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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천
[스크랩]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소리
우리는 항상 언제 어디를 가든 업장 탓으로 재난을 당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옴’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렇게 각 진언마다 들어가 있을까요? 그런데 이 `옴’을 온전하게 잘 설명해 놓은 책이 우리나라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 뜻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애를 썼는데 어느날 우연히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영어로 번역해 놓은 영국 책을 보고 그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티베트에서는 `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옴’《aum=om, m, 唵》은 인도인들이 옛부터 신성시 해 온 소리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며,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고 사후《死後》에는 그것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시작할 때는 om으로, 끝에는 hum으로 표현하기도 했으나 본래는 같은 글자입니다.
옴《aum》의 세계
`A〓아
이것은 `아’ 발음으로 `아이우에오’ `아야 어여 오요 우유 으이’ `아베체데’ `에이비 시 디’ 하듯이 그 `아’란 것은 모든 만상의 시초음《始初音》으로 스타트《start》란의미입니다.
`U〓우
아이들에게 자동차가 어떻게 달리느냐고 물어보면 `붕’하고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기계가 돌 때는 `웅-‘하는 소리가 납니다. 즉 바퀴가 돌아갈 때는 `웅-‘하고 소리가 나는데 이것을 과정【process】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우’음은 과정음《過程音》이라고 합니다.
`M〓ㅁ
그러므로 이 `옴《aum》’이란 처음과 중간과 끝이라고 하는 뜻으로써 이 우주 만유의 처음이자, 과정이자, 마지막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어에 나오는 Α《Alpha》과 Ω《Omega》도 다 `옴’에서 나온 것이며, 기독교의 아멘《Amen》도 바로 이 `옴’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멘에도 M자가 들어 있는데 이 M은 우리나라 말로는 ㅁ에 해당됩니다. ㅁ은 굴러갈 수 없으나 ㅇ은 굴러갑니다. ㅁ이 명사형 어미라거나 혹은 끝【end】, 종음《終音》이라고 형용이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공【空, ㅇ】의 근원적인 성품이 이제 잠깐 형체로 머물러 있다 해서 명사형으로 ㅁ을 씁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서리가 진 것은 세월이 흐르면 점점 변해서 깨어지고, 깨어져서는 다시 둥글어지게 됩니다. 모든 것은 공으로부터 와서 머물러 있다가 다시 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원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문자에도 우주의 기운 자체가 들어 있습니다. 모든 만상을 형용하는 내용이 문자로 정착된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서양의 말에 현재진행형【~ing form】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도 역시 발음기호가 ` ‘으로 ㅇ입니다. 우리가 움직일 때, 노래부를 때도 마찬가지로 singing, riding, playing 등등 모두가 다 바퀴를 달고 있습니다. 바퀴를 단 것은 굴러간다는 것을 뜻하고 있지요.
분명한 사실은 자꾸만 말을 그렇게 하다 보면 마음에도 그러한 말의 뜻이 형성될 것이란 점입니다. 그러니까 아들 딸 이름 지을 때나 상호《商號》 지을 때도 이 같은 뜻을 꼭 유념해야만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들 딸 이름을 근사하게 짓는다고 생각하면서 정성 들여 지었겠지만, 지나다 보면 여러 가지 덜컥덜컥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말의 뜻을 소홀히 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살다 보면 때로는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직업을 바꾸든지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될 때가 간혹 있습니다.
특징적인 사실은 이름자에 ㅁ이나 ㅂ이 들어간 사업체나 사람들은 뭔가 덜커덩거린다는 사실입니다. 당장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들만 잘 살펴보아도 이런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삼성, 금성, 우성, 선경, 쌍용,동양 등 대부분이 바퀴가 달린 글자를 가지고 있으며, 또 다들 잘 나가고 있는 기업들이죠.
