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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친 뒤 세계 곳곳에서 위태로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시민 대다수가 모든 사람의 건강을 지키려는 국가의 조치(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백신 접종)에 충실히 따르는 와중에, 일부 시민들은 국가의 방역 조치에 불만을 품고 마스크를 벗은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의 손에는 〈그런 조치들과 함께 사느니 차라리 코로나로 죽겠다!〉는 피켓이 들려 있다.
독일을 대표하는 대중적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신간 『의무란 무엇인가』는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떠오른 화두인 〈의무〉와 〈탈의무〉 현상에 주목한 책이다. 팬데믹 이후, 국가의 방역 조치와 그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국가는 전체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시민적 의무란 무엇일까? 법을 준수하고 세금을 내면 끝나는 걸까, 아니면 그 이상의 역할이 더 필요할까?
프레히트는 19세기 시민 계급 등장 이후 〈돌봄 및 대비 국가〉(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폭넓게 책임지는 국가)로 변신해 온 국가의 역할을 되짚으며, 역설적으로 이제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 정도로 여기는 우리 세태를 향해 일침을 가한다. 특히 〈사회적 의무 복무〉 도입이라는 도발적 제안을 통해, 더 큰 사회적 연대가 요구되는 시대에 앞서 시민적 의무감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 저자 소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Richard David Precht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철학자. 1964년 독일에서 태어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중산층 가정에서 유년을 보냈다. 졸링겐 지역의 유서 깊은 김나지움인 슈베르트슈트라세에서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을 통과한 후 교구 직원으로 대체 복무했다. 이후 쾰른 대학교에서 철학, 독일 문화, 예술사를 공부했다. 1994년 독일 문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인지 과학 연구 프로젝트 조교로 일했다. 현재 뤼네부르크 대학교,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 대학에서 철학 및 미학과 초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독일어권의 가장 개성 넘치는 지성인들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7년 발표한 『나는 누구인가』가 100만 부 판매, 3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 잡았다. 〈철학하는 철학사〉 시리즈는 35만 부, 『사냥꾼, 목동, 비평가』 23만 부, 『의무란 무엇인가』 14만 부 등 프레히트의 책은 현재까지 총 30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는 2012년부터 독일 공영 방송 ZDF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철학 방송 「프레히트」를 진행하면서 철학적 주제를 바탕으로 한 대중서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 목차
1 코로나 시대의 의무
2 생체 정치의 출현
3 국가의 역할
4 시민의 의무와 탈도덕화
5 탈의무에 대하여
6 사회적 의무 복무
주
옮긴이의 말
📖 책 속으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국가가 시민에게 행동 변화를 강요하는 조치는 일부 사람에게 굉장히 폭력적이고 당혹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면 국가가 전체적으로 모임의 인원수를 제한하거나 사람 간의 적절한 거리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율적 이성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국가가 그런 식으로 시민의 사생활에 개입할 권리가 있을까? - 16면
일부 사람들은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자신이 국가에 의해 아무 잘못 없이 방에 갇힌 아이처럼 벌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 잡는다. 〈국가는 부당하게 자식을 괴롭히는 권위적인 부모와 비슷하다.〉 - 26면
거리두기 규칙과 얼굴에 작은 천 조각 하나 걸치는 것에조차 그렇게 분노한다면 임박한 전 지구적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시민들에게 훨씬 더 강력한 제한과 행동 변화를 요구할 때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 35면
시민 국가에서는 어떤 법률과 규정, 조례, 제도가 만들어지든 모든 통치 수단과 기술은 시민의 행복을 끊임없이 증진시켜야 하는 선한 통치의 의무가 있었다. - 40면
인권과 시민권의 선언 이후 국가에는 무엇보다 다음 물음이 제기되었다. 이 권리를 어떤 방법으로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이어 한층 더 중요한 물음이 던져진다. 누군가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와 충돌하지 않으려면 이 권리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원만하게 조정할 수 있을까? - 40면
자연이 〈자연 선택〉을 통해 아무 의도 없이 개체군을 생성하고, 파멸시키고, 발전시키고, 약화시키는 것처럼 국가도 인위적 배양 선택, 즉 계획적이고 목표가 뚜렷한 선택을 추진한다. 국가는 전염병의 확산을 예방하고, 질병을 퇴치하거나 완화시킴으로써 국가 개체군의 건강을 촉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 표준치, 통계, 위험, 인구 소멸 지수 같은 범주다. - 44면
자신이 타인을 통해 겪고 싶지 않은 일은 타인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칸트의 정언 명령은 전염병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즉, 너의 예방적 행동이 언제나 모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보편적 규칙이되도록 행동하라! - 50면
