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思肖
복주 사람이나 생몰년대는 모른다.
원의 침공으로 송이 망하지 오늘의 소주에서 살았다. 유민화가 중에 정사초가 원나라에 대한 반항심이 제일 강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평상시에 자리에 앉을 때도 반드시 남쪽으로만 향해서 앉았다. 이로서 송에 대한 절개를 표현하였다고 말한다. 또 몽고를 저주하는 많은 시문도남겼다.
그는 한민족의 문화전통과 도덕심도 깊이 지키므로 송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냈다. 이러한 고통을 감내함으로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였다.
정사초는 蘭을 잘 그렸다. 대나무와 국화도 잘 그렸다. 그는 그림의 대상을 인격화하였다. 이것은로 유민사상을 표현하였다.
정사초의 묵란도, 뿌리 없는 난초 그림은 유명하다. (앞에서 보았다.)
*또 다른 유민화가 '온일관'은 출가 스님으로 비쩍 마른 소나무를 그리거나. 송이 망한 것을 두고 미친 듯이 울고불고 하여 미친 중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첫댓글 정사초의 난은 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