이미 언급했듯이 말이라는 것은 마음에서 나왔으며, 또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원리를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하거나 이름을 아무렇게나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언학《眞言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들 딸이나 남편을 가만히 분석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러한 흔적들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성할 창《昌》, 행동할 행《行》, 꽃 화《花》, 성품 성《性》, 영화 영《榮》, 꽃뿌리 영《英》자와 같은 글자는 굴러가는 바퀴를 가지고 있는 글자입니다. 아이들 이름을 지을 때도 그 아이의 생년월일《生年月日》과 생시《生時》을 타고난 기《氣》에 잘 맞춰가자고 굴러가는 바퀴를 달아주면 건강하고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상호《商號》들도 연구해 보면 여기에는 뭔가 무시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꼭 죽을 사람도 이름을 바꿔 놓으면 사는 수가 있다고 합니다. 말은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말 가운데에 마음의 기운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굴러가는 기운이 그의 몸과 마음 가운데에 스며들어 그 곳에 좋은 기운이 입혀지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이름은 사람의 간판입니다. 그러기에 이름은 뭔가 아름답고, 뜻이 있고, 부르기 좋고, 듣기 쉽고, 모가 안 나고, 쓰기도 좋은 것이 좋습니다. 법명《法名》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 중에는 터져나가는 소리가 있는데 화, 행, 수, 성과 같은 좋은 음이 있는 법명을 사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 능인선원이 무장무애, 별 탈없이 잘 굴러가고 있는 것도 법명에 그렇게 좋은 음을 쓰고 있는 것이 한 원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제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계속 관찰해 본 결과 그 말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음이 지니고 있는 기《氣》라는 것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 자체가 마찰이 많으면 부서져야 되고, 깨져야 되고,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레셴도, 디크레셴도
굴러가고 터져가는 소리는 당장 음악에도 있습니다. 점점 가다가 막히는 것, 즉 `점점 약하게’의 디크레셴도《decrescendo》은 입이 오무라져 입의 기운이 약해지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크레셴도《crescendo》은 `와’하고 터져나가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함성을 지를 때는 `이’라고 하지 않고 `와’라고 합니다. 그리고 웃을 때도 `하하하’하고 웃습니다. 환하다, 밝다, 아름답다, 이러한 단어들은 `아’자로 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ㄱ ㄴ ㄹ과 같은 글자는 느낌이 다릅니다. 이 글자들은 중성 음이라고 해서,자기의 주체적인 의지 보다는 외력《外力》에 의해 많이 좌우하게 됩니다.
하여간 음이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뭔가 치명적으로, 결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상황 전개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매일같이 부르는 이름은 그래서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 이름이 본인이 들을 때도 막히고, 말하는 사람도 막히는 음이면 기운도 가다가 막혀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대체로 이름이 꽉 막혀있는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활달하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꾸 그렇게 불러왔고, 그런 막힌 기운이 쌓이다 보니까, 뭔가 하려고 하다가도 그냥 주저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들에게도 터지는 기운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여자 이름에 계집 희《姬》자를 많이 썼습니다. 여자 이름에 계집 희자를 붙여 놓으면 비교적 얌전하고, 안존《安存》하는 그런 뜻이 그 글자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음운《音韻》이라는 것이 사람의 성품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활달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억제하는 힘이 강해 남편 말 잘 듣고 순종하지만 마음 가운데 맺히는 것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제가 많은 분들을 관찰해보니까 능력이 100% 있는데도 발휘를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들의 이름을 바꿔놓으면 사람이 달라지는 수가 있습니다. 이름이라는 세계는 그냥 웃고 넘겨버릴 세계가 아닙니다. 그리고 옴《aum》이란 음의 세계도 참으로 미묘 불가사의한 세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고 무심하게 살고 있습니다.
일본 여자 이름을 보면 `~꼬’자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그 `~꼬’자는 동글동글한 양성모음의 `오’ 발음으로서 부드러운 기운을 가져 옵니다. 그래서 일본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상냥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옛날 왕조의 왕명《王名》인 태종, 세종 등도 모두 굴러가는 발음이며 태조의 `오’ 발음도 모두 양성 발음을 썼습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중국인들은 참으로 무서운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글자 한자에도, 여자 이름 하나 지을 때도, 다 그 지혜를 바탕으로 지었던 것입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해서 여자들 이름에 막히는 글자를 넣어 기를 못쓰게 해 놓은 것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중요한 지맥《地脈》마다 쇠파이프를 박아 놓은 것도 작은 일이 아닙니다. 풍수적으로 본다면 기가 흐르는 맥을 꽉꽉 막아 놓은 것입니다. 꾸불꾸불 흘러가는 산의 정기《精氣》을 강한 자성《磁性》을 띈 쇠로 그 자리에 꽉 묶어놓아 버렸으니 발전이 어려울 것입니다. 이 같은 대 우주의 기운은 옛날의 도인들도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논리에서 여자들 이름에 디크레셴도 음《音》을 달아 놓으니까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꾸만 자기 스스로 억제하게 되고, 그러다 속병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이하게도 요즈음 여자들의 이름에는 희자 이름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마니 반메 훔
마니《mani》
옴 마니《aum mani》의 `마니’는 원래 여의주라는 말입니다. 여의주란 문자 그대로 여의주에다 자기 소원을 정성 들여 빌면 만사길상 여의 원만하게 형통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마니《mani》라고 하는 것은 또한 무진장《無盡藏》이란 뜻도 있습니다. 장《藏》이라고 하는 것은 많이 축적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에서도 많다는 말은 `many’이며,한국어에서는 `많이’입니다. 모두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반메《padme》
`반메’란 연꽃이란 말로 번역이 되지만, 여기서의 연꽃이란 거대한 우주의 소용돌이를 의미합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대연화《大蓮花》은 대 우주를 뜻하는 것입니다.