코로나19 시대에 국가가 더욱 부추긴 개인 및 타인의 건강에 대한 불안은 바이러스의 유물로 계속 남아서는 안 된다. 불안 이후에는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의 시대가 이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인들 스스로 팬데믹 때 행사했던 막강한 권력을 원점으로 돌려놓아야한다. - 83면
지난 200년 동안 시민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거는 돌봄 및 대비의 기대는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따라서 행복주의를 토대로 하는 국가는 삶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 하고, 최대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행복한 삶이 가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85면
국가에 대한 시민의 의무는 줄어든 반면에 시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확대되면서 몇몇 유감스러운 결과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이제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로 보기 시작하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최상의 서비스가 주어지기만 바라는 고객 또는 소비자로 여긴다. 만일 내가 기대한 대로 국가가 해주지 않으면 나는 국가와의 내면적 계약을 파기하고, 공동선의 의무를 내팽개친다. - 107~108면
부가 증가할수록 사람은 비정치적이 된다. 소비욕이 삶을 더 강하게 지배할수록 시민의 정치 의식은 희미해진다. - 127면
탈의무의 가장 깊은 뿌리는 멍청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타인에 대한 의무를 내팽개치라고 끝없이 가르치는 변화된 우리 경제다. - 133면
만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시민보다 수백 배는 더 자주 소비자라고 불린다면, 그리고 타인을 짓밟고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끊임없이 보상받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오히려 간접적으로 벌을 받는다면 사람들의 전반적인 탈의무 경향은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독일에서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예의와 배려 같은 가치를 계속 실천하고 있는 것이 더 놀라울 수 있다. - 134~135면
자기 나라를 위한 봉사 의무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주장은 가령 스위스에서 예전부터 병역 의무의 찬성 근거로 제시된 중요한 논거였다. 의무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고, 모두가 함께 국가에 복무하는 것은 시민들의 일체감과 연대감을 강화한다. - 144면
민주주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사회는 정당의 형태로든, 아니면 단체나 공익 기관, 사적인 봉사의 형태로든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로 유지된다. 한 사회가 보다 자유민주주의적으로 발전하려면 점점 더 활발한 시민 참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모든 구성원이 자유는 최대한으로 누리면서 의무는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통제 불능의 혼돈 상태에 빠지고 만다. - 161면
🖋 출판사 서평
의무란 무엇인가
〈의무〉라는 말을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은 의무를 〈차갑고, 혹독하고, 기분 나쁜〉 말이라고 표현했고, 양치질이든 청소든 의무라는 단어가 붙으면 거추장스러운 일부터 연상된다. 특히 병역의 의무를 지는 한국에서는 하기 싫은 일을 국가가 억지로 시킨다는 인상도 강하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위기19 위기 속에서 국가가 시민에게 행동 변화를 강요하는 조치가 일부 사람에게는 폭력적이고 당혹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프레히트에 따르면, 독일의 전후 세대는(한국을 비롯해 많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경우에도) 지난 수십 년 사이에 국가로부터 일상과 신체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통제당한 경험이 없었다. 모임과 집회를 제한받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고, 백신 접종을 준의무(몇몇 나라에서는 의무이다)로서 요구받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마치 〈국가에 의해 아무 잘못 없이 방에 갇힌 아이처럼 벌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이들의 생각은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면 시시콜콜하게 모임 인원수를 제한하거나 거리두기를 강제할 게 아니라 개인의 자율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국가가 그런 식으로 시민의 사생활에 개입할 권리가 있을까?〉
우리 사회가 〈노마스크 시위〉와 〈탈의무〉 외침을 조금도 옹호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행위가 공동체와 타인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증명하듯,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존재이다. 전염력이 강한 질병이 찾아오면 타인과 의학적 운명 공동체로 엮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팬데믹 상황에서 취하는 모든 태도는 더 이상 순수한 개인적 사안이 될 수 없다. 마스크를 벗는 간단한 행위조차 공동 생활 윤리의 일부가 되고, 이는 곧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책임의 문제이다. 〈자신이 타인을 통해 겪고 싶지 않은 일은 타인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칸트의 정언 명령은 전염병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실제로 〈의무〉라는 개념은 고대와 중세에서 〈의무는〉 돌봄과 보호, 공동체에 대한 참여와 봉사를 뜻했고, 그 자체로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었다. 스토아학파 전통에서는 전력을 다해 공동체를 돕는 것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의 의무였다. 프레드리히 니체는 의무를 〈우리에 대한 타인의 권리〉라고까지 말했다.
