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나라에서 살다가 간다. 그러나 그 시대는 지나갔다. 세상은 변했고,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상을 자기 집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국적기업이란 말이 이제 일상용어가 되어있다. 왠만한 기업이면 다국
적기업이다. 한국의 삼성, 현대, LG 가 한국의 대표적 다국적 기업이다. 중소기업도 다국적화 되어가고 있다. 세계화가 국경
의 의미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2중국적의 허용이 논의되고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28년을 미국에서 살다가 병든 어머니와 몇년을 함께 하기 위하여 미국국적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서울시립대
가 다른 선택을 주지 않았다. 그것이 국가공무원법이라고 말했다. 1999년 필자는 그 것을 받아들였고, 지금 필자는 그에 따
른 고통을 받고 있다. 이 글은 2중국적을 허용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씌어지고 있다. 필자와 같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정부가 2중국적을 허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국가 공무원법 따라 미국 국적 포기
필자는 1968년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수없어 (반체제 문필인)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살다가 1996
년 초빙교수로 서울시립대 대학원으로 갔다. 1999년 전임교수가 되었을때 필자는 미국국적을 버리고 한국국적을 회복하는 조
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서울의 미국대사관에서는 필자의 정직한 진술에 “강요에 의한 미국국적 포기는 받아들일 수 없
다” 는 판결을 통고해 왔다. 그래서 필자는 “소설적” 이유를 만들어 다시 써서 미 대사관에 제출했고, 그 결과 미국국적을 ‘어렵
게’ 상실했고, 한국국적으로 돌아갈수 있었고, 2006년 은퇴할때까지 서울시립대에서 가르칠 수 있었다. 2004년 3월 어머니
는 유명을 달리하셨다.
필자는 2006년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국적을 갖고 있는 아내의 소청으로 필자의 영주권을 신청했다. 미국 연방수사국의 신원
조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의 고통이 만만치 않다.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 이방인의 신원조회를 오래 끌고가
며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 20여년 세월을 미국의 모범시민으로 살았었지만 지금 미국정부는 필자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
라보고 있는 듯하다.
영주권을 얻을때까지 필자는 28년 부어 놓았던 사회보장혜택을 받을수 없고, 병이 나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미국국
적을 갖고있으면 아프리카 밀림 속에 있어도 사회보장혜택이 주어지지만 미국국적을 포기한 필자의 죄값이 이렇게 크다고 말
한다. 어머니와 몇년을 함께 살기위하여 필자는 죄값을 달게 지불하고 있다. 그때 서울시립대가 필자에게 미국국적을 포기하
지 않게 배려했더라면 치르지 않아도 될 죄값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교수가 되기위하여 미국국적을 버리고 났더니 외국학자들이 한국의 국립대학 교수로 채용되는 소식을 일간지에
서 읽으며 한국의 불공정거래를 탓했지만 그때 상황에서 필자는 선택이 없었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당시의 한국 법은, 지
금도 전근대적인 민족주의 문화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에도 권력과 가까운 사람들은 정부공사의 고위직에 있으면서 미
국국적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법의 한계 안에서 산 필자의 소시민적인 무력함을 탓할 수 밖에.
미국서 20여년 부은 연금혜택 못받아
이민1세는 어쩔수 없이 조국과 선택한 나라를 방황하며 살 수밖에 없다. 조국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청년시절을 보내고, 2년
의 군복무를 끝내고 외국에 고학생으로 나와 조국의 부모 생계비를 다달이 보냈던 아들이 조국에 가서 일할 수 있었던 기회
는 오직 미국국적 포기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외국으로 나와 영주권을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영주권을 다시 받을때까지 외국여행도 불가능한 ‘영어
의 몸’이 되었으니 한국정부는 필자와 같은 이들에게 선처를 내리기를 기대한다. 미국국적 박탈이 한국에 돌아가 일할 수 있
는 유일한 조건은 아니었으면 한다.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한국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외국국적을 취득하는 이들에게 선처를 베풀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
나 수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불필요한 손해를 보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재외동포의 2중국적 논의에 한국인이 깊이 사려해
야 할 사실은 이민1세들은 조국을 떠나서 살 수없는 사람이라는 것과 시인은 모국어를 떠나서 살 수없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이해와 동정이다. 이민 2세, 3세들은 이미 그들이 태어난 나라에 귀속하게 된다. 지나친 민족주의적 감정이입은 변화하는
세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글/ 최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