훔《hum》
`훔’이라는 것은 `옴’의 마감으로 `옴’과 같은 뜻입니다. 모든 진언은 참으로 묘하게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옴 치림’에서는 `림’으로 끝이 나고, `옴 남’에서는 `남’ `옴 마니 반메 훔’에서는 `훔’으로 모두가 다 ㅁ으로 마감되어 완결을 시킵니다.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언을 연구하다 보면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옴 마니 반메 훔’이란 해석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추해서 생각해 보면 `우주의 처음이시자, 과정이시며, 모든 것이신 무진장의 존재, 대 우주의 주재자이신 부처님께 예경하나이다’하는 산스크리트어의 뜻으로써 문자 그대로 우주 그 자체의 어떤 근본 성품을 음성으로 묶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옴 마니 반메 훔’을 여러 번 하게 되면 몸과 마음 가운데에 우주의 기운이흘러 들게 됩니다. 관세음보살님과 염불 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같이 수행하던 한 도반이 `옴 마니 반메 훔’을 그렇게 열심히 할 수가 없었는데, 어느 단계가 되니까 신통이 열려오더군요. 물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이 진언과 음성의 세계는 참으로 무서운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오히려 치명적인 세계라고 말씀 드릴 수도 있지요.
부처님께서 성자즉실상《聲字卽實相》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말이 곧 실상의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에도 `태초에 말이 있었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옴 마니 반메 훔’이란 말을 계속함으로써 그 사람이 부처님으로, 관세음보살님으로 형성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너는 이 다음에 참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계속해 말하면 그 아이는 그렇게 되어져 갑니다. 그리고「나쁜 놈 같으니라구」란 말을 계속하면 정말 나쁜 놈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가족에게도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그 자체에 어떤 성품을 지니고 있으니까 밝고 환한 소리를 쓰면 그 사람은 점점 밝고 환한 길을 가게 되고, 자꾸만 막히는 음을 쓰게 되면 음으로 양으로 자기의 능력을 펼쳐보이지 못하고 주저앉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니 법당에 나와서는 세속 이름을 부르기보다 법명《法名》에다 보살을 붙여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속과는 다른 새로운 장《장》이 열리게 됩니다. 소리가 운명을 형성하고, 미래를 형성하며, 부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공간 미학의 세계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감이 있습니다. 그런 거리감이 많이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면, 뭔가 밀쳐내는 장벽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거리감이 적은 친근한 사람에겐 가까이 가게 됩니다.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도 다 이 같은 원리가 작용된다고 합니다
이른바 공간 미학으로 보면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아기자기 합니까? 생활 구조를 보아도 그 조그만 공간들은 정말 섬세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거기 사는 인간들도 상냥하고 아기자기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요즈음 건축 미학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양성하는 공간 감각을 크게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건물들은 이와 같은 감각을 전혀 백안시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의 초대형 건물들이 이러한 것을 고려하지 않다 보니 딱딱하게 되어 버렸지요. 여의도의 쌍둥이 빌딩을 설계한 사람은 이러한 공간 미학을 많이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 건물을 잘 살펴보면 사각형이 아니고 양쪽으로 보게 되어 있습니다. 둘이 마주 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그 회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적으로 화합의 분위기가 돌게 되어 있습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어의 음을 보면 흐, 크, 프, 트와 같은 강한 음이 많은데 그래서인지 다툼을 많이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일본도 역시 많은 전쟁을 일으켰는데 일본말의 음운이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강하고 모난 점이 많고 골이 들어가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나 부부간에 말을 나눌 때도 가능한 한 뭔가 그 말에다가 기운을 실어 보십시오. 단순한 사무적인 언어가 아니고 거기에 어떤 공간 미학적인, 뭔가 정감 어린 내용을 넣어 톤을 부드럽게 해서 보내 보십시오. 중국어를 연구하다 보면 평상거입《平上去入》의 사성《四聲》이 있는데 중국인들이 뭔가 응집력이 강한 이유도 그러한 연유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들을 합니다.
아는 것 만큼 산다
첫댓글 고맙습니다