다만 프레히트는 그런 시위에 동조하는 일부 시민들의 태도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역할과 시민의 의무에 대에 굉장히 모호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
프레히트는 이 책에서 국가의 변화된 역할과 〈탈의무〉 현상을 연결지어 분석한다. 19세기 전까지 국가의 통치권은 신의 은총(왕권신수설)이나 오랜 전통에 의해 정당화되었고, 국가와 백성은 지배-피지배의 관계였다. 그러나 시민 계급이 새롭게 권력을 잡으면서 국가의 통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시민의 행복〉을 통치 목표로 내건 것이다. 전통적인 국가가 복종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면, 현대의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돌봄 및 대비 국가〉로 변신했다.
한편 산업혁명을 거치며, 국가는 경제 주체(노동력과 소비자)로서의 국민을 적절히 관리할 필요를 느꼈다. 체계적으로 국민의 몸과 건강, 수명, 인구를 관리해 나가는 〈생체 정치〉가 출현한 것이다. 국가는 전염병의 확산을 예방하고, 질병을 퇴치함으로써 국가 개체군의 건강을 촉진할 의무를 졌고, 표준치, 통계, 위험, 인구 소멸 지수 같은 범주를 만들었다. 오늘날 코로나 사태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방역 조치는 〈개체군이 위험에 처하거나 개인들이 서로 위험 요인이 될 때 개입해야 한다〉는 생태 정치의 개념으로서 설명 가능하다.
그런데 국가에 거는 〈돌봄 및 대비〉의 기대가 높아지면서 부작용도 생겼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제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로 보기 시작하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최상의 서비스가 주어지기만 바라는 고객 또는 소비자로〉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기대한 대로 국가가 해주지 않으면 국가와의 내면적 계약을 파기하고, 공동선의 의무를 내팽개〉쳐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의 중심에는 우리 시대를 압도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있다. 토크빌이 미국을 여행하며 자본주의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듯이 〈소비욕이 삶을 더 강하게 지배할수록 시민의 정치 의식은 희미해진다.〉 그러니까 〈탈의무의 가장 깊은 뿌리는 멍청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타인에 대한 의무를 내팽개치라고 끝없이 가르치는 변화된 우리 경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한편으론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질주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우리에게 이기적인 소비자가 되라고 끊임없이 가르치고, 다른 한편으론 국가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선 그와 정반대되는 존재, 즉 연대하는 시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성의 위기
코로나 위기는 시민성의 위기를 드러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금만 잘 내고 법만 잘 지키면 그것으로 의무는 끝났다고 착각한다. 내가 할 일은 끝났으니, 더 이상 날 건드리지 말고 나머지는 국가가 알아서 하라는 태도이다. 이는 〈최소 국가〉를 외치는 급진적 자유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이 해오던 주장이다.
프레히트가 보기에, 〈의무〉를 국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치르는 비용쯤으로 여기는 관념에는 문제가 있다. 의무를 지나치게 소극적인 의미로 착각하면서 생겨난 〈고약한 자기 오해〉라는 지적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활발한 시민 참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당이든 공익 기관이든 사적인 봉사든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로 지탱된다. 프리히트는 〈모든 구성원이 자유는 최대한으로 누리면서 의무는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통제 불능의 혼돈 상태에 빠지고 만다〉고 우려한다.
프레히트에 따르면, 코로나 위기는 작은 시험대에 불과하다. 저자의 시선은 지금의 코로나 위기 그 너머, 더 큰 사회적 연대가 절실해지는 시점까지 닿아 있다. 기후 위기가 몰고 올 파장도 그중 하나이다. 〈얼굴에 작은 천 조각 하나 걸치는 것에조차 그렇게 분노한다면 앞으로 임박한 전 지구적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시민들에게 훨씬 더 강력한 제한과 행동 변화를 요구할 때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해법은 무엇일까? 시민 교육을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꼭 맞는 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레히트는 한 가지 제안을 내놓는다. 바로 〈사회적 의무 복무〉 도입이다. 1년은 청년기에, 1년은 은퇴 후에 총 2년간 일주일에 15시간씩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저자는 이 책에서 그 구체적인 방식과 법적 타당성을 검토한다). 2011년 독일에서는 병역 의무가 폐지되면서 시민들이 공동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가 사라졌다. 프레히트는 의무 복무를 통해 시민들이 〈자기 효능감〉을 키우고, 연대감과 시민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의무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고, 모두가 함께 국가에 복무하는 것은 시민들의 일체감과 연대감을 강화한다.〉 물론 아이디어일 뿐이다. 프레히트는 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와서, 우리 사회가 노출한 시민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