급고독장자 給孤獨長者로 불리었다. 그래서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해 집단 거주 장소를 물색하다가 祇樹기수를 지목하고 일을 추진했다. 기수란 ‘제따태자의 숲’이란 뜻이다. 제따태자와 수달장자가 상의해서 건립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 인류최초의 불교 가람이라 할 수 있는 ‘기수급고독원’, 앞글자와 뒷글자를 따서 즉 ‘기원정사’가 탄생한 것이다. --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中에서
기림사라는 사찰명에서 祇林기림은 기원정사의 그 숲을 뜻하는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경주는 현재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역사상 서라벌의 중심지였으니 경주 기림사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이런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말이 길어지지만 잠시 살펴보았다.
새벽예불 전에 씻었다. 세안은 수각장이 뚜렷하지 않아 화정수가 철철 넘치는 우물가에서 했다. 대충 씻었지만 물이 좋은 줄은 알겠다. 비는 변덕없이 계속 내렸다. 바람이 불 때 숲이 일제히 수런거리는 소리가 굉장히 운치있는 곳 또한 기림사이다. 스님의 도량석이 있고 범종이 울리고 예불이 시작되었다. 예불을 집도하시는 스님이 누구신지 모르겠는데 예불을 참 즐겁게 드렸다. 절이 바뀌면 절마다 예불 때 독송법이 달라서 불자들은 애를 먹는데 그날은 스님의 구성진 음색으로 노래하는 듯 즐거이 했다. 마이크를 대고 하시면 여러 대중과 할 때는 중심 소리를 잡을 수 있어서 하기가 편하다.
개인적으로 사찰을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고 했는데 용맹정진과 법우들 단련시키는데 혼신의 정열을 다하시는 정안거사님은 그 시간도 없애고 우리를 삼천불전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금강경1독과 108예참을 했다. 삼천불전은 옥으로 된 부처님이 정말 삼천 분이 삼면으로 앉아계신다. 금강경을 할 때 내가 빠르다고 명광거사님이 그러셨는데 나는 나보다 더 빠른 분 따라가느라 숨차서 혼났다. 그러니 나이가 더 드신 분들은 오죽하셨을까....... 집에서 할 때 혼자 천천히 하면 30분 정도 걸리는데 다같이 하는 것을 빨리 하자니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8예참할 때는 갑자기 왼쪽 무릎이 아파서 갑자기 남산답사가 걱정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 말끔해졌다.
아침공양 목탁소리가 똑똑똑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공양간으로 가니 줄이 길다. 죽이 나왔는데 죽이 모자라 나는 밥을 먹어야했다. 수선심언니 죽을 한 숟가락 떠 먹고 맛만 보고 내 밥을 먹었는데 우와~밥맛 좋다! 해인사랑 비교하면 안 되지만 행자님들이 하시는 것 보다는 보살님들이 하시는 게 맛있는지 하여간 맛있었다.(다들 해인사보다 맛있다고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먹는데 민감한 우리네들~~ㅎㅎ) 공양간에서 일차 그릇 정리는 우리의 봉자언니 자연심보살님이 하고 계셨다. 사람들은 벌써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마음 속에 찍어둔 관세음보살님께 눈도장은 찍고 싶어서 부랴부랴 관음전에 들러서 삼배를 드렸다. 절을 둘러본다고 그 절에 대해 많이 알아지는 거나 신심이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푸근한 기림사에서 여유있게 산책하였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고 좋았다. 중생의 마음으로 조급해하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항상 모든 일을 부처님 일로 맡겨두고 행하라는 법상스님 법문이 생각났다. 이제 감은사에서 탑돌이를 하고 문무대왕릉이 있는 대왕암에 갈 차례이다.
--여느 법회는 여기에서 후기가 끝이 나는데 아직 감은사지 탑돌이, 문무대왕릉, 경주 남산 답사분이 남았습니다. 제 때에 올리지 못한 것은 월화 일이 있기도 하고 컨디션도 안 좋았답니다.
향기방 여러분들 가을이 가득한 시월. 아름답게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